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K의 이야기 #8

Saturday Night's Mistery Club

by NoZam

"기억... 나세요? 그 날?"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이 미소... 어쩐지 익숙하다 싶었습니다.


"그 날 이후 한동안 식물인간으로 지냈죠. 병원에서도 힘들 것 같다고 했다더군요.

반 년 가까이 그렇게 있었다네요.

반 년만에 제가 깨어났을 때... 그때는 예전과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어요.

제 사고의 충격으로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대요.

아버지도 절 간호하시느라 하시던 사업도 거의 접다시피 하셨고...

깨어난 저는 하반신이 마비가 되어버렸어요.

의사는 제 하반신이 정상으로 돌아올 수 없다고 하셨고 아버지께서는 그냥 시골에 가서 요양하자고 하시면서 절 퇴원시키셨죠.

그래도 이제 제가 깨어났으니 다시 힘을 내서 살아야 한다며 너무 멀리 가기는 힘들다고... 그래서 여기... 청평으로 오게 된 거예요.

아버지와 함께 청평으로 와서 작은 집을 짓고 살았어요. 지금은 이렇게 주차장으로 변했지만 여기가 바로 아버지와 함께 살던 자리였죠."


전 그 녀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게... 그게 언제 적 일인데... 이 여자는 날 어떻게 알아봤을까?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었는데... 마치 마비라도 된 것처럼 꼼작도 할 수 없었습니다.


"제 병원비에 어머니 장례까지 치르고... 사업은 전폐하다시피 했으니 예전처럼 살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아버지와 저, 두식구 사는 건 빠듯하지만 살만 했어요. 아버지도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는 것 같았고 저 역시 마비된 하반신에 적응을 했다고나 할까요? 불편하긴 하지만 그럭저럭 살 수 있었죠.

그런데 도저히 어쩔 수 없는 건...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사고 당시의 상황이었어요.

가끔 꿈을 꾸기도 했죠.

엉겁결에 당한 일이라 그 남학생... 당신... 얼굴도 희미해져 가고... 경찰에서도 수사에 전혀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하긴, 사고를 당하고 반년이나 지나도록 정신을 차리지 못했으니 수사를 한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겁니다.

제가 범인의 얼굴을 제대로 기억하는 것도 아니고..."


그 녀는 제 눈을 바라보며 눈도 깜짝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습니다.

"언젠가... 아버지께서 술을 많이 드시고 취해서 들어오셨어요.

아버지께서는 휠체어에 앉은 제 무릎에 얼굴을 묻고 펑펑 우셨어요.

'널... 널 이렇게 만든 놈을 잡아야 하는데, 그래야 먼저 간 네 엄마도 편하게 눈 감을 텐데...'

낮에 경찰에게서 전화를 받으셨다는 거예요. 아무래도 범인을 잡기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더군요.

어쩌면 영구미제 사건으로 남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계속 수사를 하기는 하겠지만 목격자도, 증거도, 현장에서 단 하나의 흔적도 발견되지 않은 이상 범인을 잡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고 했대요.

그 날... 그렇게 우시던 아버지의 어깨는 참 작아 보였어요.

'아빠... 그만 울어. 답답한데, 우리 바람 좀 쐬고 올까? 아빠가 내 휠체어 좀 밀어줘. 우리 나가서 호수 구경하고 들어오자.'

아버지는 눈물을 닦으시고 제 휠체어를 밀어 주셨어요.

현관문을 나서서 집을 따라 돌아 뒤로 가면 바로 이 자리, 지금 우리가 앉아있는 이 자리가 나오죠.

이젠 흔적도 없네요. 요 앞에 비탈길을 만들어서 호수 앞까지 갈 수 있게 해두었었는데...

아버지는 그 비탈길을 따라 호수 물가로 걸어가셨어요. 제 휠체어를 밀면서 말이죠.

물가에 서서 휠체어를 세우시고는 제 옆에 서셨어요.

아직 감정이 억제되지 않는지 울음을 참느라 거칠게 숨을 쉬고 계셨어요.

그때...

아버지와 저는 분명 같은 걸 보았어요.

물 위에... 저 쪽에 무언가 어른거리는 것 같았는데...

어머니 모습이었어요.

'엄마...?'

'여보... 당신이야?'

저와 아버지는 동시에 어머니를 불렀죠.

아버지는 주춤주춤 앞으로 몇 걸음 옮겼는데... 그랬는데... 발을 헛디디신 건지 그만 물에 빠지고 말았어요.

여긴 호수라... 물이 깊은데... 아버지는 술까지 드셔서..."


결국... 나는... 그 녀뿐만이 아니라 그 녀의 가족 모두를 망가트린 셈인가?

내가 나도 모르게 했던 그 행동이... 그렇게 한 가정을 모조리...?

그 녀는 오히려 더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습니다.

"그렇게 아버지께서 물에 빠졌는데... 전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몸을 일으켜 세울 수도 없었고, 손을 뻗어도 전혀 닿을 수 없었으니까요.

전 휠체어의 잠금장치를 풀었어요.

어떻게든 아버지를 구해야 했으니까요.

'아빠! 아빠! 어디야? 아빠 어디 있어?'

울면서 아빠를 불렀어요.

비스듬하게 경사가 진 물가여서 그랬겠죠. 휠체어는 점점 빠른 속도로 굴러가기 시작했어요.

휠체어가 물에 빠지면서 균형을 잃고 넘어졌죠.

제가 물 속으로 떨어지는 그 순간... 어머니와 아버지의 얼굴이 보였어요.

'엄마... 아빠... 여기 있었구나. 나도 왔어. 이제 우리 다시 모인 거야?'

그게 마지막이었어요."

그녀는 길게 숨을 토해냈습니다.


어? 이... 이게 무슨 소리야?

그녀가 죽었다고?

그럼... 지금 내 옆에 있는 이 여자는 누구지?


저는 옆자리를 돌아보았습니다.

절 보며 싱긋 웃고 있는 그 녀...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 녀의 눈동자는 마치 빨아들일 듯 저를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걸 주었잖아! 이젠 당신 차례야!"

조그맣게 달싹거리는 그녀의 입은 마치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전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차에서 내리고 싶었는데... 당황을 해서 그런 건지 문이 제대로 열리지 않았어요.

후진기어를 넣고 있는 힘껏 엑셀러레이터를 밟았습니다.

차가 요란하게 바퀴 구르는 소리를 들으며...

계기판에서 눈에 띈 것은...

녹색으로 불이 들어온...

[D]였습니다...

keyword
이전 08화K의 이야기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