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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조의 호소 Oct 27. 2024

바이츠 더스트(Bites the Dust)(6화)

‘집행일 D-7’

‘집행일 D-6’

‘집행일 D-5’     


시간이 흐르고, 아침에 깰 때마다 휴대폰으로 펀딩페이지 모금액부터 확인하는 현승. 모금액이 300만 원까지 오르고, 현승은 점점 신이 난다. 양치하는 손놀림도 가볍다. 거울 앞에서 정장을 입고 휘파람을 불며 머리를 만지는 현승.     


미담초등학교. 입학식 현수막이 걸려 있는 운동장에 사람들이 북적인다. 구령대 앞에 줄 서 있는 아이들과 뒤쪽에서 지켜보는 학부모들. 그 사이에 현승도 서 있다. 포켓몬 책가방을 멘 선우가 현승을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든다. 현승도 얼결에 손을 들어 보지만 아직 뭔가 어색하다. 현승의 시선은 사람들의 얼굴을 훑는다. 류영은 안 왔겠지?     


“현승 씨?”     


익숙한 목소리에 현승이 돌아보면, 꽃다발 든 세희가 놀란 얼굴로 다가온다. 순간 현승은 그녀에게 매몰차게 내뱉었던 자신의 말이 생각났다.     


‘제발 그냥 각자 갈 길 갑시다.’     


당황한 현승이 어색하게 인사하고,     


“어, 오랜만입니다.”     


어색하기는 세희도 마찬가지다.     


“네… 현승 씨도 조카 보러 왔어요?”     


얼버무리는 현승.     


“네, 뭐…”

“네, 그럼…”     


할 말을 못 찾고 돌아가려는 세희. 현승이 용기 내 붙잡는다.     


“저번 회식 때, 말 심하게 한 거 미안해요.”     


세희의 눈이 동그래지고,     


“네?”

“그땐 제가 좀 흥분해서. 사과가 늦었습니다.”     


세희의 두 볼이 붉어지며 표정이 한결 풀린다. 특유의 상냥한 미소와 함께.     


“그때 무슨 일 있었어요?”     


장난스러운 세희의 반응에 현승이 안도의 웃음을 짓는다.     


입학식이 끝나고, 사진 찍는 학부모와 아이들. 그 속에서 선우는 멀뚱히 부러운 듯 지켜보고, 옆에서 현승은 어쩔 줄 몰라한다. 그때 세희가 다가와 들고 있던 꽃다발을 선우 품에 안겨주면서 현승과 선우를 다정하게 붙여 놓고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한다.      


“하나- 두울- 셋!”     


현승이 용기 내어 선우 어깨를 감싸 안자, 현승을 올려다보며 활짝 웃는 선우. 찰칵.     


보육원으로 돌아가는 길. 현승이 선우의 손을 잡고 돈가스집을 지나는데, 선우가 걸음을 멈춰 서며 침을 꼴깍 삼킨다. 현승이 말했다.     


“배고프다. 먹고 갈까?”     


현승과 선우가 나란히 북적이는 식당 안으로 들어선다. 시끌벅적하게 밥 먹는 아이들과 학부모들. 현승과 선우도 마지막 남은 한자리에 가 앉고, 돈가스를 두 개 주문한다. 현승이 돈가스를 작게 썰어 선우에게 그릇째 건네면 선우가 한입 꿀꺽 넣고 싱긋 웃는다.      


“행복해!”     


선우의 말에 현승은 왠지 뭉클해졌다. 그렇게 말없이 지켜보는데,     


“여기서 또 보네요!”     


세희가 조카의 손을 잡고 두 사람의 테이블로 다가온다.      


“죄송한데 합석해도 될까요? 자리가 없어서…”     


현승이 둘러보면 테이블 만석이라 어쩔 줄 모르고, 그때 선우가 치고 들어온다.     


“네! 예쁜 누나!”     


현승이 어색하게 옆자리 의자를 빼주면, 신나서 합석하는 세희.     


“와, 감사해요!”     


조카에게도 감사 인사를 시키는 세희. 선우를 보며 묻는다.     


“넌 이름이 뭐니?”     


여느 가족들처럼 화기애애하게 웃으며 밥 먹는 네 사람. 불현듯 현승이 정신을 차리고 웃음을 멈춘다.      

식사를 마친 뒤, 현승이 계산하고 나오는데, 선우가 현승의 손을 잡는다.     


“아저씨, 담에 여기 또 오면 안 돼요?”

“글쎄… 아저씨도 멀리 여행 갈 거라…”

“선우 아빠처럼?”

“응…”

“나도 같이 갈래요!”     


현승의 심장이 철렁한다.     


“안돼. 거기 별로 안 좋은 데야.”     


그때 세희가 불쑥 끼어든다.     


“어디 여행 가세요?”     


차갑게 굳어지는 현승의 얼굴.     


“이만 가보겠습니다.”     


현승이 빠른 속도로 선우를 데리고 식당을 나간다. 계산대 위에 지갑을 놓고 간 줄도 모르고. 당황한 세희가 지갑을 챙겨 열어보면, 현승의 휴대폰 번호가 적혀 있다.     


선우를 보육원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현승. 휴대폰이 울려서 보면 모르는 번호다. 괜히 긴장해서 전화를 받는데,     


“저, 세희예요. 지갑을 두고 가셔서…”     


버스정류장에서 다시 만나기로 한 두 사람. 현승이 먼저 도착해 진지한 얼굴로 앉아 있는데,     


“선우, 현승 씨 조카 아니죠?”     


세희가 다가오며 묻는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한 현승.     


“어떻게 알았어요?”

“삼촌을 아저씨라 부르는 조카가 어딨어요.”

“아… 선우는 아는 분 아들이에요. 지금 보육원에서 지내고.”     


세희의 표정이 숙연해진다. 현승이 휴대폰을 켜 펀딩 페이지를 보여주고.     


“이거, 지금 하고 있는데.”

“이게 뭐예요?”

“선우 후원금 모금하는 중인데, 기간이 얼마 안 남았어요. 관심 있으면…”

“할래요! 너무 좋은데요? 근데 영어네…?”     


신기하다는 듯 펀딩 페이지 들여다보는 세희. 현승의 눈에 예뻐 보여 당황한다. 그때 세희가 고개를 들어 현승의 눈을 맞추고.     


“좋은 사람 같아요. 현승 씨.”

“아닙니다.”     


현승이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떨군다.     


버스 안. 펀딩 모금액 500만 원 확인하는 현승의 얼굴이 심란하다. 창밖으로 류영의 아파트가 보이자 홀린 듯이 하차벨을 누르는 현승. 류영의 집으로 향한다.     


류영의 아파트 앞에 도착한 현승. 아파트 앞에는 경찰과 사람들이 몰려 소란스럽다. 한가운데서 울부짖는 류영 모. 현승과 눈이 마주치고, 흥분하며 경찰을 끌고 와 현승의 멱살을 잡는다. 옆에서 경찰들은 귀찮은 듯한 표정이다.     


“니 놈이지? 우리 류영이 어쨌어?”     


현승은 느닷없는 책망에 당황한다.     


“네?”

“이놈이 우리 류영이 근처 얼쩡거리는 거 내가 똑똑히 봤다니까!”     


경찰이 현승에게 묻는다.     


“오류영 씨랑 아시는 사입니까?”

“잘은 모르는데… 무슨 일 있나요?”

“오류영 씨가 실종됐다고 해서요.”

“실종이요?”     


실종이라니? 현승이 혼란스러운 가운데, 류영 모가 현승을 취조하 듯 닦달한다.     


“모른 척하지 마! 이 변태 새끼, 우리 딸 어쨌어?”     


경찰이 현승에게 형식적으로 묻는다.     


“실례지만 어제 어디에 계셨습니까?”

“어제는 그냥 혼자 있었는데…”     


류영 모가 또 끼어들고,     


“뭘 혼자 있어! 우리 류영이랑 같이 있었지?!”

“일단 신분증 좀 보여주시죠.”     


얼떨떨하게 신분증을 내주는 현승. 경찰이 신원조회 하는데, 무전기가 울렸다.     


‘아삼 교차로 4중 추돌사고 발생. 긴급출동 바람’     


다급해진 경찰이 현승의 신분증을 돌려주며 말했다.     


“나중에 필요하면 연락 갈 거니까 잘 받으시고요.”

“뭘 나중에! 지금 당장 이놈 처넣어야지!”     


류영 모가 발작하듯 현승에게 달려들자, 경찰들이 뜯어말린다.     


“어머님, 일단 진정하시고 좀 더 기다려 보시죠. 저번에도 따님 바로 들어왔잖습니까. 이번엔 생일이라고 어디 놀러 갔을 수도 있고…”     


현승의 가슴이 철렁한다.      


“오류영 생일이 오늘입니까?”

“내일이요.”     


경찰은 기계적으로 답했다. 몰려든 사람들을 파리 쫓듯 물리는 경찰들. 류영 모는 억울하다는 듯 경찰을 붙잡고 울부짖었다.     


“경찰이 이래도 돼? 우리 딸 잘못되면 니들이 책임질 거야? 아이고…”     


주저앉아 오열하는 류영 모. 경찰차가 출발하자 웅성거리던 사람들도 하나둘 흩어졌다.


현승은 류영을 찾아 나섰다. 류영과 펀딩 페이지를 만들었던 PC방과 선우네 보육원, 심지어는 중식의 장례식장 건물까지 가서 찾아보았지만, 류영은 없었다.      


고시텔로 돌아온 현승은 머릿속이 복잡했다. 설마 류영도 ‘집행’당한 것인가? 박중식처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얼굴 보던 사람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게 이런 건가. 결코 잠들 수 없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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