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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만 빠지는 게 아냐

by 손명찬


취학 전, 서울 끝자락에 잠시 산 적이 있었다.

작은 산 하나를 넘으면 논밭을 볼 수 있었다.



어느 날 그리 산책을 나갔다.

어머니와 동네 아줌마들은 쑥을 뜯고

나는 논길을 아이들과 뛰어다녔다.



멀리서 어머니가 그만 가자고 부르셨다.

어머니에게 달려가는데 갑자기 길이 꺼졌다.

바닥이 없는 이상한 늪이었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만 자랐으니,

아, 두엄 구덩이를 알 턱이 없었다.



간신히 목숨을 건진 후 다음 장면은 이랬다.

어머니가 야단쳐가며 나를 수돗가에서 씻겼다.

내 등짝을 때려가며, 안도의 숨을 쉬며.



*

그때 하신 말씀은 모르겠고, 등짝 아렸던 기억은 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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