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써도 상업적이라면 소 땡큐겠지만.
시와 순문학으로 글을 사랑하게 되어 한참 그와 유사한 글을 쓰다가 컨텐츠 업계에 들어오게 되며 나는 상업적인 글과 아닌 글의 차이를 명확하게 알고 또 느끼게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내 단상은 조금 추상적이고 자주 잘 안팔릴 것 같은 글에 가까운 편이다. 아주 객관적으로.
웃긴 건지 슬픈건지 알 수 없지만 나는 윗 문장을 쓰면서 한 번 웃었다.
일단 뭐든 나 답게 쓰는게 가장 빠르다는 생각에 나는 단상이 일면 그걸 자주 기록해 두는 편이다. 중고등학교 때는 수학 시험지와 문제집이라는 공식적인 창작 공간이 있었는데 요즘은 따로 공란인 수첩을 들고 다닌다.
조금 전 쓰다가 생각해 보니 그때 문제집에 썼을 때가 왠지 더 쉬웠던 것 같다.
수학문제가 소리 없이 주는 억압과 고통이 아무래도 좀 더 창작 욕구를 강하게 만들었으니까.
**
내가 단상을 기록하는 법.
나는 경험상 그날 든 깨달음이나 감정 중 가장 컸던 것들에 대해 곱씹으며 글을 쓰는 편이다.
물론 울분을 터뜨리듯 쓴 글이 종종 과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한번의 퇴고를 거치면 제법 괜찮은 글이 나오기도 한다. 첫 원고를 집필 했던 날은 진로에 대한 고민이 많은 날이었다.
남들은 한길로 모두 잘 나아가고 있는 것 만 같은 때에 나는 홀로 이것 저것 산발적으로 관심사를 뻗치며 이도 저도 되지 못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때 기록했던 단상은 다음과 같다.
*
하늘을 향해 곧게 자라는 것들이 있는가 하면 나 같은 것들도 있다.
어디를 향해야 할지 몰라 이쪽 저쪽으로 고개를 치받는 것들. 부끄러운 생의 흔적은 고스란히 몸에 남았고 그렇게 나는 굴곡진 나무가 되었다. 뒤틀린 몸뚱이로 자라는 것은 생살을 찢는 통증을 유발 했지만 세상은 유독 성장통에 대해선 관대했다. 이불 아래서 내지르는 비명처럼 고통보다 혼자라는 사실이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짙고 밝게. 세상은 눈을 깜빡이며 시간을 내 입 속에 구겨넣었다. 그 강압적인 식사를 잘 견디며 나는 무럭무럭 자라났다. 내가 그렇다. 찍소리 않고 견디는 일에 능하다. 자랑은 아니지만.
빈 오두막집 마당에 뿌리 내린 것을 후회했다.
바람이 부는 날엔 오두막집에게 가지를 던졌고, 그조차 지겨워지면 푸른 머리칼을 마구 헝클어트렸다.
헝클어진 머리는 종종 붉게 낙엽이 되어 떨어졌고, 낙엽은 차츰 발등 위로 녹아들었다.
나는 늘 내 나뭇가지로 집이라도 지어줄 새 한 마리를 기다렸지만 새들은 내게 머무는 법이 없었고, 새에게 주려던 향긋한 람툰 열매는 손끝에서 파르르 떨리다가 결국 발아래로 떨어져 터졌다.
썩어가는 그 주홍빛 열매를 보며 나는 세상 속에서 내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아갔다.
의미 없는 존재도 숨은 쉰다. 코끝으로 썩은 열매의 악취가 올라왔다. 헛구역질이 났다.
치가 떨리게 싫은 향, 나의 향이다.
치기 어린 마음으로 쓴 글이었다. 이 당시 내가 적잖게 싫었던 모양이다. '당시'는 뭐 그날 밤 정도였겠지만 아무튼 나는 가끔 새벽에 어떤 감정이 들면 아주 감사하며 쭈욱 써 내려간다.
이렇게 아카이빙 해 둔 글들은 언젠간 장편 소설을 쓰다가 글이 막히면 유용하게 가져다가 쓰고는 한다.
마감에 쫓길땐 전에 쓴 글이 내 119다.
이런 글들을 상업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작업이 필요한 것 같다.
다음편은 상업적인 글을 쓰는 법에 관해 말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