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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조의 호소 Oct 27. 2024

바이츠 더스트(Bites the Dust)(5화)

늦은 밤, 현승은 얼마 전에 산 검은 정장을 입고 한 손에는 포켓몬 가방을 든 채 중식의 장례식장을 찾았다. 조의금 봉투에 5만 원 두 장과 구겨진 5천 원을 담는 현승. 봉투를 함에 넣고 빈소에 들어서자 중식의 영정사진 옆에 혼자 멀뚱히 앉은 꼬마 남자아이가 보였다. 중식이 자기 늦둥이라 소개했던 그 선우였다. 현승은 예를 갖추고, 졸린 듯 눈 비비는 그 아이의 앞에 섰다.

      

“아저씬 누구예요?”     


당황한 현승.     


“어… 아빠 친구.”

“울 아빠 어디 갔어요?”

“멀리… 여행 간다고 하시던데.”

“울 엄마도 멀리 여행 갔는데.”     


할 말을 잃은 현승. 괜히 시선을 피하다가, 식당에서 음식을 나르는 류영을 발견했다.      


‘어? 저 학생은…?’     


그때 문상객으로 보이는 중년 여성들의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폐암 말기였다면서요?”

“어. 보험이라도 두둑이 들어 놨음 좀 좋아? 천만 원이 뭐야, 천만 원.”

“아니 근데 사고로 간 거예요?”

“다 팔자지 뭐. 그 몸으로 질질 끌지 않고 잘 갔지, 안 그래?”     


일회용 그릇에 담긴 해장국을 들고 문상객 여자들에게 다가오던 류영, 실수인 척 그들 중 한 명의 다리에 국을 확 쏟는다. 펄쩍 뛰는 문상객 여자.      


“앗 뜨거! 이게 뭐야!”     


류영은 쏟아진 국물을 서둘러 닦으며 말했다.     


“죄송해요.”     


류영의 텅 빈 눈은 전혀 미안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었다. 문상객은 짜증을 내며 화장실로 달려갔다. 현승이 의아하다는 듯 류영을 쳐다보자, 그녀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현승에게 물었다.     


“차 좀 드릴까요?”     


종이컵에 담긴 차를 들고 마주 앉은 현승과 류영. 현승이 먼저 물었다.     


“여긴 왜 있는 거지?”

“용돈벌이요.”

“고3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러는 아저씬 왜 여깄어요?”     


뒤늦게 포켓몬 가방을 떠올린 현승이 선우 쪽을 바라보면, 꼬마는 이미 잠들어 있다. 정장 겉옷을 벗어 선우에게 덮어주고 돌아오는 현승. 류영은 그 모습을 빤히 지켜보았다.     


밤이 늦고, 장례식장을 떠나기 전 흡연구역에서 담배를 피우는 현승. 한 손에 든 포켓몬 가방이 무겁다. 때마침 일을 마치고 나가는 류영의 모습이 보였다. 어두운 골목으로 들어가는 류영의 뒤로 이상한 노숙자가 따라붙는 것을 보게 된 현승은 신경이 쓰였다. 모른 척하려다 한숨을 내쉬는 현승. 담배를 얼른 끄고 그 뒤를 따라갔다.


아파트 단지로 들어선 두 그림자. 앞서가는 류영의 뒤로 현승이 어색하게 떨어져 걷고 있다. 류영이 걸음을 멈추고 돌아서자 현승은 당황해 헛기침을 했다.     


“왜 따라와요?”

“나도 이쪽이야.”

“우리 아파트 살아요?”

“그건 아닌데…”

“선우, 한길보육원으로 간대요. 궁금해할까 봐.”

“… 넌 어떻게 알아?”

“아까 사람들 얘기하는 거 들었어요.”     


그때 멀리서 중년 여성의 날 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류영!”     


두 사람이 돌아보면 류영 모가 현승을 경계하듯 쏘아보며 달려온다. 류영 모가 류영의 어깨를 감싸며 건물 안으로 데려가자, 현승은 쭈뼛쭈뼛 인사하고 돌아섰다.


고시텔로 돌아와 잠에 든 현승. 방문 노크 소리에 깨서 문을 열면, 현승 부가 피범벅이 된 채 슬프게 웃고 있다. 기겁하는 현승.     


“아부지…?!”

“선생님, 이것 좀…”     


현승 부가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현승에게 무언가를 건넨다. 피범벅이 된 중식의 가족사진과 포켓몬 가방. 현승이 사진을 들여다보면, 중식의 가족 얼굴이 현승의 가족으로 바뀌어 있다. 소름이 끼쳐 비명을 지르며 물건을 내던지는 현승.     


현승은 땀범벅이 된 채 깨어났다. 개꿈이었다. 책상 위에 엎드려 있던 현승의 손에는 중식의 가족사진이 쥐여 있다. 사진과 포켓몬 가방을 보며 한숨을 푹 쉬는 현승.     


‘집행일 D-9’. 선우가 다니게 됐다는 한길보육원을 찾은 현승. 보육원 원장에게 중식의 가족사진과 포켓몬 가방을 건넸다.     


“여기, 박선우라고 있죠? 이것 좀 전해주세요.”

“실례지만 누구시죠?”

“선우 군 부친이랑… 좀 아는 사입니다. 이건 부탁을 받아서.”

“아, 네. 선우가 좋아하겠네요.”     


현승이 인사하고 나가려는데, 원장이 붙잡는다.     


“선우 입학식 때도 오시나요?”     


당황한 현승.     


“네?”

“낼모레 미담초등학교에서 10시 시작이거든요. 오셔서 선우랑 사진도 찍고 같이 시간도 보내 주시면 선우가 정말 좋아할 것 같은데.”

“어, 저는…”     


원장은 씩 웃어 보였다.     


“시간 되시면요.”     


현승은 고민스러운 얼굴로 원장실을 빠져나왔다. 밖에는 아이들이 공놀이하고 있고, 구석에는 선우가 혼자 돌멩이를 차며 노는 모습이 보였다. 선우에게 다가가는 현승.     


“뭐 해?”

“축구.”

“축구 좋아해?”

“네! 손흥민 형아처럼 엄청 빠른 축구선수가 꿈인데!”

“멋지네…”

“아저씨 꿈은 뭐예요?”     


뜨끔 하는 현승, 말없이 선우의 머리만 쓰다듬었다.     


고시텔로 돌아온 현승. 오는 길에 사 온 세계맥주를 마시며 생각에 잠겼다.     


‘아저씨 꿈은 뭐예요?’     


선우의 말이 머리에 맴돈다. 괜히 심란해진 현승은 방 한구석에 처박힌 축구공을 가져다 굴려보고.     


‘축구선수가 꿈인데!’     


그때 휴대폰 알림 소리에 보면, 현승 모의 문자메시지와 사진이 하나 와 있다. 꽃무늬 덧버선을 신은 엄마의 발이 곱다.     


‘이렇게 이쁜 걸.. 고마워. 잘 신을게.’     


엄마의 서툰 문자메시지에 희미한 웃음이 새어 나온 현승. 축구공을 탁 잡는다.     


‘집행일 D-8’. 현승은 축구공을 들고 선우의 보육원을 다시 찾았다. 선우에게 공을 건네자, 선우가 어설프게 가지고 논다. 현승이 드리블하는 방법을 조금 가르쳐주면, 선우가 발동작을 귀엽게 따라 하고. 두 사람의 주변으로 또래 아이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때마침 청소도구를 들고 지나가는 류영을 발견한 현승. 놀라움 반 반가움 반으로, 아이들 머리를 쓰다듬고 류영에게 달려간다.     


“여기서 또 보네?”

“봉사 시간 채워야 돼서요.”

“고3도 그런 게 필요한가?”     


잠시 후, 벤치 한편에 나란히 앉은 현승과 류영. 뛰어노는 선우와 아이들을 바라본다. 현승을 향해 해맑게 손 흔드는 선우에 현승도 어색하게 손 흔들어 보이고.     


“입학식에도 갈 건가? 낼모레라던데.”

“아저씨는 가나 봐요?”

“몰라. 넌?”

“전 학교 가야죠. 고3인데.”     


현승이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고.     


“근데 아저씨, 선우한테 뭐 있어요?”

“뭐?”

“꼭 빚진 사람처럼 보여서요.”     


뜨끔 하는 현승. 머릿속에 중식의 말이 맴돈다.     


‘못난 애비는 없느니만 못하지 않나?’     


그때 그 물음에 답을 했어야 했나. 현승은 못내 찜찜했다.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현승.    


“돌려주지 못한 게 있긴 하지…”     


잠깐 뭔가를 궁리하던 류영이 입을 열었다.     


“선우 돕고 싶은 거죠?”     


현승이 끄덕이며 한숨짓자, 류영이 현승의 휴대폰을 가리키며 일어났다.     


“방법 있어요. 카메라 화질 괜찮죠?”     


PC방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 류영이 컴퓨터 앞에 앉아 빠르게 영문 타자 치면, 현승은 옆에서 넋 놓고 지켜본다. PC 화면에는 크라우드 펀딩 영문 페이지가 떠 있고, 영어로 ‘선하(가명)의 꿈을 응원해 주세요’ 타이틀과 선우의 사연 등이 작성된다. 얼굴이 모자이크 된 선우의 사진들이 배치되고. 집중하던 류영이 말했다.     


“아저씨 집행일이 언제죠?”

“집행일? 아… 8일 남았네.”

“그럼 모금 기간은 5일로 하고, 주최자는 아저씨 이름으로 할게요. 나현승 맞죠?”

“왜 내 이름으로 해. 네가 다 했잖아.”

“난 이런 거 관심 없어요. 아저씨보다 집행일도 빠르고.”     


숙연해진 현승. 류영의 손목시계 사이로 흉터가 보인다. 현승은 문득 궁금해졌다.     


“어린 나인데, 왜 그렇게 빨리 가려는 거지?”

“인생이 뻔해서요.”

“너는 꿈 없어?”     


류영의 손이 멈칫하고, 류영의 눈빛이 흔들린다. 다시 빠르게 타자 치는 류영.     


“엄마 꿈은 알아요. 나 의사 되는 거.”

“그런 거 말고. 하고 싶은 거 없었어?”

“…”

“집행일은 언젠데?”

“다 됐다. 봐 봐요.”     


말을 끊고 현승에게 모니터를 보여 주는 류영. 펀딩 페이지가 완벽하게 만들어져 있다. 현승은 입을 다물지 못한다.     


“와… 이런 건 언제 배웠어?”

“국내 펀딩 사이트들은 심사 기간도 있고 이것저것 귀찮아서, 해외 루트 하나 팠어요. 모금액 달성하면 아저씨가 알아서 전달하든가 해요.”

“어… 고마워.”     


밤이 늦은 탓에, 현승은 류영을 아파트까지 데려다 주기로 했다. 나란히 걷는 두 사람. 펀딩 페이지 보며 들뜬 현승을 보던 류영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아저씨 후회 안 해요? 죽기로 한 거.”     


멈칫하는 현승.     


“…응.”

“안 그래 보이는데.”     


펀딩페이지 속 주최자 이름 ‘나현승’을 보던 현승.      


“근데, 내가 이름을 언제 알려줬었지?”

“그때 얘기했잖아요. 중식 아저씨랑 셋이 처음 본 날.”

“그랬나?”

“다 왔어요. 데려다줘서 고마워요.”     


류영이 아파트 건물로 들어가는 것을 보는 현승. 고층 창가에서 두 사람을 지켜보던 류영 모가 신경질적으로 돌아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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