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트머리국제마을영화제의 시작
이 영화제를 시작한 이유부터 스스로에게 다시 물어야 한다.
나는 왜 이 영화제를 시작했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그중 하나는 세계적으로 획일화된 영화제 풍경
에 대한 회의에서였는지 모른다.
너무 익숙 해저 버린 장면들—자신만만한 감독들, 거대한 스크린, 감동과 힐링을 만끽하는 관객들.
그러나 그런 익숙한 틀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왜냐하면 그건 삶의 구체성을 벗어난 모습일 지도 모른다.
단순한 대도시에서의 상영이 아니라, 먼 곳에서 찾아온 외국 손님과 마을의 주인이 관계를 맺는 자리이고 싶
었다. 멋진 작품을 만나 그 자체로 감동과 영감을 받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싶었는지 모른다.
사실 영화와 예술, 그리고 자본의 흐름은 언제나 피라미드의 밑변까지 닿지는 못했다.
정치에서도, 경제에서도, 수많은 축제에서도 변방에 머물러야 했던 삶은 바로 나와 동떨어진 허술한 관념만
은 아니었을 것이다.
멀리서 보이는 축제장의 애드벌룬을 바라보며, “저곳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라고 중얼거리
던 시골의 어느 할머니의 기억은 아직도 또렷하다.
재난과 전쟁, 가난은 언제나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가혹하게 피라미드의 밑변에게 닥친다.
2020년, 100개의 마을 영화를 만들겠다는 내 젊음의 발원을 마무리하고 난 후 , 코로나가 극심했던 그 해
나는 깊은 허무에서 헤어 나오지를 못했다. 어쩌면 새로운 방향과 슬로건이 나에게 필요했다.
오랜 준비 없이 시골 아이들이 부담 없고 즉흥적이고 자유롭게 자신의 끼를 뽐내는 마을의 잔치 같은
그런 자리를 만들고 싶었다. 시골 마을 사람들은 먼 나라에서 온 외국의 영화감독과 한자리에 앉아 파전을
손수 부치어 막걸리를 나누는 웃는 그런 모습을 꿈꾸었다.
스크린 하나만 걸면 이제까지 전혀 의미 없었던 공간이 멋진 극장이 되고,
그렇게 작은 마을이 세계와 연결되는 신비로운 풍경의 주인이 되는 변화를 경험하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돈도 없고 공적지원도 받을 길 없었고, 한 사람의 자원봉사스텝도 없는 나로선
바로 그 지역에 머무는 시간만이라도 십시일반 서로 돕고 함께 즐길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하게 되었다.
바로 그 시간 과 그 자리에서 함께하는"모두가 주체가 되는 축제"를 만들고 싶었다.
시골의 아이들이 어떤 권위에 주눅 들지 않고 그 자체로 마을의 주인으로 손님을 맞이하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축제가 된다면 어떨까?
그들이 주눅 들고 수동적이 되지 않고도 세계와 이어지는 한 줄기 끈과 마을이 서로
만나는 마중물이 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잔치의 완성일 것이라는 생각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감독들에게 상이라도 하나 건넨다면, 거대한 실내의 극장 무대가 아니라 마을의 500년 된 느티나무 아래에
서라면 얼마나 좋을까. 더 나아가 시골할머니들이 멋진 작품을 만든 외국감독들에게 상을 건네는 것은
또 어떨까 ?
그것이 단순히 낯선 이벤트가 아니라 진정으로 마을의 주인다운,삶의 주인으로서의 자긍심이
아닐까? 감독들에게는 얼마나 깊은 에너지와 새로운 영감을 안기게 될까 ?
결국 돈 한 푼 없이 그리던 황당한 꿈은 지역의 수많은 후원단체와 개인 후원자들로 인해 꿈이 아니라 현실
이 되었다.
이제는 5년간 수많은 나라의 외국영화감독들이 한국의 30개 마을을 다니면서 만난, 꿈같은 이야기를 추억
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