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30일
한달살기 마지막 날인 오늘 독일의 바스타이(Bastei/요새)에 다녀왔다. 바스타이는 Elbe Sandstone Mountains의 엘베 강 위에 있는 암석을 가리킨다. 해발 305미터에 달하는 바스테이의 들쭉날쭉한 암석은 100만 년 전에 물에 의해 침식되어 형성되었다고 하는데 완전히 압도적이었다.
파리에 다녀온 후부터 계속 피곤하다고 쉬려고 하는 두 동행을 꼬드겨 8시 40분 데친역을 출발하는 엘베라베 기차를 탔다. 결과 두 동행으로부터 지금까지 한달살기 하면서 가본 인근 장소 중에서는 최고라는 찬사를 받아냈다. 흐뭇.
바드샨다우에서 내려 마이센행 S1 기차로 갈아타고 두 번째 역인 Kurort Rathen역에 내려 엘베강으로 내려가니 승선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지어 있었다. 다들 바스티아로 가는 사람들인 듯했다. 사람들이 승선하는 데만 20분쯤 걸렸다. 맞은편 마을인 래튼(라뜬 Rathen)까지 가는 데는 불과 2분.
일단 래튼(Rathen) 마을로 들어서자 한국의 남해 독일마을의 자연 버전이 눈앞에 나타났다. 무슨 영화 세팅장소도 아니고 실제 주민들이 거주하는 곳이 어떻게 이렇게 예쁠 수 있을까 싶게 근사하고 참한 마을이었다. 며칠 전에 갔던 세브니치 마을이 심플하고 보이시하게 예쁜 마을이라면, 래튼(Rathen)은 온화하고 품위있고 아름다운 여성적 매력이 감도는 마을이었다.
마을의 예쁨에 취해 길을 따라 걷다가 마을입구 레스토랑에서 오전에 주문이 되는 이름 모를 음식(카레맛 나는 진한 스프라고 할까)을 먹은 후 바스타이(바스테이? Bastei)를 찾아올랐다. 가는 길이 개울 따라 난 평평한 길이라 뭔가 이상하다 하며 걸었다. 바스타이는 독일의 장가계라 불리고, 작센의 스위스라고 불린다는데... 그렇다면 산을 타고 올라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가 갔던 장소는 바스타이가 아니라 무슨 야외콘서트 시설이 있는 엉뚱한 곳이었다. 중간에 산으로 올라가는 좁은 길이 있었는데 그 길을 지나친 거였다.
그래도 가는 길이 예뻐 사진을 찍으며 되돌아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잠시 쉬었다. 원기를 회복한 후 사람들이 몰려 올라가는 데로 따라 올라갔다. 여길 오는 사람들이 아무렴 어딜 가겠어. 따라 가보면 바스타이겠지.
바스타이는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현지인들에게는 주말 데이트 코스로 많이 찾는 명소였다. 바스타이로 올라가는 길은 한가족 팀, 부부 팀, 연인 팀, 친구 팀들이 어울려 올라가는 인파로 채워졌는데, 서로 사진도 찍어주고 옆으로 빠져나가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는 모습이 스위스국립공원이 주최하는 무슨 축제의 현장 같았다. 특이한 게 산을 오르면서 개를 데리고 온 사람들이 되게 많았다.
올라가는 길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지만 아주 쉽지도 않아서 중도에 포기하고 내려가는 사람도 보였다. 나도 사실 중간에 경치 좋은 곳에서 저 아래 엘베강이 흘러가는 모습을 한참 지켜본 후 이만 내려갈까하다가 이까지 와서 돌아가면 억울하지 싶어 끙차 신음을 뱉어내고 올라갔다.
정상에 섰을 때의 기분이야 한마디로 째지지 뭐.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실에서 정상에 설 가능성은 극히 낮지만(솔직히 제로에 가깝지만), 자연은 의지와 노력만 있으면 정상에 선 기분을 느끼게 하니 그 품이 참으로 넓고 높고 어질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이 또한 나의 망상이고 엘베강에 띄운 외륜선을 타고 이 멋진 마을로 건너온 오늘의 수백 명 동행들은 각자가 가진 기대와 소망을 품고 바스타이로 올라왔을 것이다. 나 또한 마지막 날을 지난 한달을 회고하는 것으로 흘려보내고 싶지 않아 욕심을 부렸지만, 내 체력에 무리다 싶게 하늘로 뻗은 듯한 요새(바스티아) 다리로 오른 것은 내가 품은 소망이 있어서일 것이다.
내일 대한항공편으로 한국으로 가는 길, 아직 얼굴을 자세히 보지 못한 소망을 조심스레 품고서 돌아간다. 귀하게 끈기있게 변함없이 대해야겠다 결심한다.
오르막길을 많이 걸었더니 피곤하다. 이제 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