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어디 사니
감은 마을 탐험에 나섰다. 낯선 곳으로 이사하면 늘 하는 일이었다. 나름의 순서와 방법도 있었다. 먼저 집이 있는 블록을 큰길을 따라 한 바퀴 돌아본다. 다음에는 골목이며 샛길이 보이는 대로 들어가서 끝까지 따라 걷는다. 갈래길이 나타나면 한쪽을 돌아보고 그 자리로 돌아와서 다른 쪽으로 들어가기를 반복했다. 단조로운 골목은 한 달이면 속속들이 알았고 복잡한 골목이라도 계절이 바뀌기 전에는 머릿속에 그려졌다.
지금 사는 마을을 돌아보는 데는 한 계절이 넘게 걸렸다. 겉으로 보이는 골목의 모습과 들여다보면 마주하게 되는 모습이 달랐다. 골목 치고는 넓어서 망설임 없이 들어갔다가 오른쪽으로 꺾어 돌자마자 막다른 길에 서 있는 대문과 마주친 게 세 번이 넘었다. 돌아서서 나오다가 들어갈 때는 발견하지 못한 샛길이 있어서 들어갔다가 큰길로 나온 일도 있다. 손수레 하나가 겨우 지나갔을 골목을 따라 대문과 쪽문이 연달아 달려있었다. 대문인 줄 알았던 큰 문이 큰 집에 달린 쪽문이라는 걸 한참 지난 후에야 알게 되기도 했다.
오래된 마을답게 집의 모양도 집이 지어진 시기도 다 달랐다. 이제는 보기 드문 흙벽으로 지은 집과 노출콘크리트 방식으로 지은 시멘트 집이 나란히 서 있기도 했다. 어떤 집은 얕은 담도 없이 열려있는가 하면 높은 담에 깨뜨린 유리병을 박아두거나 국경선에나 있을 철조망을 설치해 둔 집도 있었다. 뒤죽박죽. 감에게 이 마을은 서로 다른 세계에서 살다 온 사람들이 중구난방으로 모여서 자기 방식대로 사는 동네 같이 보였다. 어쩌면 자신 같은 이방인에게 가장 어울리는 마을이 아닐까. 운명적으로 한 번은 이 도시에 살게 되는 게 조금도 이상하지 않았다.
감은 늘 변변치 않은 집에 살았다. 감이 사는 집이 변변치 못했는지도 모른다. 어려서부터 자주 이사를 다녔다. 남들이 다 사는 아파트는 왠지 연이 없었다. 단칸방이거나 방이 두 개더라도 주방이 분리되어 있지 않거나 하는 식이었다. 다들 그런 집에서 사는 줄 알았다면 좋았겠지만 어쩌다 놀러 간 친구의 집은 자신의 집과 너무 달랐다. 뭔가 살림살이며 물건들이 있어야 할 자리를 찾아가 앉아있는 느낌이었다. 물건들마다 제 자리가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손님이 오면 내어주는 방석을 쌓아두는 자리조차 따로 마련되어 있는 걸 알았을 때 정말 놀랐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했다. 감의 집에는 방석이 없었고, 있다 해도 적당히 비어있는 자리에 던져두거나 쌓아두어서 자꾸만 자리를 바꿨을 거였다. 어머니 말고는 행방을 모를 물건도 여럿이었다.
"너는 어디 사니?"
도시에 살 때 감은 이 물음이 무서웠다. 친구들은 대충 '무슨 아파트', '어느 동', 하는 식으로 대답했다. 감이 알아듣거나 말거나 그들끼리는 얼른 이해하고 다음 질문을 이어갔다. 몇 층이라거나 몇 평이냐는 물음들. 감은 주택인지, 빌라인지, 단칸방인지, 월세인지 늘 대답이 궁했다. 밝은 길, 넓은 도로로 다니면 겁낼 일이 없었을 텐데 감은 늘 좁은 샛길로, 어두컴컴한 골목으로만 다니는 것 같았다. 아직 자신이 살 곳을 스스로 정한 적 없는 감은 오랜 시간 세상이 자신을 가두었다는 생각에 갇혀 지냈다.
감에게 마을 탐험은 하나의 출구 찾기였다. 몇 번의 이사를 겪던 어느 해, 감은 거의 완전히 길을 잃어버렸다. 유난히 골목에 갈림길이 많았다. 마치 커다란 나무가 가지를 쳐 나가듯 했다. 처음에는 자신 있게 내딛던 걸음이 움츠러들기 시작한 뒤에야 감은 지금이라도 왔던 길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휴대전화도 없었다. 내비게이션이 겨우 차에 붙어 나오기 시작하던 시기. 감은 방향도 가늠하지 못하면서 큰길이 있을 것만 같은 막연한 느낌을 따라다녔다. 비슷한 골목, 닮은 건물들, 구별되지 않는 대문을 얼마나 지났을까. 감은 경적 소리를 들었다. 큰 자동차나 버스에서나 울려 나올 큰 소리였다. 경적 소리의 흔적을 놓치지 않으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지 겨우 골목을 빠져나와서 큰길을 눈앞에 뒀을 때는 눈이 따가울 만큼 땀이 흐르고 있었다. 그렇게 당황하고도 감은 마을 탐험을 계속했다. 이 도시에, 마을에서 살아가는 동안 두 번은 그때처럼 길을 잃지 않으리라는 다짐이었다. 실제로 그 후로 감은 어디에 가서도 좀처럼 길을 잃지 않았다. 중요한 건 자신이 길을 잃었다고 생각하지 않는 거였다. 모르는 길이 나오면 알만한 길이 나올 때까지 더 나아가면 되는 일이었다. 길을 잃는다는 건 나아가고 있다는 의미였다.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출구를 찾거나 단서를 발견하게 되어 있었다. 괴테의 말처럼 "인간은 애쓰는 동안 방황하기 마련"이었다. 애쓰지 않는 사람은 방황조차 하지 않는다. 길을 잃은 것이 아니라 길을 찾는 중이었다. 출구가 없는 게 아니라 아직 만나지 못한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