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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르키 Mar 03. 2023

내 어떤 단점이 아이에게서 튀어나오면 당황스러울까?

내가 잊고 살았던 단점이 아이에게서 보인다는데.

육아하는 친구들을 오랜만에 만났다. 넷 중 둘은 어린 딸을 키운다. 이야기는 자연스레 육아로 흘러갔다. 산후엔 조금씩 힘든 감정들이 찾아왔었고, 남편의 역할과 친정의 도움이  중요하단 조언도 받았다. 아이들은 무척 사랑받고 있는 것 같았다. 엄마가 잠시만 자리를 비워도 두 눈은 엄마를 좇았다. 

친구들은 자기 아이의 성격에서 자기 단점이 보이면 당황스럽다고 했다. “나는 갈고 닦아 놓아서 잊어버린 단점이었는데 아이에게서 불쑥 튀어나온다니까.” 물론  눈에는 장점이 될 수도 있는 단점이지만, 친구들은 그 단점 때문에 살면서 곤란한 일들을 겪었다고 했다. “내 아이는 그런 어려움 안 겪으면 좋겠어.”

한 친구는 5살 딸이 자기처럼 오지랖이 넓어서 곤란하다고 했다. “친구들에게 관심이 많고, 좋아하면 막 뛰어가서 남자애를 꼭 안는다니까. 그런데 그 남자애의 심드렁한 표정을 보면, 딸이 안쓰러워져. 마음은 서로가 똑같지 않으니까. 나도 친구들을 너무 좋아해서, 내 공부를 소홀히 했던 게 아쉬워.”

또 다른 친구는, 3살 딸의 경쟁심이 매우 강하다고 했다. 질 것 같으면 포기해 버리는 게 꼭 자기를 닮았단 얘기였다. “달리기를 하다가도 1등을 못할 것 같으면 멈춰버린다니까. 나도 그래서 중간에 포기했던 것들이 생각나.”

그러다 보니, 다들 자기 어린 시절을 회상하게 됐다. 이제 한 달 뒤 결혼을 앞둔 친구는 중학생 때까진 모든 걸 잘했다고 했다. 학생회장을 맡고, 음악 체육 미술 공부 모두 잘해서 친구들에게 인기도 많았다고. 그래서 자존심이 강했고, 열심히 하는 모습을 드러내기 싫었고, 질 것 같으면 중도에 슬쩍 포기해 버렸다고 했다. 그것 때문에 공부도 열심히 안 한 것 같아 아쉽다고 토로했다. 처음 듣는 얘기들이었다. 나는 그 친구들의 말갛고 똑똑하고 야무진 모습만 봤을 뿐이다. 저마다 유년시절의 고민이 있었는 줄은 몰랐다.

나의 어떤 면이 아이에게서 불쑥 튀어나오면 깜짝 놀랄까? 엄마 말에 따르면, 나는 엄마의 예측을 뛰어넘는 곤란한 질문들을 했다고 한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7살 땐 동생이랑 싸우다가 엄마가 중재하려 했을 때였다. 그때 엄마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누나니까 참아라.” 그리고 나는 이렇게 대꾸했다. “이렇게 불공평하게 말할 거면 저한테 판사 되라고 하지 마세요.” 아직도 엄마는 그때가 웃긴지 가끔씩 얘기해 준다.  

엄마에게 참새 집은 어디냐고 물어본 적도 있었다. 엄마가 전깃줄이라고 답하자, 내가 이렇게 되물은 적도 있다고 했다. “어른 대답이 왜 그래요?” 

돌이켜 보면 어릴 적엔 나도 잘한다 소리를 많이 듣는 어린이였다. 달리기에서 지거나 선거에서 지면 모두가 보든 말든 씩씩거리며 울만큼 승부욕이 강했다. 하지만 실제론 못하는 것도 많았다. 낑낑대며 노력하는 모습이나 힘든 티를 내고 싶지 않아서, 어떻게든 괜찮은 척 씩씩하게 웃고 다니려고 애쓰느라 스트레스를 받았다. 상장도 많이 받고 임원도 맡았지만, 친한 친구는 별로 없었다.   

내 기억에 나는 나름 정직하고 양심적이었다. 반장선거를 하면 투표용지에 내 이름을 적어도 좋았을 텐데, 정정당당한 행동이 아닌 것 같아서 언제나 남의 이름을 적어냈다. 그래서 1~2표 차이로 부반장이 된 적도 여러번이었다.   


하지만 남에게 싫은 소리를 잘 못하고 혼자 삐쳐서 끙끙 속앓이하다가, 한꺼번에 확 터져 친구와 다투거나 멀어진 적도 있었다. 서운한 마음을 조리있게 전달하는 것이 내게는 어려웠던 것 같다. 우리 아이가 그러진 않으면 좋겠다. 나는 아이가 느끼는 감정을 틈틈이 물어보고 들어주고 안아주고 싶다. 

남편은 어떨까? 시부모님이 기억하는 남편의 어린 시절은 '알에서 태어난 박혁거세...' 부럽지 않을 만큼 집안의 신화가 되어 있었다. 돌 땐 기어서 어른이 불러주는 책을 뽑아왔고, 3살 때 신문을 읽었다는 이야기…. 심지어 아기 때는 욕심도 없었다고 했다. “옆집 애가 물건을 뺏으려고 하면 싱긋 웃으면서 줘버리더라. 싸울 줄도 모르고 웃기만 하고.” 반면에 아기 때의 나는 옆집의 드센 애에게 인형 안 뺏기려고 용쓰다가 결국 뺏기곤 울었다고, 엄마가 얘기해 줬다.


아이가 우리 둘 중에 누구를 닮아도 재밌을 것 같다. 육아 얘기를 들으며 오늘도 설렘 반, 마음의 준비 반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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