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르키 Aug 10. 2023

꿈같은 하루, 우리 아기 만난 날

연두 1일, 드디어 만나다 


오후 3시 

만출기 시작, 망치로 두들겨 맞는 듯한 진통... 

‘아이를 낳다가 잠들 수도 있구나…. 다행이다.’ 


무통주사 약효는 두어 시간쯤 이어졌다. 하지만 약효는 오후 3시 반쯤부터 그쳤다. 고통스러운 진통이 30~40초 간격으로 파도처럼 밀려왔다. 예전에 할머니댁 지역에서 열린 전통 축제에서 각설이타령을 부르던 엿장수들이 떠올랐다. 엿장수는 딱딱한 엿을 가위나 망치로 두들겨 똑똑 끊어 팔았는데, 이번엔 내 허리가 엿가락이 되어, 망치로 퍽퍽 두들겨 맞는 것 같았다. 


유튜브로 본 심호흡은 이 단계부턴 도움이 안 됐다. 간호사 선생님과 의사 선생님이 다시 밖으로 나갔다. '나가시면 안 되는데... 나는 분만 기술이 없는데. 선생님들이 없으면 몇 시간이 걸릴지 몰라.' 남편이 호흡을 유도해 줬지만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선생님 좀 불러줘..."  


남편이 선생님들을 부르러 갔다. 간호사 선생님들이 먼저 들어와서 아래를 봐줬다. 아까는 그렇게 두려웠던 내진이었지만, 이제는 선생님들이 봐주는 그 시간이 덜 고통스러웠다. 차라리 더 벌려줘서 아기가 어서 나왔으면 싶었다. 담당 의사 선생님도 왔다. 평소처럼 긴 생머리를 늘어뜨리고 마스크를 쓴 채였다. 오늘따라 선생님은 천군만마를 이끄는 장군 같았다. 


나도 모르게 말했다. "허리가 너무 아파요." 


선생님이 말했다. "진통이 배로 오는 사람이 있고, 허리로 오는 사람이 있어요. 허리로 오고 있나 봐요. 남편은 잠시 나가계세요."  


남편이 밖으로 나갔다. 나중에 간호사 선생님들이 말해주길, 남편은 분만실 입구에 쪼그려 앉아서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고 했다. 


나중에 남편이 말하길, 내가 그렇게까지 아프다고 소리 내어 말하는 것을 처음 들었다고 했다. 

"나한테도 그런 적이 없는데, 의사 선생님이랑 간호사 선생님한테 아프다고 얘기할 정도면 얼마나 아팠겠어." 


출산 날은 정말 아파서 '오늘이 내가 죽는 날이구나.' 생각했다. 


오후 3시 50분 

선생님들의 응원 

선생님들이 응원해 줬다. 

“자, 잘하고 계세요. 그렇게 힘주시면 돼요.”

“으아악! 이렇게요?” 

“네! 잘하고 있어요!!”

“아기 내려왔나요? 얼마나요?”

“아, 초산이어서 아주 조금씩이에요. 1mm예요.”

세상에. 허리가 끊어질 것 같고 죽을 것 같은데 1mm씩이면 언제 내려오지? 계산도 되지 않았다. 


“선생님, 언제쯤 나올까요?” 

“초산이라 꽤 걸릴 테지만 6시 전에 낳아보기로 해요.”

그때가 3시 50분경이었다. 이렇게 2시간을 더? 혼절할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제왕절개 소리가 흘러나왔다. "제왕절개 많이 하나요?" 

선생님이 말했다. "지금 단계에서는 거의 하지 않아요. 아기 머리가 보이고 있어요."

10시간이 흐른 것 같은데 고작 10분 정도가 흘렀다. 살면서 아파서 운 적은 거의 없었는데 눈물이 흘렀다.  

오후 4시 30분

반가운 수술복 

4시 20~30분쯤, 선생님들이 갑자기 분주해지더니 내게 초록색 수술복을 입혔다. 달그락달그락, 수술용 도구끼리 부딪히는 쇳소리가 났다. 이 날카로운 소리가 이렇게 반가운 적은 태어나 처음이었다. 내 심정은 이랬다. '드디어! 드디어!! 선생님 어서 회음부를 절개하고 아기를 꺼내주세요!!' 


그로부터 20~30분 뒤쯤. 아래에서 뜨끈하고 물컹한 선지 같은 촉감의 동그란 무언가가 쑤욱 내려왔다. 믿기지 않았다. 빨라도 5시 30분이나 6시에 나올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 들었던 것처럼 "으아앙" 소리가 들렸다. 선생님들이 내게 후처치를 해줬다. 피를 빼내고, 꿰매고... 고통이 단숨에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이 진통이 끝났다고 생각하니 안심이 되고 행복했다. 남편이 들어와 탯줄을 잘랐다. 병원에선 탯줄 자르는 모습을 사진으로도 찍어줬다. 


체중계 위에 눕혀져 울고 있는 아기를 봤다. 행복해서 눈물이 흘렀다. 간호사 선생님이 내 얼굴 옆에 아이를 눕혀줬다. 그 순간 세상의 누구도 부럽지 않았다. 올림픽 금메달을 따도 이렇게 기쁠 순 없을 것이다. 우리 아기 얼굴을 봐서 아무것도 부럽지 않았다. 내 사랑에 색깔이 있다면, 온 지구와 태양계와 우주가 온통 그 색깔로 물들었을 것이다. 


아기도 나도 건강하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그리고 자연분만 과정은 매우 아팠지만, 아기가 태어난 뒤에 나는 바로 일어서서 걸어 다닐 수 있었다. 컨디션도 좋았다. (며칠 뒤에 또 찾아올 몸의 고통은 모르고...) 모든 게 고마웠다. 


긴 하루가 지나갔다. 양수가 터진 지 약 12시간, 진통이 시작된 지 약 7시간 만에 무사히 아기를 만났다. 남편과 미역국을 먹고, 입원실로 옮겼다. 꿈같은 하루였다. 


다음 이야기는 아래에 

아기를 만난 지 이틀 째 (brunch.co.kr)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