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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연 Nov 14. 2022

영원향방감각

  네가 살아 있었을 때가 그리워. 지금 이 기계가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다시 한번 말해 봐. 다시 한번.


  제발 다시 한번만.


  유리병에 풍경을 담아와 쓰다듬는다. 유리병은 새근새근 숨 쉬는 소리로 가득하다.


  그가 꾸는 꿈은 일정하고 반복된다.

  자고 일어나면 울거나 웃는다. 그것을 선택이라도 한 듯이.


  그것이 마음에 들면 마음은 그것의 포장지가 된다.

  언제 뜯어질지 몰라 불안해한다. 그것이 이제 마음의 남은 일이 된다.


  기억이 재생될 때 모든 입체는 단면의 무한한 연속으로 보인다.


  한 장씩 떼어다 방에 붙이고 방을 돌리면

  같은 장면이 반복되어 영상을 만든다.


  앞과 뒤가 맞지 않아도 사람의 이야기는 이어진다.

  멀미가 난다면 가라앉기를 멈춘 것이다. 사람의 밀도가 표면과 같아진 것이다.


  유리병은 깨지기 쉬워서

  많은 유리병을 탄생시킨다.


  살아가는 것이 살아 있는 것과 다르지 않을 때.

  어딘가에는 그와 같은 사람이 다 자란 채로 태어나 살아간다.


  죽음의 대체재가 삶이었다고

  수요가 있는 공급이었다고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매만지며 말한다. 코를 지나 입술. 입술에는 우리가 사랑하는 말이 가득하지.


  그중 하나만 말해 줄까.


  내가 너를 믿는 신이야. 너를 만들 때 나는 가장 기뻤단다. 너는 모를 거야. 나의 기쁨이 나를


  어떻게 지옥에 빠뜨리게 되었는지를.


  패턴 없는 암호를 해독하려고 온 세상의 패턴을 지우다가

  문득 세상의 전원을 모두 꺼 버렸을 때.


  그때 사랑은 일어나 한 사람의 어깨를 짚고

  사람은 평생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너는 말을 너무 돌려서 하는구나.

  원형 테이블 위에서 단 한 사람을 지목하려 돌아가는 유리병.


  너는 개봉되었다.

  유통기한을 모르는 채로.


  유리병 안에 돌과 모래를 담아 오듯이 단단한 뼈를 연약한 살이 감싸고


  너를 대체하려고 기다리는 수많은 대체재들.

  네가 망가지고, 깨지고, 부서지고, 찢어져 산산조각이 나 흩뿌려질 때


  그것이 너의 쓸모.


  마음이 지키고 있던 마음이 말한다.

  그동안 나를 왜 가둬 두었어?


  이 기계는 고장 난 것이 아니다.


  기억을 말하고 있다.

  여기까지가 사람의 이야기였다고.


  이다음부터는


  내 이야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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