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리걸음도 걸음이다
감은 매일 30분 넘게 글 쓰는 자리에 앉아 있었다. 요즘 말로 하면 구식이고 효과가 있을지 확실하지 않으며 실패 후에 핑계나 구실로 삼을 변명의 근거가 필요한 건지도 몰랐다. 그래도 앉아있으려고 했다. 천재적인 영감이 갑자기 번뜩이기를 기대하기보다 성실하려고 했다. 자신의 진심을 표현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으므로 매일 그만큼의 시간을 증거로 삼았다. 온 하루를 보낸 후에도 단어 하나 더해지지 않은 창작 노트를 앞에서 뒤로 몇 번씩 되넘겨 보면서. 날짜 있는 서너 줄의 메모와 날짜 없는 단어나 단말마의 순간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한참을 보고 있어야 '그건가' 싶어지는 그림이라고 그었을 선들과 어디로 향하는지 모를 화살표들. 어떤 소음도 혼잡함도 없는데 어지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어설픈 취객 같았다. 감은 매일 앉아 있었다. 낯선 길을 걷다 어디인지 모르게 됐을 때 멈춰서 지도를 펼치는 게 아니라 한 블록이나 두 블록쯤 내처 걷는 사람이었으므로. 열에 여덟, 아홉은 되돌아와야 했지만 '이젠 완전히 길을 잃었다'라고 생각하고 지도를 찾았을 때 목적지가 바로 앞에 있음을 알아차리게 되는 한 번의 경험이 모험을 계속하게 했다. 지구는 둥글기에 계속 걸어가다 보면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는 불가능에 가까운 노랫말을 믿었다. 감은 문득 윤리였는지 문학이었는지 오래전 기억에서 '세상에서 가장 곤란한 사람이 부지런한 미치광이다'라던 선생님 얘기가 떠올랐다. 선생님은 부지런히 사고를 치고 다닐 거면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으름이 낫다고 했다. 그게 스스로에게나 세상에게 모두 이롭다며. 선생님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맥락은 떠오르지 않았다. 열 번 중에 한 번 성공하는 모험을 계속하는 게 지구에게 미안한 일인지도 몰랐다. '어떻게 써낸 소설인데 출간은 해봐야지' 하며 돈을 들여서라도 종이책으로 찍어내려고 들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면 나무에게 미안한 일이고, 지구에게도 미안한 게 아닐까 하는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를 미래를 걱정했다. 걱정이 떠오르기 시작하면 감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걱정은 나쁜 징후였다. 기억이나 생각 속에서 걷기를 그만두고 몸으로 걷는 게 나았다.
감은 유행어를 즐겨 쓴 적이 없었다. 근래에는 '극락도 락이다' 같은 제법 리듬 있는 유행어가 있다는 걸 알았어도 그랬다. 그럼 '제자리걸음도 걸음이겠네'싶었고 '백지도 지도겠네'같은 얼토당토않은 게 떠오르기라도 한다면 나중에는 아무것도 안 썼지만 소설이라고 우길지도 몰랐다. 백지를 200장씩 묶은 책을 찍어서 백지 소설 같은 제목을 붙여서 세상에 내놓기라도 한다면 그야말로 지구야 미안해의 선봉장이 되는 거였다. '유행어는 안 돼.', 왜 유행어가 안 되는 거지? 마음을 좀 가볍게 하고 생각을 유연하게 해 주면 지금처럼 고리타분한 생각만 떠올리다 제풀에 지쳐 그만두지는 않을 텐데. 다시 마음이 문제였다.
제자리걸음은 걸음인가. 사무실이 지하에 있는 회사에서 일할 때는 계단을 올라가기 귀찮을 때 책상에서 일어나 팔을 힘차게 흔들며 제자리걸음을 걷다 앉곤 했다. 그 짧은 제자리걸음이 무슨 효과가 있을까 싶으면서도 그마저 하지 않으면 목도 어깨도 더 굳어지고 뻣뻣해지는 느낌이었다. 몸에 극적인 변화가 없어도 마음은 나아졌다. 이미 지하에 있으므로 '관에만 들어가면 무덤이구만'하는 웃긴 생각도 떠올랐다. 야근도 무덤 속에 있다고 생각하면 아무렇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하고 반년이 지났을 무렵 감은 30년 넘게 살던 큰 도시를 떠나 작은 도시로 옮겨왔다. 아는 사람도 없고, 지낼 곳도 마땅치 않은 낯선 도시로.
작은 도시에 살기 시작하면서 새로 구한 집 바로 앞에 흐르는 작은 시내를 따라 매일 걸었다. 아침에도 걷고 저녁에도 걸었다. 사람도 적고, 약속도 없고, 일도 없으니 바쁠 일도 하나 없었다. 물을 따라 큰 물을 향해 천천히 걸어 내려갔다가 물을 거슬러 작은 시내를 따라 천천히 올라오는 길이 좋았다. 연어는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거슬러 올라오면서 새로운 생명과 죽음을 모두 품고서 필사적으로 굴지만 감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별 일 없이 한적해도 됐다. 책상에 앉아서 떠오르지 않는 글을 생각하는 일보다 걷거나 뛰다 마음에 드는 구석에 앉아서 글을 생각하는 게 좋았다. 쓰지 못하는 결과는 같아도 글을 대하는 마음이 달랐다. 결과를 꼭 내야 하는가 하는 생각, 걸음이 꼭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가 하는 물음.
소설은 무해한 게 좋았다. 혼자 아는 깨달음도, 대중을 계몽하는 메시지도, 괴롭게 했던 사람들의 일이나 떠올리기만 해도 슬픈 일들로 채울 필요가 없었다. 가벼운 이야기면 어떻고 상상을 뛰어넘는 별세계 이야기면 어떠한가. 풀은 바람 앞에 눕고, 나무는 바람에 맞서 버티다 부러진다는데 상처도 아픔도 슬픔도 많은 세상에 쓰기에서 까지 다칠 필요가 있을까.
감은 열에 아홉 번 실패하는 모험을 그만두기로 했다. 유난히 더운 여름이었다.
2025. 07. 28. 13: 23 - 1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