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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의 이야기 #1

Saturday Night's Mistery Club

by NoZam

"다들 반가워요."

O는 언제나 그렇듯 커다랗고 연한 색이 들어간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짙은 감색 원피스 위로 커다란 숄을 두르고, 손에는 큼직한 꽃 모양의 장식이 달리고 팔까지 올라오는 긴 장갑을 끼고 있었다. O가 쓰고 온 챙이 넓고 원피스와 같은 색의 모자는 그녀의 가방과 함께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었다.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자리에서 일어난 O는 준비해온 차를 종이컵에 따라 모두에게 한 잔씩 건넸다.

"O선생님은 언제나 이렇게 귀한 차를 준비해주시네요. 덕분에 차에 중독되고 말았어요."

A는 웃으며 그렇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선생님께서는 이번 여행이 꽤 좋았나 봐요. 전보다 훨씬 젊어지신 것 같아요. 피부도 예쁘게 타서 마치 선탠 한 것 같아 보여요. 정말 한 십 년은 젊어지신 것 같은데요. 오늘 스타일도 정말 멋지세요."

패션에도 관심이 깊은 J가 말을 받았다.


예순을 넘긴 O는 아닌 게 아니라 지난 여행 이후 훨씬 생기 있고 활기찬 모습이었다.

"맞아요. 훨씬 예뻐지셨어요."

"이젠 그냥 언니라고 불러도 될 것 같아요."

"앞으로는 그냥 누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여기저기서 말들이 튀어나왔다.


"이번 여행은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그런 경험을 해서 그런가?

뭐, 어쨌든...

다들 아시다시피 전 여행을 자주 해요. 그러다 보면 정말 상상도 못할 일들도 만나게 되고 그 안에서 또 다른 인연도 만들게 되죠.

오늘 제가 할 이야기는 그런 이야기예요."

O는 주위를 둘러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 인도, 인도 여자

언젠가 제가 인도 아쌈으로 여행 다녀와서 쓴 책, 읽어들 보셨나요?

인도는 아시다시피 여전히 신분계급이 존재하는 나라죠. 그러다 보니 자신의 신분에 따라 명확하게 한계가 있어요.

그 한계를 뛰어넘는 건 불가능에 가깝죠. 아니, 불가능한 일이에요.


가령, 불가촉천민이라고 흔히 말하는 이들은 인도에서는 아예 출생신고조차 할 수 없는 신분입니다. 그들은 태어나서 죽는 그 날까지 자기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방법이 전혀 없는 거죠. 누군가에게 살인을 당했다고 해도 살인 신고조차 할 수 없는 겁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살았다는 법적 기록이 전혀 없는데 살해당했다는 걸 어떻게 증명하겠어요? 심지어 집단 윤간을 당한 뒤에 참혹하게 맞아 죽어도 아무도 알 수 없는... 그게 인도 계급사회의 현실입니다.


누군가 그랬다죠? 인도에서 불가촉천민들까지 출생신고를 받으면 중국보다 더 많은 인구를 보유한 나라가 될 거라고...

내가 인도의 아쌈이라는 지역에 어떻게 해서 가게 되었는지, 거기에서 어떤 일들을 겪었고 어떤 생활을 하며 보냈는지에 대해서는 생략할게요. 다들 제 책을 읽고 아실 테니까 말이죠.


제가 아쌈에서 돌아와서 여전히 마음에 걸렸던 사람은 바로 모나 엄마예요. 책에도 소개했었는데 기억나시나요? 남편이 술만 마시면 두들겨 패서 얼굴에 난 상처가 가라앉을 겨를이 없었던 그 여자..., 한국에 돌아와서도 여전히 그녀에 대한 걱정이 떠나질 않았어요.

뭐랄까... 막연한 불안감 같은 그런...

지난봄에 출판사 사장님의 전화를 받았어요. 혹시 여행 계획 또 없느냐고 하시더라고요.

왜 그러시냐고 물었더니 지난번에 냈던 책이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서 혹시 또 여행을 하게 되면 이번엔 제대로 준비하고 기획을 해서 떠나라고, 돌아와서 바로 원고 작업해서 2탄 내자고 하시더군요. 솔직하게 말해서 기분이 좋았죠.


육십이 넘어서 낸 첫 책에 대한 반응도 좋다고 하고, 두 번째 책을 내자는 연락까지 받았으니 정말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여행을 준비하고 있었어요. 마침 딱 맞춰서 연락을 받은 거죠. 안 그래도 책을 염두에 두고 있었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어디를 갈까 심각하게 고민을 했었죠.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아쌈엘 한 번 더 가고 싶더라고요. 출간한 책에 담지 못한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요.


음, 지난번에 썼던 책은 사실 현지 분위기도 보여주고 싶었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여주고 싶었는데 책 한 권에 그 모두를 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어서... 솔직하게 말하자면 개인적으로는 책 내용이 많이 아쉬웠거든요.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는 아쌈에서 평생 찻잎을 따며 사는 여인들에 대해 보다 깊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죠.

여행은 그렇게 해서 다시 한 번 아쌈으로 결정을 했어요.


제가 왜 아쌈엘 다시 가게 되었는지, 어떤 경로로 그곳엘 갔는지... 뭐 이런 부분은 생략할게요. 여러분들이 지루하실 테니 말이죠.

아쌈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모나 엄마를 찾았어요.


사실 그 사람들은 집과 농장, 평생 그 안에 갇혀 사는 사람들이에요. 시내 나가는 것도 쉽지 않은, 일 년에 한 번도 제대로 나가보지 못하는 사람들이죠. 그러니 저처럼, 자신들과 다르게 생긴 외국인을 만나는 건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대단한 사건인 겁니다.


지난번에 갔을 때 그들이 처음엔 마치 신기한 물건 구경하듯이 날 구경했었죠. 돌아올 때는 당연히 평생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을 생각했기 때문에 더 그렇게들 아쉬워하고 슬퍼했을 겁니다.

그런데, 그런 제가 불과 2년여 만에 다시 그들을 만나러 간 거예요.

그들이 절 보고 놀란 건 어쩌면 당연한 걸 수도 있어요. 딸자식이 결혼해서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면 그걸로 평생 두 번 다시 못 보는 경우도 허다하거든요.


동네 어귀에 들어서니까 처음엔 다들 누군가 싶어서 흘낏대더라고요. 그러다가 저를 알아본 사람들이 난리가 났어요.

한참 일을 해야 할 낮 시간인데도 모두들 달려나와서 절 반겨주더라고요. 전 그게 더 미안했어요. 그렇게 일을 못하면 그들은 그만큼 벌이가 줄어드는 걸 아니까...


원래는 저녁에, 일 끝났을 시간에 가려고 했는데 계획보다 너무 일찍 도착해버린 거죠.

모두들 잘 들 살고 있더라고요. 몇몇 안 보이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나이 드신 노인네 몇 분은 그 사이에 돌아가셨고, 나이 어린 딸들 몇은 결혼을 해서 다른 지역으로 가기도 했고...

그런데 아무리 둘러봐도 모나 엄마가 안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물어봤더니...

글쎄 모나 아빠가 여전히 술 취하면 때린다는 겁니다. 이번엔 너무 심하게 맞아서 차밭 관리인이 병원에 보냈다고 하더라고요.

내가 모나 아빠에게 달려가서 마구 따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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