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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장에 햇살을 채우면

24.12.19 16:16 씀

by 프로이데 전주현

깜빡 잊고 물을 채우지 않은 수영장

바닥에는 정사각형 타일과 타일이 가득하다

타일과 타일을 이어주는 실리콘에서 쩌걱쩌걱

마른 소리가 난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다른 걸 채우자

다른 거라니

햇살은 어때

그 따가운 걸 무엇하러


수영장에 햇살을 채우면 빛이 가득 들어찰 거야 그러면 물 없이도 일렁일 수 있겠지 흔들릴 수 있을 거야 그때 우리는 실리콘 선 위에서 두 팔을 좌우로 벌리겠지 평균대 위를 걷는 소녀와 소년처럼 행동이 조심스러워질 거야


흔들린다는 건 불안정하단 거잖아

불안정한 건 살아있단 거잖아

살아있단 건 무엇이야


선 위를 걷는 소녀와 소년이, 같은 방향을 걷느라 눈이 마주칠 리 없는 소녀와 소년이, 서로의 표정을 짐작하는 거지 그 두 사람을 따라 평균대 위에 오르는 우리가 있는 거지 떨어지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타일과 타일 위를 걷는 새가 되는 거지 그렇게 날아오르는 거지


깜빡 잊고 물을 채우지 않은 수영장

위로는 끝없는 파랑이 펼쳐있다

이음새 없이 넓디넓은 천장에서 첨벙첨벙

충만한 소리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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