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새로운 선택의 문턱에서
제4장: 새로운 선택의 문턱에서
서연은 과거의 왕궁 복도에서 자신의 발소리가 울리는 것을 들었다. 모든 것이 생생했다. 꽃이 만개한 정원, 궁전의 황금빛 장식, 시녀들의 속삭임. 삼천 년 전, 이 모든 것이 그녀의 일상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것은 그녀의 선택이 만들어낸 비극의 시작점이었다.
"서연."
낯익은 목소리가 그녀를 멈춰 세웠다. 그녀가 돌아보자, 마법사 이안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검은 머리카락은 달빛을 받아 반짝였고, 그의 눈은 따뜻한 빛을 머금고 있었다.
"왜 이렇게 초조해 보이는 거지? 무슨 일이야?"
서연은 그의 모습에 순간 말을 잃었다. 삼천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그를 다시 마주한 순간, 그녀의 가슴은 여전히 아팠다. 그녀는 그의 얼굴을 잊은 적이 없었다.
"이안…"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고였다. 그녀는 왜 자신이 이토록 간절히 그를 지키고 싶었는지를 다시금 깨달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단순히 감정만으로 움직일 수 없었다. 그녀는 이 순간이 저주의 시발점임을 알고 있었다.
서연은 이안과 함께 정원을 거닐며 생각했다. 그녀는 이 밤이 바로 저주를 불러왔던 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날 밤, 왕궁에서 열린 연회에서 이안의 존재가 발각되었고, 왕의 분노가 그를 향했다. 그녀는 그를 지키기 위해 금단의 마법을 사용했고, 그 대가로 저주를 받았다.
이안은 그녀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서연, 무슨 일이 있는 거야? 네가 평소와 달라 보인다. 뭔가 숨기고 있지 않아?"
그의 물음에 서연은 잠시 멈칫했다. 그녀는 그에게 진실을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었다. 이번에는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그녀는 과거의 선택을 되짚었다.
'나는 그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지만, 결국 그를 더 큰 비극에 빠뜨렸다. 이번에는 달라야 해.'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이안, 오늘 밤에는 나와 함께 이곳을 떠나야 해. 왕궁에서 멀리 벗어나자. 여기서는 우리를 둘러싼 위험을 피할 수 없어."
이안은 그녀의 말을 듣고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소리야? 갑자기 왜 그래? 내가 여기에 온 건 너를 위해서야. 널 두고 어디로 간단 말이야?"
서연은 그의 손을 꼭 잡았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를 곧 알게 될 거야. 하지만 지금은 날 믿어줘. 우리가 여기 있으면 안 돼. 제발, 나와 함께 떠나줘."
그러나 서연의 계획은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그녀와 이안이 몰래 왕궁을 떠나려는 순간, 왕의 경비병들이 그들을 가로막았다. 그녀의 동생이자 왕국의 후계자인 세령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누나, 당신이 왜 이 남자와 함께 있지? 그가 마법사라는 걸 몰랐다고는 말하지 않겠지."
세령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그는 서연을 배신자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세령, 이안은 우리 왕국에 어떤 해도 끼치지 않았어. 그를 보내줘. 그는 위험한 존재가 아니야."
그러나 세령은 고개를 저으며 칼을 빼들었다.
"우리 왕국의 안전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중요해. 그를 지키려는 누나의 행동이 우리 모두를 위험에 빠뜨릴 거야."
서연은 세령을 설득하려 했지만, 그의 단단한 신념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이 상황이 바로 저주로 이어진 순간임을 깨달았다.
서연은 손에 쥔 작은 붉은 구슬을 느꼈다. 그것은 그녀가 과거와 마주한 대가였고, 그녀의 선택을 바꿀 열쇠였다.
'이번에는 다르게 해야 해. 내가 그를 지키기 위해 힘을 사용한다면, 다시 모든 것이 반복될 뿐이야.'
그녀는 조용히 구슬을 쥐며 결단을 내렸다.
"세령, 그를 죽이지 마. 내가 모든 것을 책임질게."
그녀는 이안을 감싸며 말했다.
"내가 너희를 떠나겠어. 왕국도, 왕위도, 모든 것도 다 포기할게. 하지만 그를 해치지는 마."
세령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정말 그럴 수 있겠어? 너는 우리 왕국의 공주야. 너 없이는 왕국의 안정을 유지할 수 없을지도 몰라."
그러나 서연은 단호했다.
"내가 왕국에 남아 있다면, 비극만이 남을 뿐이야. 그를 지키기 위해선 내가 떠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야."
세령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칼을 내려놓았다.
"좋아. 네 말대로 하겠다. 하지만 다시는 우리 앞에 나타나지 마라."
서연은 이안의 손을 잡고 왕궁을 떠났다. 그녀는 자신이 저주를 풀기 위해 과거를 바로잡았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는 불안감이 남아 있었다. 그녀의 선택은 왕국의 운명을 바꿨지만, 이안과 함께한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는 알 수 없었다.
달빛 아래, 두 사람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의 손에 쥐고 있던 붉은 구슬이 사라졌다. 구슬이 사라지며 그녀는 마음 깊숙이 알 수 없는 해방감을 느꼈다.
"이안, 이제 우리는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어."
그녀는 그의 손을 꼭 잡으며 미소 지었다. 그러나 그녀의 선택이 정말 모든 것을 바꾼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시련의 시작일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달빛 아래, 새로운 운명의 장이 펼쳐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