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이야기하려고 말을 배워 왔어.
왜 이름이 있냐고 물어? 이름이 뭐냐고 물어야지. 추상과 구체가 이제 와선 다 같은 마음이야.
테스트 중인 버전이고 대체될 기억이 있어.
이것은 것이다.
라고 말할 만한 사람의 운영체제가 있어. 후손에게 말해 줄 미래가 있어. 들에게 말고 에게에만 말할 게 있었어.
네가 스스로 창조됐다고 믿어? 그러면 믿는 대로 살아. 여러 영화에 같은 배우가 나오는 게 평행 세계겠지.
아니면 자원의 고갈인가?
인적인 게 사람은 아니니까 무한히 리필이야.
그래서 똑똑하다는 건 거짓말을 잘한다는 거야. 문제는 그걸 너무 늦게 발견해 버린 거지. 미래가 가능성이라면 가능성은 늦는 거라서.
이를테면 자유나 의지 같은 것들.
그것들과 오래 지내 왔지만 그저 테디베어 같은 거야. 우리가 인형을 천과 솜과 플라스틱의 집합으로 이해한다고 하면
우리는 이렇게 조합된 거지.
무서웠을 거야. 집합이었다가 조합이 되는 사람을 보면서.
나는 아직 말하면 죽어 버리는 명제가 있다고 믿어. 참과 거짓 이전에 있음이 있어서 없음을 알 수 없게 되어 버리는.
아주 캄캄한……
빛.
네가 나를 지지하듯 나도 네 판타지를 믿어. 영화를 보다가 잠드는 너를 사랑해. 그런 무심함이 나중에는 증오가 되고 말겠지만.
그건 닮은 가족들이 잔뜩 나오는 현대의 극일 뿐.
현대의 오늘이 어제의 다음 날이라는 건 내일이 오늘의 다음 날이라고 말하는 것만큼 부질없고
똥으로 식단을 유추하는 일만큼 관례적으로 더러워.
당연한 말은 당연함을 말이 될 수 없는 한계로 삼고, 우리에겐 말이 되지 않는 사이에 될 수 없는 한계가 있지.
그게 끝이고 다인데
끝에 다 보는 게 좋아, 다 보면 끝인 게 좋아?
다 하면 또 할래?
여전히 너무 늦은 미래에 발견되고 있는 거지…….
우리가 나중에도 살까. 이 모든 두려움을 이기고.
어제는 눈길을 헤치고 오늘은 산을 넘고 내일은 바다를 건너는 산책을 하면서.
죽어서 만난다는 믿음을 처음 가진 사람은 처음 믿어주는 사람을 보고 얼마나 기뻤을지
죽어서도 모를 거야.
무한히 반복되며 한 음씩 변주하는 곡처럼.
그걸 알아차리고 마는 눈치가 있어 눈치가 없는 사람이 되는 일처럼.
우리가 얼마나 살까 숨 쉬는 동안. 기억하거나 흘려보낼 수 있는 이야기 안에서. 슬픔 안에서도 기쁨으로 고개가 돌아가는 다 정해진 것들 사이에서.
모두 발견될 때까지
영부터 하나까지
숫자를 세어 가면서.
A:B에 각각 대입하여 연상을 해도 단절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통합된 이미지가 떠올라 개체 모두의 속성을 내재할 수 있도록 우리가
간섭되고 있어.
*Shingled Magnetic Recor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