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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로이데 전주현 May 25. 2024

베를린

24.05.24 17:30 씀

여행자는 이국의 거리를 걸을 때 목소리가 커졌다 버릇이었다

그는 모국어로 거리 위 정보들을 속속들이 읊었다


건물의 만듦새, 쓰레기통의 난잡함, 신호등 불빛이 바뀌는 순간, 반려견의 다양성, 목 좋은 식당의 점심 특선 메뉴, 창의적인 놀이터 기구, 랜드마크 외벽의 그라피티, 뭐 그런 것들이었다


빨간 불에도 당당히 길을 건널 거면 신호등이 무슨 소용이야

그럼 언제 건너야 하는데?

그거야 파란 불이지

어째서 초록 불이라고 하는 거야?

그렇게들 보통 말하잖아

보통이 정답이라고 믿고 싶어?


여행자의 옆엔 질문하는 이가 있었다

동행이었다

그는 어설픈 외국어로 거리 위 사람들에게 눈인사를 했다


할로, 구텐탁, 슐디궁, 당케, 츄스, 챠오, 뭐 그런 인사였다


힙한 게 뭔지 잘 모르겠어

꼭 알아야 할까?

모르는 것보단 낫지

아는 것과 이해하는 건 다른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아?

무슨 말이야?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진짜 힙스터라면 힙한 걸 모르겠다고 하는 너도 힙하다고 말해줄 거야


여행자는 오래간만에 질문을 했고 동행은 드물게 질문을 삼갔다

귀국 비행의 온라인 체크인이 시작될 때였

모국어 소리가 잦아들었다 광장마다 창백한 가로등불이 그득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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