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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의 계절

밤빛 단풍을 보니 밤 케이크가 굽고 싶었어요

by 춤추는바람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필요에 대해서는 이유를 따지지 말라. 아무리 비천한 거지라고 해도 하찮은 물건일지언정 필요 이상을 가지게 마련이며, 자연이 인간에게 필요 이상의 것을 허용치 않는다면 인간의 삶은 짐승의 그것보다도 가치가 없어진다.”

- <리어왕> 2막 4장


넘치는 줄 알면서도 더 갖고 싶은 게 인간의 본성인가 보다. 갓 구운 밤 케이크를 두 조각이나 먹고 당을 과잉 섭취했구나 후회하던 찰나, 이 문장에서 위로를 얻는다.


갑자기 밤 케이크를 구운 것도 과하게 받은 인심 때문이다. 지난 주말 어린이대공원으로 단풍 구경을 갔다 전철역 앞에서 군밤 장수를 만났다. 군밤 장수는 오래전 뻥튀기를 토해내던 로켓처럼 기다란 고철 기기로 밤을 구워 팔고 있었다. 기기가 돌아가며 쉭쉭- 소리를 내는 옆에는 검은빛 갈색으로 잘 익은 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나이 지긋한 아저씨 홀로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장사가 잘 되는지 언덕을 이룬 밤 옆에서 3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젊은 남성 둘이 밤껍데기에 칼집을 내며 일을 도왔다.


잘 여문 밤알은 동글동글 모양도 예쁘고 밤빛으로 윤기가 흘렀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밤빛이 참 곱다는 걸 그날 깨달았다. 잘 익어 여문 것, 넘칠 만큼 꽉 차오른 것에서는 저렇게 윤이 나는구나, 저토록 색이 짙어지는구나, 생각했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칠 밤장수 앞에 나도 딸아이와 같이 줄을 섰다. 밤이 다 익으려면 몇 분 더 기다려야 한다지만, 기다림이 모처럼 설렜다.


어릴 적 뻥튀기 아저씨처럼 “뻥이요~”하는 외침도, 귀를 막아야 할 정도의 요란한 소리도 없었다. 군밤 장수가 기기 아래 있던 화로를 끄고 압력 조절기를 돌려 서서히 김을 빼냈다. ‘피식’하는 싱거운 소리와 함께 뚜껑이 열렸고 까매진 껍질 사이로 노란 속살을 내보이는 밤이 쏟아졌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면서 고소한 향이 번졌다. 아저씨는 두툼한 장갑을 낀 손으로 뜨거운 밤을 그러모아 종이봉투에 담았다. 내 앞에 기다리는 사람의 것을 담는 사이 밤껍데기에 칼집을 넣던 젊은 남성이 맨손으로 군밤 두 알을 집어 나의 딸에게 내밀었다.


“뜨거워, 얼른 받아.”

잠시 망설이다 아이의 얇은 패딩 자락을 들어 그 위로 군밤을 받았다.

“고맙습니다.”

인사하자 아저씨는 또 두 알을 집어와 딸에게 내밀었다. 우리만 이렇게 덤을 받아도 되나 싶어 곁에 기다리는 다른 분들 눈치가 보였지만, 어린아이가 어여뻐 주는가 보다 싶어 두 알을 더 받고 말았다.


군밤 장수가 건넨 봉투에도 넘치도록 군밤이 담겼다. 아저씨는 종이봉투 가득 군밤을 담고 그걸 다시 검은 비닐봉지에 넣은 뒤에도 한 줌을 더 움켜쥐어 비닐 속으로 쏟아 주었다. 그걸 보니 우리에게만 그런 게 아니라 군밤 장수의 인심은 누구에게나 후했구나, 그래서 장사가 잘 되는 거였구나 짐작할 수 있었다.


따듯하고 고소한 군밤을 먹으며 공원을 걸었다. 마침 은행나무에 단풍이 절정이라 바람이라도 불면 노란 비가 떨어졌다. 파랗게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노란 잎사귀가 금가루처럼 사방으로 날렸다. 잎사귀가 되쏘는 가을볕이 눈부시게 빛났다. 그 아래서 쉬이 발길을 떼지 못하고 환호하며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하늘의 파랑과 은행나무의 노랑과 투명한 가을빛, 그리고 사람들의 미소, 어느 것 하나 과잉이 아닌 게 없었다. 가을이라는 그릇에서 만물이 살아온 시간이 빛과 색으로 한계를 초과하여 흘렀다.


과하다는 건 대체로 부정적인 의미로 여겨졌다. 적정 수준을 넘어선 마음은 욕심이 되고 욕심은 화를 부르기도 하는 것처럼. 옷을 입을 때 세 가지 색 이상을 섞으면 요란하거나 촌스러워 보이고, 일이든 운동이든 과하면 몸에 탈이 나는 것처럼. 누군가를 좋아할 때도 마음이 넘치면 상대를 부담스럽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가을은 과해도 좋다고, 과잉이 필요하다고 알려준다.


붉어지다 못해 불타오를 듯 빨개지거나 노랗다 못해 금빛으로 찬란한, 짙어지다 못해 검은빛이 돌 정도로 밤빛이 되는 나뭇잎이 그렇다. 하늘은 파랗다 못해 눈을 시리게 하고 낙엽은 두텁게 쌓여 길을 뒤덮는다. 발밑에서 바싹 마른 잎사귀가 바스러질 때 나는 소리는 요란할수록 좋다. 와그작와그작, 걸음마다 따라오는 경쾌한 소리가 아쉬움도 미련도 없는 깨끗한 마음 같다.


단풍 구경 또한 과하면 과할수록 좋다. 매일 미세하게 색을 바꾸는 나무들의 모습을 놓치고 싶지 않아 11월에는 점심을 서둘러 먹고 잠깐이라도 길을 걸었다. 초록에서 서서히 노란색이 올라오더니, 노란빛이 짙어져 붉게 변해갔다. 그러는 동안 갈빛과 밤빛도 점점 깊어졌다. 보면 볼수록 다음날 또 보고 싶고, 그다음 날이 또 기다려졌다. 가을이 여물어가는 찰나를 과하게 갖고 싶어 욕심을 내었다.


내가 가진 과한 마음 중에는 부끄러움이 있다. 어떤 상황과 말 앞에서 자주 부끄러웠다. 실수를 해도 그랬지만 칭찬을 받아도 부끄러웠다. 여전히 부족한데, 칭찬받을 정도의 실력은 아닌데 싶어 스스로 작아졌다. 주목을 받는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이 앞서기도 했다. 그러니 이 글을 다 쓴 뒤에도 부족한 글에 대한 부끄러움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할 것이다. 고작 이런 글을......


그런데 가을을 보내며 초과하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넘치는 것에도 그 나름의 필요가 있을 거라고. <리어왕>의 대사를 상기하면 굳이 필요나 이유를 묻지 않아도 될 것이다. 과잉인 것이 고유함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만의 ‘무엇’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돌아보니 내게 필요 이상으로 허용된 것들이 나라는 한 사람을 ‘인간적’으로 만들어 준 것 같다.


부끄러움이 많은 덕에 반추의 습관이 생겼다. 부끄럽지 않으려 조심하느라 신중해졌고 세심하게 살피려 애썼다. 그러다 주로 진중하고 차분하다, 관찰력이 좋다, 섬세하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과도한 부끄러움 덕분에 장점이라고 할 만한 게 생겼으니, 인간은 결핍과 과잉의 알 수 없는 합작품인 걸까.


자연이 인간에게 필요 이상을 허용하는 계절이다. 고개를 돌리면 곳곳에 가득한 단풍 덕에 수시로 과잉의 아름다움을 흡수한다. 차고 넘치는 것이 우리를 감동하게 한다. 거기 감동할 수 있는 인간이라서 기쁘게 감사하다.


그러니까 익힌 밤을 가득 넣어 밤 케이크를 구은 건, 가을이 넘치고 있어서다.








* <가게를 닫고 쓰는 인생 레시피>는 격주 연재됩니다.

다음 글은 12월 2일에 발행됩니다.

읽어주시는 독자님들과 작가님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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