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머니는 육달
2018. 5. 16.
새벽에 여러 번 수유를 하다 보니 계속해서 쪽잠을 자게 되고, 남편이 출근하고 난 뒤에는 오롯이 혼자서 아이를 보다 보니 매일 몸살을 달고 살게 되었다. 남편은 야근에 이어 술자리가 잦아 결국 하루 종일 내가 아이를 봤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인천에 살았다면, 서준이를 데리고 친정에도 자주 놀러가고, 친구들을 만나러 서준이를 안고 같이 카페도 가고 할 텐데 그러질 못하니 점점 정신적으로 힘들어졌다. 그나마 내게 위로가 되는 건 커피 한 잔이었다.
커피를 좋아해서 하루에 세 잔을 넘게 마셨던 나는 모유수유를 하는 동안에 많이 마실 수가 없었다. 그래도 하루 한 잔 정도는 괜찮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믿고, 매일 아침 나는 커피를 사러 나갔다. 아기를 품에 안고 나가는 그 길이, 내게는 이상하게 위안이 되었다. 품에 안긴, 나를 보며 방긋 웃는 아기의 얼굴과 자그마한 손으로 내 얼굴을 만지는 아기의 손, 아기에게서만 나는 너무 좋은 향기, 그리고 바깥 바람, 그 모든 게 글을 쓰는 지금도 느껴질 만큼 선명하다.
"아이스 카페모카요."
나는 늘 아이스 카페모카를 주문했고, 아파트 상가 내 카페 사장님은 내가 갈 때마다 친절하게 맞아주었다.
"오늘도 카페모카죠?"라고 먼저 이야기를 꺼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내며 내게 "지금이 제일 힘들지만 또 한편으로는 제일 좋을 때죠."라고 했다.
맞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진짜 좋을 때였다. 그런데 아이는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좋은데, 한편으로는 참 외로운 시기였다. 엄마가 너무 보고 싶었다. 그리고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그날 엄마가 제주도로 한달음에 날아 오셨다.
엄마는 집에 오자마자 손주 말고 나부터 살폈다.
"몸은 어때? 많이 힘들지?"
다른 이들은 모두 내가 아닌 서준이를 먼저 살피고, 챙기는데 우리 엄마는 역시 엄마였다. 내가 챙겨먹을 약에다가 내가 좋아하는 음식까지 바리바리 싸 온 엄마는 내가 괜찮다고 하자 그제야 아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엄마는 서준이가 고새 그렇게 많이 컸느냐고 대견해하셨다. 삼남매를 친정, 시집의 도움 하나 없이 홀로 키운 엄마는 역시 육아의 달인이었다. 육달이 오신 덕에 나는 모자란 잠도 자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글도 쓰고, 몸도 맘도 한결 편안해졌다.
엄마가 곁에 있으니 무엇보다 글을 쓸 수 있어서 좋았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공모전 헌터'라는 별명이 생겼을 정도로 글 공모전에 꽤 여러 번 참여했고, 또 운이 좋게도 꽤 많은 상을 받았다. 그런데 아이를 낳은 이후부터는 일기를 쓰기도 힘들었다. 엄밀히 따지면 정말로 단 몇 분의 시간도 없던 건 아니지만 글을 쓸 만한 시간은 없었다. 컴퓨터 앞에 앉아 타자를 칠 여유가 내게는 하나도 없었다. 그럴 시간에 나는 밀린 집안일을 하고, 밀린 잠을 조금이라도 자야 했으니까.
엄마가 와 주신 그날, 내 일기장을 들춰보니 이렇게 써 있다.
"서준아. 엄마는 지금 너무 행복해."
그로부터 8일 뒤, 24일 엄마는 오후 3시 비행기를 타고 인천으로 올라가셨다. 9일이라는 시간 동안 엄마는 서준이와 환상의 짝꿍이 되었다. 엄마는 서준이가 예방 접종을 하러 병원에 갈 때에도 동행해 주셨다. 서준이는 외할머니의 품에 안겨 무척이나 행복한 표정으로 방긋 웃었고, 나는 그 순간이 너무 귀여워 포착했다. 엄마가 함께하는 동안 나는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 들었다. 엄마와의 헤어짐은 늘 아쉽지만, 그래도 또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우리는 손을 흔들며 웃으며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