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과 발
고도 비만으로 살기 전에 내 발 사이즈는 235mm였다. 하이힐을 거의 매일 신었고, 짧은 치마와 핫팬츠도 즐겨 입었다.
고도 비만으로 살게 된 지 어언 10년 째인 지금 나는 신발을 살 때 245mm 사이즈를 선택한다.
발에도 살이 찐다는 걸 오래전에는 몰랐었다.
발 길이는 길지 않은데 발볼이 넓고 발등이 높은 데다 거의 평발이라서 신발을 살 때 애를 먹는다. 살이 찌기 전에는 그래도 구두나 단화는 스타킹을 신으면 매끄럽게 들어가서 자주 신고 다녔는데 지금은 편한 운동화도 발을 구겨 넣듯이 집어넣어야 맞는다.
9월이 되자 2년 전에 사 두었던 아이보리색 단화와 갈색 단화 두 켤레를 꺼내 놓았다. 구입하고 한 번도 신고 걸어보지 않았던 단화들이었다. 하지만 9월이 다 가고 10월이 되도록 단화 두 켤레를 신어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요즘에는 발목 양말을 신지 않는다던데, 그렇다면 단화를 신을 때는 어떤 양말을 신어야 예쁜지, 맨발로 신어도 괜찮을지, 오랜만에 단화를 신어보려니 뭔가 아주 애매했다.
결국 나는 단화들을 다시 신발장에 넣어버렸다.
구두나 단화를 신을 때면 운동화와는 다르게 뒤꿈치가 까지고 피를 보고 난 후에야 신발이 발에 맞게 길들여졌던 경험을 매번 겪었기 때문인지 코끼리 발처럼 뚱뚱해진 이 발을 신발에 억지로 구겨 넣고 또다시 피를 보고 싶지는 않았다. 신발에 발이 길들여질 때까지, 발에 신발이 길들여질 때까지 까진 뒤꿈치에 대일밴드를 붙이고 다니며 쓰라림을 참고 걷고 싶지는 않았다.
대신 나는 좀 무리해서 운동화를 두 켤레 샀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나를 상처 내고 아프게 하는 행위를 찾아서 자발적으로 하지 않는다. 사는 게 좀 편해졌다.
내가 아프지 않을 쪽으로 행동하기. 그리고 아프게 된다면 치료하기 위해 애쓰기. 나 자신, 내 인생을 소중하게 다루기.
부러 살갗이 까지는 아픔을 참으며 불편한 신발을 신는 대신 편한 운동화를 신기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