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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사라 Sarah LYU Dec 06. 2022

협박 ¹받은 비둘기가 보인 이 행동

영혼의 언어로 하는 소통 4

어느 예술가의 신비롭고 기묘한 경험



Clubhouse(클럽하우스)라는 음성 플랫폼에서 토론방을 운영하면서 엘리를 만났다. 그녀는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다가 프랑스 파리로 와서 자리 잡은 한국인 예술가이다.


처음 대화를 나눌 때는 서로가 파리에 살고 있는 줄 몰랐다. 대화 횟수가 늘어나면서 각자 어디에 사는지 자연스럽게 말하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그녀는 우리 집 바로 옆동네 주민이었다.


파리에서도 핫한 중심부에 있는 그녀의 아파트는 안뜰에 아름드리나무가 있는 운치 있는 건물이다. 2층에 위치한 침실의 창문으로 안뜰의 나무가 보인다고 한다. 창문을 통해 보이는 푸른 나무가 얼마나 눈을 시원하게 해 줄까 하고 난 잠시 상상했다.


그러나 그녀의 말은 달랐다. 그 나무에는 온갖 종류의 새가 날아들어 지저귀는데, 그 녀석들은 꼭 새벽마다 그렇게 떼로 몰려와 합창을 한단다. 처음엔 새소리가 예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서 소녀처럼 좋아했다. 하나 시간이 지나면서 즐거움은 고통으로 변했다. 거기에 가세하여 도시 비둘기들까지 그녀 아파트 창문틀과 나무 사이를 오가며 “구~구~구~”울어대는 통에 새벽마다 잠을 설쳤다.



비둘기와 다투는 그녀



비둘기가 나뭇가지에 앉아서 울 때는 그나마 침실과 거리가 있어서 참을 수 있었다. 그러나 창문틀에 다가와 소릴 지를 때는 새벽부터 아주 미칠 지경이었다.


그때마다 그녀는 손으로 창문을 통통 두드리며 비둘기를 쫓아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뿐, 쫓아내도 금세 또 찾아드는 비둘기는 그녀를 타오르는 분노에 휩싸이게 했다. 게다가 날이면 날마다 새벽에 유리창을 두드리는 짓거리는 수면 부족을 유발하여 눈밑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올 판이었다.


도시 비둘기의 이 되바라지고 예의 없는 행동에 엘리는 창문을 열고 가열찬 고함도 여러 번 질렀단다. 여전히 소용없었다.


도저히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엘리는 곰곰이 생각했다.



진심이 통했나?



그녀는 결심했다. 유리창을 두드리고 고함을 쳐도 먹히지 않으니 이번에는 차근차근 대화를 해봐야겠다고.


다음 날 새벽도 어김없이 비둘기가 엘리의 잠을 깨웠다. 그녀는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가라앉힌 후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그러자 비둘기는 늘 그래 왔듯이 서둘러 나무로 날아가 몸을 숨겼다.


엘리는 최대한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그것도 한국말로!


“비둘기들아! 너희들이 새벽마다 내 방 창문에 다가와서 난리를 피우는 바람에 내가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어. 제발 창문 근처에 와서 잠 좀 깨우지 말아 줘. 만약 내 말을 무시하고 한 번만 더 그랬다간 내가 펄펄 끓는 뜨거운 물을 너네 둥지 위로 부어서 모든 알들을 삶은 달걀로 만들어 버릴 거야. 내 말 알아듣겠지? 내일부턴 창문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길 바라. 나도 그런 비극은 원치 않으니까!”

그렇게 차분히 타이르고 창문을 닫았다.


목소리만 차분했을 뿐, 내용은 완전히 그로테스크한 호러물이다. 그렇게 이야기한 것을 비둘기가 제대로 알아먹었을 리는 없어 보였다.


다음날 새벽이 되었다.


습관이란 정말 무섭다. 비둘기가 평소에 잠을 깨우던 바로 그 시각에 엘리는 정확히 눈을 떴다. 귀를 기울여보았으나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일어나 창문 근처로 가서 문을 열었다. 정말 믿을 수가 없었다. 비둘기가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저만치 먼 곳에 떨어져 얌전히 있었다.


그녀는 그냥 우연이겠거니 생각하고 창문을 닫고 다시 잠을 청했다.


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그 후 몇 달이 지나도록 비둘기는 창문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비둘기가 엘리의 협박에 공포를 느낀 게 분명했다. 자신의 사랑스러운 알들이 삶은 달걀이 될까 봐 무서웠던 걸까? 물리적으로 쥐어 팬 것도 아니고 단지 말로 했을 뿐인데 비둘기들이 회개라도 했나?


사실, 비둘기들이 엘리의 말을 알아들은 건 지금 생각해도 모종의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다. 엘리의 진심이 통했다기 보다 ‘공포'가 통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들은 그러겠지. “아무리 그래도 어째 자식을 건드린다고 할 수 있어?”


하지만, 어찌 보면 참 얄밉다. 엘리의 협박 이후로 얼씬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들이 새벽마다 창문에서 피우던 소란이 민폐였다는 걸 안다는 것이다. 그들의 심술이 살짝 괘씸하다!!




<신비롭고 기묘한 이야기 시리즈>

1편. 기린과 식물 사이의 목숨을 건 눈치작전

2편. 양계장 목사님이 들려준 이야기 - 바위도 할 말이 있다?

3편. 그 선인장은 결국 이런 선택을 했다!

4편. 협박받은 비둘기가 보인 행동

5편. 한 밤중의 엘리베이터

6편. 트라우마 겪는 살인 현장의 식물은 결국 이렇게 된다.

7편. 어느 날 금붕어가 내게 말을 걸었다.





각주1. 겁박과 협박은 약간의 차이가 있는 단어이다.

겁박은 으름장을 놓고 겁만 주는 것인데 반해, 협박은 으름장 놓고 겁을 주면서 상대의 행동을 변화시키려는 의도까지 포함된 단어이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겁박 보다는 협박이 더 맞는 말이다.

인간 사회에서 '협박'은 심각한 중죄에 해당된다는 것, 다들 아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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