빨간 숫자의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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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녹아





저는 6층에 위치한 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1층에서 시작해 목적지인 6층까지, 고작 몇 십 초의 여행동안 최소 다섯 번은 층수판을 올려다 봅니다. 2층, 4층, 6층... 숫자가 바뀔 때마다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입니다.


엘리베이터라는 작은 밀실은 무료하고 지루합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죠. 스마트폰을 보기에는 잘 터지지 않을 뿐더러 시간이 너무 짧고, 다른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기에는 어색합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시선이 향하는 곳이 층수판인가봅니다. 그 빨간 숫자들의 변화만이 우리에게 시간의 흐름을 알려주는 유일한 지표가 됩니다.


층수판을 바라보는 행위에는 묘한 중독성이 있습니다. 1에서 2로, 2에서 3으로 넘어가는 순간의 작은 성취감 같은 것. 마치 게임에서 경험치가 쌓이는 것을 보는 것처럼, 그 빨간 숫자가 높아질 때마다 목표에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행동한다는 사실이죠. 엘리베이터 안의 사람들을 관찰해보면, 거의 모든 이가 층수판을 쳐다봅니다. 때로는 동시에,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우리는 서로 다른 목적지를 가지고 있지만, 그 순간만큼은 같은 것을 바라보며 같은 마음으로 기다립니다.


어쩌면 층수판 보기는 현대인의 새로운 명상법인지도 모릅니다. 복잡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단순한 숫자의 변화에만 집중하는 시간. 생각을 비우고 오직 '지금 여기'에만 머무르는 순간. 1층, 2층, 3층... 내일도 6층 버튼을 누르고 층수판을 쳐다보겠죠.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하고 있다는 걸 알고 나니까, 뭔가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어서 좋네요. 사실 이렇게 생각해보니 참 재밌는 존재들인 것 같습니다. 엘리베이터라는 좁은 공간에서 서로 어색해하면서도, 한 가지만큼은 똑같이 하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가끔은 층수판이 고장 나는 날이 있습니다. 숫자가 깜빡거리거나 아예 꺼져있을 때도 있죠. 그럴 때면 엘리베이터 안의 분위기가 묘하게 달라집니다. 평소보다 더 조용해지고, 사람들이 더 어색해해요. 마치 중요한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처럼. 층수판이 없으면 우리는 정말로 할 일이 없어집니다. 그제서야 깨닫게 되죠. 우리가 얼마나 그 작은 빨간 숫자들에 의존하고 있었는지를.


요즘에는 음성 안내가 나오는 엘리베이터도 많아졌습니다. "2층입니다"라고 친절하게 알려주죠.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층수판을 쳐다봅니다. 귀로 듣는 것과 눈으로 확인하는 것은 또 다른 의미인가봅니다. 시각적 확인이 주는 확실함, 그리고 그 순간의 작은 집중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결국 층수판 보기는 우리만의 작은 의식이 되었습니다. 하루를 시작할 때와 마칠 때, 그리고 그 사이사이 무수히 많은 순간들에서 우리가 공유하는 조용한 경험.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모두가 함께하는 시간. 내일도 모레도, 우리는 층수판을 올려다보며 각자의 목적지로 향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짧은 여행 동안, 잠시나마 같은 마음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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