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온 가족이 일찍 잠든 이 밤. 무슨 재밌는 걸 보며 자유를 만끽할까 고민하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지난 12달을 한 달 한 달 돌아보다 문득 우린 도대체 어떻게 그런 마음을 먹을 수 있었던 걸까 하고 새삼 또 한 번 신기함을 느낀다.
언젠가 멀지 않은 시간에 우리가 과연 회사에 사표를 던질 수 있을 것인가로 고민하던 나날들 이였다. 그러던 중 올 초 코로나가 온 세상을 뒤덮었고 우리 가족은 집 안에 갇힌 채 회사생활과 어린 두 아이 유치원 교육을 병행하던 중이었다.
문득 깨달았다. 이 집. 이 비싼 은행 집을 과연 우리가 계속 유지할 필요가 있을까? 출근을 안 해도 된다면 집을 바꿀 기회는 바로 지금이다! 이런 생각이 들자 우선 살던 동네 부동산을 먼저 뒤져봤다. 우선 집이 좁아져도 괜찮으니 렌트비가 엄청 싼 곳을 알아봤다. 어차피 사표 쓸 생각이면 엄청난 변화를 겪는 연습을 미리 해보자 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엄청 싼 건 이 동네에 없다는 게 문제였다. 은행 융자나 월세로 내야 하는 렌트비나 막상막하인데 집만 작아지는 것이 함정이었다.
그렇게 동네 부동산 시세를 알아보다 점점 꼭 이 도시여 만 할까? 그러다 꼭 이 주에서만 살라는 법은 없잖아? 이러다 보니 캐나다 중간도시 토론토에서 저 서쪽 끝 밴쿠버 쪽 까지 보게 되었다.
토론토나 밴쿠버나 집값 비싸기로는 1, 2위를 다투는 격이라 밴쿠버 변두리를 보기 시작했다. 날씨는 훨씬 따뜻하면서 집값이 싼 작은 도시로 알아봤다.
3월에 이사 갈 생각을 하며 살던 집을 세놔야겠다고 결심하고 집을 손보기 시작했다. 같이 살던 동생들에게 8월 말에 독립을 하라고 미리 알려 주었다. 조금은 갑작스러웠겠지만 대학생 나이이니 이제 독립해서 혼자 살아갈 때가 되기도 했다.
이렇게 발표하고 나니 진짜 우리도 어디론가 이사를 가긴 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렇게 몇 달을 집수리와 함께 BC주 쪽으로 집을 보고 있었다. 이때 남편이 한마디 한다.
'돌이킬 수 없는 수를 놔야 해'
이러면서 7월에 1박 2일로 밴쿠버 비행기 티켓을 끊어 버렸다. 인터넷으로 집을 아무리 봐 봤자 감이 잘 안 오니 그 도시를 보고 오려는 생각이었다. 그 티켓을 삼으로써 어쩌면 반은 농담 같았던 '저희 비씨 주로 이사 갈까 생각 중이에요'가 아주 농담은 아닌 것이 되어 버렸다.
무슨 비즈니스 트립을 온 것처럼 체력적으로 힘든 여행이었다. 애들은 시댁에 맡겨두고 엄청 오랜만에 둘만에 시간이라 좋기도 했지만, 비행기 5시간 왕복을 이틀 만에 하고, 그 안에 집도 한 10군데를 둘러봤다. 정말 딱 집만 보고 호텔에서 잠만 자고 전날 새벽같이 출발했다 다음날 자정 넘어 시댁에 도착했다.
이때 까지만 해도 우리가 설마 정말 이곳으로 오게 될까? 싶은 마음이었다.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본 집 중 어떤 집이 가장 좋았는지 지금 바로 오퍼를 쓰고 집을 정해야 하는 건지 심각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직접 보니 사실 집값이고 뭐고 이 도시가 정말 너무나도 아름 다웠다. 토론토에는 없는 멋있는 산들. 집 근처 레이크와 강가. 이런 곳에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 사이 토론토 우리 집에 세입자가 정해졌다. 우린 이제 정말 어디론가는 이사를 가야 한다. 우리가 본 10개의 집은 모두 토론토 집보다는 쌌다. 그래도 이왕 이사 온 거 확! 아주 확! 더 부담 없는 집으로 결정해야 하는지 아니면 이왕 멀리 오는 거 토론토에서는 꿈도 못 꾸던 멋있는 집으로 욕심 한번 부려봐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
결론은 본집 중 가장 싼 집으로 결정했고 우린 지금 이 새로운 집에서 2020년 마지막 날을 보내고 있다.
이사 오고 올 수리를 해서 토론토에서 살 때보다 더 좋은 집이 되었고, 큰애 초등학교도 바로 길 건너라 집에서 일하면서 학교 보내기도 정말 좋다. 우리가 원했던 집에 들어가는 비용도 절반 이상으로 줄일 수 있게 되었고 생각지도 못했던 애들 데이케어 비용도 같이 절반으로 줄이게 됐다.
차 타고 10분만 나가면 어디 멋진 곳으로 여행 온 것만 같은 동네가 정말 좋다.
이곳으로 이사 올 그런 무모한 용기는 어디서 났는지.. 한 해를 돌아보다 그때 그런 결심을 한 남편과 나에게 기회는 지금이라며 용기 내길 잘했다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