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츠 더스트(Bites the Dust)(3화)
불 꺼진 고시텔 방 안. 현승은 비좁은 침대 매트리스 위에 누워 금이 간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다.
우울증 커뮤니티 게시판 속 ‘살기 ㅈ같다’, ‘죽고 싶다’는 글들.
시계를 보면 벌써 오전 5시다. 현승이 한숨을 푹 내쉬는데, 게시글 하나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오늘 자살청부회사 갔다 옴. 이 글 언제 잘릴지 모름.’
자살청부회사…? 현승은 홀린 듯이 게시글을 클릭해 보았다.
‘관심 있으면 가 봐라.
바이츠 더스트
서울시 도평구 진산동 405-21번지’
현승은 서둘러 화면을 캡처했다. 자살청부회사라니? 뭐 하는 데지? 나를 죽여준다는 건가? 현승의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이 뛰었다. 현승은 재빨리 사망보험 가입 서류를 뒤져보았다.
‘사망보험금 3억 5천만 원’
현승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서둘러 포털사이트에 ‘자살 보험금’을 검색해 보고.
‘우울증, 조현병 등 자유로운 의사결정이 불가능하다는 의학적 입증에 따라 지급 가능성이…’
이어서 ‘자살청부회사 바이츠 더스트’를 검색해 보는 현승. 검색결과 페이지에는 록밴드 퀸의 노래 <Another One Bites the Dust> 가사만 나온다. 현승은 방금 전 휴대폰으로 캡처해 둔 ‘바이츠 더스트’ 주소를 보며 고민에 잠겼다.
‘어차피 더 갈 데도 없잖아.’
현승은 그곳을 찾아갔다. 간판 없는 허름한 건물 입구. 현승이 유리문 안쪽을 보면 내부가 보이지 않고,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가자 정장 차림의 남자가 계단 앞에 서 있다. 긴장하며 다가가는 현승.
“여기가 혹시 바이츠…?”
남자가 손을 들어 현승의 말을 막고, 인이어 무전기로 작게 중얼거린다. 태블릿을 꺼내는 남자. 화면에는 ‘비밀유지서약서’와 간단한 인적사항 기입란, 서명란이 보인다.
“이곳에서의 일은 일체 비밀로 해 주셔야 하고, 위반 시 책임은 의뢰인이 지셔야 합니다. 동의하시면 여기 작성하시고 서명해 주시죠.”
현승은 잠깐 망설이다 서명했다. 남자가 건넨 안대를 끼고, 남자를 따라 더듬더듬 건물 아래층 쪽문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도어록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와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남자는 현승을 안으로, 더 깊은 곳으로 안내했다.
지하로 연결된 계단을 지나 어두컴컴한 비포장 통로를 걷는 두 사람. 현승은 안대 낀 채 두리번거리며 따라갔다.
커다란 대리석 문 앞에 도착하자, 남자는 지문인식으로 문을 열고 현승의 안대를 뺐다. 강한 빛과 함께 보라색 대리석으로 둘러싸인 방이 보이고, 고급 원목 데스크 앞에 자주색 정장을 입은 중년 여자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여자는 기괴한 웃음으로 현승을 맞으며 자신을 실장이라고 소개했다.
“바이츠 더스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접수하시겠습니까?”
“여기가 정확히 뭐 하는 데죠? 자살청부회사라고 하던데…”
“회사가 아니라 단체입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실장을 따라 한쪽 벽면으로 가자, 큰 화면이 떴다. 경쾌한 음악과 함께 영상이 재생되고, 화면 속에는 그래픽과 함께 얼굴이 가려진 사람들이 등장했다. 실장은 화면 속 내용들을 명랑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바이츠 더스트는 ‘누구나 쉽고 공평하게 죽을 수 있는 존엄사(死)회’를 만들기 위해 3년 전 익명의 창립주가 만든 비영리단체입니다. 의뢰인의 자발적 죽음을 도와드리는 선택사지원서비스를 제공하며…”
“선택사지원서비스…?”
“기존의 비전문적이고 실패확률이 높은 자살행위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보험설계사, 법의학자, 경찰 등 사회 각 분야의 전문가 회원님들과 함께 사고사위장시스템을 개발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사고사요? 왜죠?”
“사고사는 자살이나 고의적 타살에 비해 유가족의 정신적 충격이 비교적 작다고 판단되기 때문입니다. 의뢰인과 유가족 모두를 존중하기 위한 취지라고 보시면 됩니다.”
“아…”
“이어서 저희 단체는 50만 명에 달하는 전국 네트워크를 활용해 면대면 홍보를 진행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100% 집행 성공률을 달성해…”
현승은 괜히 조급해졌다.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을 것 같았다.
“쨌든, 저 죽게 해 준다는 거죠?”
실장은 살기 띤 미소로 답했다.
“물론입니다. 저희 전문이니까요.”
“… 좋네요. 바로 접수할게요.”
실장은 빨간 팔찌를 내밀며 말했다.
“현재 대기자가 있어, 이것을 손목에 착용해 주시고, 건물 옥상에서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현승은 팔찌를 받고 들여다보았다. 팔찌에는 숫자 ‘698’이 적혀 있었다.
건물 옥상에 도착하자, 작열하는 태양과 함께 후텁지근한 공기가 확 끼쳤다. 현승은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 옥상 난간 앞에는 교복 입고 담배 피우는 여학생이 있었다. 교복에는 ‘오류영’이라는 명찰이 붙어 있었다. 현승은 그녀와 거리를 두고 난간에 다가서며 류영의 손목에 채워진 빨간 팔찌와 그 안에 적힌 숫자 ‘697’을 보았다.
“저기, 불 좀…”
갑작스러운 남자의 목소리에 현승이 돌아보면, 공사장 동료 박 씨가 담배 한 개비를 손에 들고 서 있다. 현승은 박 씨의 손목에도 빨간 팔찌가 채워져 있는 것을 보고 놀랐지만 애써 덤덤하게 담뱃불을 붙여주었다. 박 씨의 손에는 검은 봉지가 들려 있었는데, 그 안에는 포켓몬 책가방이 담겨 있었다.
“고맙습니다. 저는 박중식입니다.”
현승은 박 씨의 느닷없는 통성명에 당황했다. 현승은 몇 개월을 같이 일한 동료가 자신을 초면인 듯 대하는 모습에 놀랐고, 그의 이름을 이제야 알았다는 사실에 한 번 더 놀랐다. 그는 현승을 아예 못 알아보는 눈치였다. 하긴, 현승도 어딜 가나 존재감이 없기는 했다.
“아, 네.”
“몇 번이에요?”
중식은 현승의 팔찌를 쓱 보며 물었다. 평소와는 달리 묘하게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였다. 현승은 자신의 팔찌에 적힌 숫자를 보였다. 중식은 자신의 숫자 ‘696’를 가리키며 말했다.
“제가 먼저 가겠네요. 허허. 콜록.”
어색한 정적이 흐르고. 중식이 주머니에서 꼬깃한 가족사진 한 장을 꺼내 보여주며 말했다.
“우리 아들, 선우예요. 잘 생겼죠? 우리 늦둥이.”
현승은 사진 속 중식과 중년 여자, 남자아이를 슬쩍 보며 끄덕였다. 중식이 말을 이었다.
“옆엔 집사람인데 몇 년 전에 죽었어요. 아이가 엄마 얼굴도 모르고.”
숙연해진 현승. 멀리 떨어져 있던 류영이 두 사람 쪽을 쳐다보았다. 중식이 또 말했다.
“난 평생 노가다만 했어요. 얼마 전엔 내가 허리를 다쳤는데, 병원서 나더러 폐암 말기라네? 콜록… 보험 하나 있던 거 찾아봤더니 웃긴 게 뭔지 알어요?”
현승과 류영이 멀뚱히 중식을 바라봤다.
“암 진단비는 없고 사망보험금만 있습디다.”
체념한 듯 껄껄 웃는 중식의 모습에 현승은 작게 탄식했다.
“아…”
“허무하드라고. 죽어라 일만 하고 살았는데 돈은 벌어도 끝이 없고, 아인 쑥쑥 크는데 물려줄 건 병수발뿐이라…”
“…”
“이렇게라도 몇 푼 남겨 주고 가는 게 자식 위한 길 아니겠어요?”
“핑계 아닌가.”
류영이 불쑥 끼어들었다. 중식은 뜨끔했는지 발끈했다.
“그래요. 나도 좀 쉬고 싶었어… 어차피 못난 애비는 없느니만 못하지 않나?”
중식이 현승을 바라보며 말했다. 공감해 주길 바라는 눈치였다. 현승은 뭐라 반응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다. 중식은 괜스레 화제를 돌리려는 듯 류영을 쳐다보았다.
“아이고 참. 내 하소연만 늘어놨네. 학생은 몇 학년?”
“고3이요.”
“젊은 나이에 어쩌다 여까지…”
류영의 대답이 없자 무안해진 중식은 현승을 보며 물었다.
“선생님은 왜 여기…?”
“… 칫솔이 무거워서요.”
“칫솔?”
류영이 현승을 돌아보았다. 그때 옥상 출입구에서 남자 직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696번 고객님, 상담실로 모시겠습니다.”
중식이 직원을 따라가고, 현승과 류영의 눈이 마주쳤다. 두 사람은 시선을 돌리고 각자 다른 곳만 보며 담배 연기를 내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