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츠 더스트(Bites the Dust)(2화)
쓰레기와 잡동사니로 발 디딜 틈 없는 고시텔 안. 한쪽 구석에 딸린 좁은 욕실에는 초췌한 얼굴의 현승이 무언가를 빤히 바라보고 서 있다. 칫솔. 이 작은 물건은 현승이 들기엔 너무 무겁고 버겁다. 현승은 고개를 돌려 수납장 안에 넣어둔 드라이기를 빤히 쳐다본다. 출근 시간에 맞춰둔 휴대폰 알람이 울리고, 현승은 등 떠밀리듯 칫솔을 들고 양치질을 한다.
나현승. 그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남성이다. 가난한 부모 밑에서 외동으로 자라 이름 없는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출받은 학자금으로 이름 없는 대학을 다니다, 아버지의 빚을 갚기 위해 휴학하고, 30대가 된 지금은 이름 없는 공사장에서 일한다. 그는 미래가 없다고 느낀다. 노동으로 번 돈은 은행 대출이자와 카드 대금으로 다 빠져나가고, 자식을 낳아 봤자 희망 없는 삶을 물려주는 꼴밖에 안 된다는 생각에 연애도 결혼도 생각 없다. 그렇게 현승은 무미건조한 인간이 되었다. 무표정으로 버스를 타고 출퇴근하고, 텅 빈 눈으로 사람들을 바라보고, 어떤 날은 종일 입 여는 일이 없었다.
점심시간. 현승은 여느 때처럼 동료 일꾼들이 우르르 밥 먹으러 나가는 것을 확인한 후 편의점으로 갔다. 컵라면과 에너지음료를 계산하고 늘 앉던 구석 자리로 향하는데, 낯익은 여자가 그곳에서 혼자 김밥을 먹고 있었다. 그녀는 현승이 일하는 공사장 사무실의 유일한 여직원 진세희였다.
현승은 세희를 두고 수군거리는 공사장 일꾼들의 음흉한 험담을 종종 듣고는 했다. 그들의 수위 높은 농담은 그녀 앞에서도 멈출 줄 몰랐다. 현승은 그런 분위기에 끼고 싶지 않아 눈치껏 자리를 피해 왔다. 그러다 몇 번은 그녀와 지금처럼 눈을 마주치곤 했었다. 언젠가부터 그녀의 눈빛은 현승에 대한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세희는 사람들 몰래 캔커피를 쟁여 놓았다가 현승에게만 하나씩 쥐여주었다. 현승은 그런 그녀가 부담스러워 몇 번 거절했지만, 그녀의 호의는 멈출 줄 몰랐다. 그리고 지금 여기, 그녀가 와 있는 것이다. 현승은 이 상황이 너무 불편했다.
뒷걸음질 치는 현승의 기척을 느꼈는지, 세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의 젓가락 끝에는 김밥 한 알이 걸려 있었다.
“현승 씨, 식사하러, 오셨어요?”
목에 뭐가 걸린 듯 꾸역꾸역 삼키며 인사하는 그녀. 현승이 어색하게 묵례하고 서둘러 편의점을 나서려는데, 세희가 현승을 다급하게 붙잡았다. 먹다 남은 김밥 두 알을 한꺼번에 입에 쑤셔 넣으며.
“여기서 드세요. 저는 다 먹어서.”
수줍게 붉어진 두 볼 가득 김밥을 우물거리는 그녀를 보면서 현승은 당황했다. 그녀가 귀여워 보인 것이다. 현승의 눈빛이 흔들리는 것을 봤는지 못 봤는지, 세희는 다급히 뒷정리하고 편의점을 떠났다.
녹초가 되어 퇴근한 현승. 고시텔 방문 앞에는 낡은 반찬통 하나가 놓여 있었다. 또 엄마가 왔다 갔구나. 근데 왜 이렇게 짜증이 날까. 현승은 한숨을 푹 쉬며 반찬통을 들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작고 낡은 냉장고를 열자, 그 안에는 이미 비슷한 반찬통들이 쌓여 있었고, 시큼한 음식냄새가 풍겼다. 현승은 들고 있던 통을 신경질적으로 처박고 공용부엌으로 가서 공용 선반에 있는 라면 하나를 뜯어 끓여 먹었다.
방으로 다시 돌아온 현승은 낡은 TV를 켜고 채널을 돌렸다. 화면에는 매끈한 옷을 입은 아나운서들이 무표정한 얼굴로 뉴스를 전하고 있었다.
‘부동산 가격이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는 가운데…’
‘우울증으로 인한 청년 자살률 문제가 심각합니다. 최근에는 청년 고독사 또한 급증하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사채 빚 1억 5천만 원에 시달리다 뺑소니 사고로 사망해 유가족에게 3억 원의 보험금을 남기고 간 40대 남성 윤 모 씨를 두고, 네티즌들은 ‘자살이냐, 타살이냐’ 갑론을박을…’
TV 소리가 시끄러워 전원을 끄는 현승. 침대 매트리스 위에 누워 휴대폰으로 SNS 어플을 켜서 들어가 보면, 동창 친구의 화려한 결혼식 사진 피드가 보인다. 수많은 좋아요와 축하 댓글들. 현승은 SNS 어플을 삭제해 버린다.
고요한 방 안. 문자메시지 보관함을 열어보는 현승. 그를 반기는 건 각종 카드대금과 이자 연체 안내 문자뿐이었다.
‘한성은행 대출이자 출금되었습니다’
‘자담카드대금 출금되었습니다’
‘나동근님 계좌로 자동이체 완료’
하루하루 쫓기는 연체 인생. 현승은 한숨을 크게 쉬어 본다. 이내 숨이 다시 막혀오는 것을 느낀 현승은 괜히 메신저와 연락처 리스트만 뒤적이다 별 수확 없이 폰을 끄고 잠을 청한다.
다음 날, 공사장 일이 끝나고 퇴근길에 편의점에 들른 현승. 맥주 진열대에서 비싼 세계맥주를 만지작거리다 싸구려 맥주를 집어들고 계산대 앞으로 갔다. 그곳에는 흙 묻은 작업복 차림의 남자가 삼각김밥을 계산하고 있었다. 남자는 땟국물 묻은 동전들을 세다 동전 하나를 떨어뜨렸다. 현승의 발치로 굴러들어 온 100원짜리. 현승이 주워 전해주는데, 남자의 얼굴이 낯익다. 그는 현승의 공사장 동료 박 씨였다. 그는 워낙 말수가 없어 현승만큼이나 존재감이 없었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콜록콜록.”
현승이 박 씨의 목소리를 들은 건 처음이었다. 현승은 고개만 끄덕였다.
“100원 모자란데요.”
동전을 세다가 짜증 난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의 말이었다. 박 씨는 멋쩍게 웃으며 주머니를 뒤졌지만 수확 없는 듯 보였다. 현승은 자신의 주머니에 있던 100원을 꺼내려다 말았다. 결국 박 씨는 삼각김밥을 반납하고 폐병 환자처럼 기침을 하며 편의점을 나갔다.
현승이 맥주 한 캔을 들고 편의점을 나서는데, 누군가가 현승을 부른다.
“나현승? 맞지, 현승이?”
현승의 대학 선배 K다. 그는 대학 시절 현승과 수업을 같이 들으며 인생 고민을 나누던 사이였다. 그러다 현승이 휴학하면서 연락도 뜸해지고, 몇 년 전 K의 결혼식 초대 연락을 현승이 ‘씹으면서’ 둘 사이는 더 애매해졌다. 그런데 K는 현승을 어제까지도 만난 사람처럼 반갑게 대했다. 그랬지. 그는 누구에게나 살가운 사람이었지. 현승은 괜히 초라한 기분이 들어 숨고 싶어 졌지만, 별 수 없이 어색한 웃음만 지어 보였다.
두 사람은 편의점 야외테이블에서 캔맥주를 마셨다. K는 벌써 30분째 하소연 중이다.
“… 애가 초등학교밖에 안 들어갔는데, 다니는 학원만 3개야. 돈 먹는 하마라니까? 집 대출도 한참 남았는데… 이게 노예가 아니고 뭐냐?”
K의 이마 위로 성성한 흰머리가 보였다. 현승은 맥주만 들이켰다.
“내 얘기만 했네. 넌 어때. 여자는 있고?”
“관심 없어요. 만나서 뭐 하나 싶고.”
K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쯧. 나도 다음 생엔 혼자 살란다.”
두 사람은 말없이 맥주캔만 부딪쳤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현승은 놀이터 벤치에 앉아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때 축구공 하나가 굴러와 현승의 발끝을 톡 건드렸다. 축구공을 빤히 내려다보는 현승.
“나현승! 공 줘!”
익숙한 목소리에 현승이 놀라 고개 들어 보면, 주변이 환해지며 학교 운동장으로 바뀌고, 초등학교 시절 같이 축구하고 놀던 동창 친구가 손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현승은 또래들보다 공도 잘 차고 발도 빨랐었다. 친구도, 선배들도, 심지어 체육선생도 입을 모아 현승이 국가대표선수를 해야 한다고 말했었다. 가슴에 태극마크를 달고 경기장 위를 달리는 상상만으로도, 현승은 가슴이 뛰던 소년이었다.
“아저씨! 공 좀 주세요!”
동네 아이들의 외침에 정신 차린 현승이 공을 능숙하게 차서 돌려주자, 아이들이 꾸벅 인사하고 돌아갔다. 왠지 씁쓸해진 현승은 담배를 주머니에 넣고 일어나 집으로 향했다.
다음 날. 공사장 일이 끝나고 퇴근하려는 현승을 사장이 붙잡았다.
“목에 기름칠이나 하자고. 오늘은 빠질 생각하지 말고.”
시끄러운 술자리. 현승은 말없이 술만 마시고, 맞은편에 앉은 세희는 현승에게 말을 걸고 싶어 입을 달싹였다. 현승이 애써 못 본 척하는데, 현승 모의 전화가 왔다. 무의식적으로 한숨을 내쉬다 세희와 눈을 마주친 현승은 재빨리 자리를 빠져나왔다. 현승 모의 전화를 무뚝뚝하게 받는 현승.
“왜요.”
“바쁘지? 나중에 통화할까?”
현승 모의 목소리는 초조했다.
“말씀하세요.”
“그… 너 영식이 삼촌 알지?”
“네.”
“그이가 얼마 전에 큰돈 벌었다면서 니 아버지한테 들라고 한 게 있는데…”
현승은 불안해졌다.
“뭘 들어요.”
“그거 있잖아… 주식…”
“아버지 또 주식에 손댔어요?”
“그게… 그이가 이번엔 확실하대서…”
현승은 분노했다.
“말이 돼요? 사고 친지 얼마나 됐다고!!”
“면목 없다…”
“하… 이번엔 얼만데요.”
“오천… 너한텐 절대 연락하지 말자고 했는데 당장 카드값부터…”
“아부진 나한테 돈 맡겨 놨대요? 사고를 쳤으면 수습이라도 하든가!”
현승이 전화를 뚝 끊었다. 답답함에 소리를 지르려다 애써 참는데, 세희가 다가온다.
“현승 씨~ 안 들어오고 뭐 하세요?”
“…”
“… 혹시 전시회 좋아하세요? 티켓이 생겼는데…”
“세희 씨.”
“네?”
“나한테 관심 있어요?”
세희의 얼굴이 붉어졌다.
“네에… 사실…”
세희의 말을 끊는 현승. 현승의 눈가가 벌겋다.
“나 집도 없고, 차도 없고, 갚을 빚만 1억이 넘어요. 이래도 나 만날 자신 있어요?”
갑작스러운 현승의 말에 세희의 동공이 커졌다.
“네…?”
“자신 없죠? 나도 그래요. 그니까 제발 그냥 각자 갈 길 갑시다.”
멍하니 선 세희를 뒤로 하고, 현승은 씩씩대며 가 버렸다.
비좁은 고시텔 욕실 안. 현승은 세면대에 물을 콸콸 받고 얼굴을 푹 담갔다. 숨이 차올라도 가만히 참는 현승. 더 참아 보다가 고개를 빼 들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거울을 보면, 야위고 초췌한 남자의 몰골이 보인다.
‘왜 살아야 되지?’
현승은 수납장에 있는 드라이기를 빤히 바라보았다.
‘살 이유보다, 살지 않을 이유가 더 많은데.’
그는 오래도록 시뮬레이션해 둔 상상을 행동으로 옮겼다. 하나, 수납장에서 드라이기를 꺼낸다. 둘, 드라이기를 콘센트에 꽂고 전원 버튼을 켠다. 드라이기 소리가 왜엥 시끄럽게 귓전을 때리고.
‘다 끝내고 싶다.’
셋, 세면대 물속에 드라이기와 손을 동시에 담근다… 그때, 선반 위에 놓인 휴대폰이 진동하다 바닥에 떨어졌고, 정전까지 되며 욕실 안이 캄캄해졌다.
“씨이발!!”
캄캄한 바닥 위에 액정 깨진 휴대폰이 밝게 빛났다. 화면 위로 ‘아버지’ 부재중 전화와 문자메시지가 떴다.
‘미안하다’
현승은 그대로 주저앉아, 아이처럼 엉엉 서럽게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