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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일 뿐이야

by 손명찬

아내와 TV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남자는 여자에게 짐짓 무표정한 얼굴로

차 트렁크에서 뭘 꺼내달라고 부탁한다.

여자가 트렁크 뚜껑을 열자

헬륨가스가 든 풍선들이 하늘로 올라가며 작은 현수막이 펼쳐진다.

<나와 결혼해 주시겠어요?>

감동한 여자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반지를 내미는 남자.



이때, 분위기 파악 못하고 한 마디 했다.

“상투적이네, 저렇게 드라마가 뻔해서야, 원!”

집사람이 대꾸했다.

“그래도, 프로포즈 받은 사람은 좋겠네!

프로포즈도 안 받고 결혼을 했으니, 참!”


아, 그러고 보니 프로포즈 이벤트를 한 기억이 없다.



젊은 날에, 예쁜 여자를 만났다.

잘 만나다가 어머니께 보여드렸다.

그러자 여자는 자기 어머니께 나를 보여드렸다.

그러다가 부모님들이 다 같이 만나자 하시기에 그렇게 했다.


그랬더니 결혼 날짜가 나왔다.

그날이 와서 결혼했다.

그래서 여자는 내 아내가 되었다.



이 사이에 미안하게도 프로포즈가 없다.



그때나 지금이나 아내와 나는 흐르는 강물처럼 산다.

내가 사공이 되면 아내가 배가 되고,

아내가 사공이 되면 내가 배가 된다.

굽이굽이 동행하며 함께 바다로 간다.


산이 되고 물이 될 때도 있다.

그럴 때에는 하나의 풍경이 되어,

이벤트 풍선처럼 둥실둥실 떠올라 하늘로 간다.



*

프로포즈 기억이 없는 게 무섭나.

또렷하기만 한 아내의 기억이 무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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