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르윈도우가 있는 드웨이라 베이는 버스 311번을 타야 한다. 고조에서는 대부분 한 시간에 한 대가 운행을 하니 시간을 보면서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출출하지만 버스정류장으로 일단 가야 했다.
광장을 중심으로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길에 파스티찌를 파는 파스티찌리아가 많다. 파스티찌는 두 종류가 있는데 전부 맛이 좋다. 몰타 본 섬에서는 얼마였는지 가물가물, 아무튼 고조의 파스티찌는 빵 3개에 1유로도 안 되는 90센트이니 2유로어치 사면 봉지에 가득이다. 거기에 커피만 있으면 굿, 남부럽지 않다. 갓 구운 파스티찌를 사들고 버스정류장 벤치에서 먹으면서 버스를 기다리는 것이다.
빅토리아의 버스정류장
311번 드웨이라행 버스에는 대부분 여러 나라에서 온 관광객이다. 그중에 어학연수를 온 한국 학생들도 서너 명 보이는데 그중 남학생 한 명이 인사를 건네 온다. 너무 반가웠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많이 보이는 어학연수생 중에서 남학생은 한 명도 못 봤기 때문이다. 주말이어서인지 금요일인 어제부터 한국 학생들이 많이 보이는데 거의 여학생들이다. 여학생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몰타를 선호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그렇지, 그렇다면 남학생들은 캐나다나 미국 아니면 가까운 필리핀으로 간다는 말인가. 반가워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연수를 온 것이 아니라 혼자 배낭여행 중에 연수중인 여학생들을 만난 것이었다. 여행자는 여행자를 알아보는 법, 서로 부러워하며 여행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몰타에서 10여 일 계획을 잡았는데 이곳이 좋아 고조에서만 1주일을 머물다가 나갈 예정이라고 했다. 우리는 슬렌디 베이에 숙소를 잡았다고 하니 자기도 슬렌디 베이에서 어제 머물렀는데 낙조가 너무 아름답다면서 “또 만날 수도 있겠네요?” 하며 진정 어린 멘트를 날린다.
Azure Window
버스는 빅토리아를 벗어나 녹색 벌판을 달리더니 곧 꿈틀거릴 것 같은 바위들이 바닷가로 향해있는 회색 빛 원시의 해안가에 사람들을 쏟아 놓는다. 정류장에는 드웨이라 광장이라고 쓰여 있는데 오른쪽에는 소박한 레스토랑이 손님을 기다린다. 오른쪽으로 내려가니 보트 트립을 하는 곳이다. 몰타 섬의 블루그라토처럼 만의 안쪽과 동굴들을 보여주는데 블루그라토처럼 감동은 덜 하지만, 아주르윈도우의 뒷모습을 볼 수 있는 방법은 이 것뿐, “배를 타지 않는 것보다는 배를 타는 것이 훨씬 낫다”라는 생각이다. 내가 이곳을 생각할 때마다 출렁이는 배 위, 눈부신 햇살 속에서 엄청나게 거대한 해식동굴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다녔던 그 시간이 살아 움직이기 때문이다.
Azure Window의 뒷모습
Azure Window는 내가 알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창이다. 푸른 하늘을 향해 뚫려있는 창만큼 내 눈이 공감한다. 이 곳은 스카이다이버뿐만 아니라 다이버들에게는 멋진 다이빙 스팟이기도 하단다. 하지만 해마다 많은 사람들이 다이빙을 하거나 물놀이 중 생명을 잃기도 하는 곳이란다. 아주르윈도우 뿐만 아니라 넓게 펼쳐진 회색빛 석회암지대는 크고 작은 둥근 웅덩이들로 인해 볼수록 장관이다. 어디에서 불쑥 신화 속 인물이 나타날 것만 같다.
유심히 들여다보면 화석은 물론이고 바위에는 조개류 및 생선의 뼈 등이 그대로 바위 안에 들어있어 아직 화석이 되기 직전인 바위들도 널려있다. 석회암은 동식물들이 쌓인 퇴적암으로 물에 의해 만들어진 수성암이다. 석회암은 예로부터 건축에 많이 사용되었다. 이집트의 신전 건축물이나 피라미드의 돌도 거대한 라임스톤 Lime stone으로 만들었으며 몰타의 건물은 대부분 석회암의 일종인 라임스톤으로 지어졌다. 물과 산성에 취약한 석회암이지만 여름에는 고온 건조하며 바람이 많은 몰타나 이집트의 기후를 보면 매우 적합한 건축 재료라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방습에는 취약하여 습기를 흡수하여 얼룩을 지게 하는 재료로 습한 기후를 가진 대한민국에서는 건축에 적합한 재료는 아니지 싶다.
셀 수 없는 시간 속에서 물과 바람에 패이고 씻겨나간 자국들이 이처럼 드라마틱한 풍광을 만들어 낸 걸 보면 내가 세상에 있는 시간들은 그저 찰나의 순간이다.
해안에 널려있는 화석화과정의 바위들
구름을 담은 드웨이라 해변
드웨이라의 작은 교회
아주르윈도우에서 얼마나 시간을 보냈을까, 311번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 멀리 타피누 교회가 보인다. 자동적으로 순간 내리려고 했지만, 아주르윈도우의 감동 때문인지 오늘 할 일을 다 한 것처럼 빅토리아로 돌아왔다. 버스정류장에 오니 5시가 다 되어간다. 슬렌디에 지금 들어가면 낙조를 볼 수 있을까.
슬렌디 베이 Xlendi
고조에서 아름다운 해변을 물으면, 마샬 폰Marsalforn과 슬렌디 마을이라고 말한다고 한다. 해변을 빙 돌아 마을에 들어왔다. 해변에 있는 호텔을 찾아 체크인을 하고 만으로 깊이 들어온 비치에 떨어지는 해를 바라보니 한 없이 아늑하다. 손님이 많지 않은 겨울에도 호텔비가 그리 저렴하지 않은 것을 보면 여름에 묵는다면 꽤나 비쌀 것 같다.
다음날 아침, 반가운 미소를 보내준 슬렌디
앞에 보이는 슬렌디 해변
슬렌디 베이는 안으로 움푹 들어간 지형으로 배가 접안하기에 적당하여 고대 로마시대에도 항구로 이용되었다고 하는데 항구입구에는 산호초가 형성되어 있어 항구로 들어오다가 난파된 배들이 많아 바다 속에서는 곧잘 도자기유물이 발견된다고 한다. 거칠고 뭔가 범접할 수 없는 풍광으로 인해 물놀이하기에는 위험해 보였던 드웨이라 지역과는 달리 해안은 지극히 평화롭고 지붕 없는 천혜의 수영장이다. 잔잔한 바다에 긴 물살을 가르며 낚싯대를 장착한 보트 한 대가 들어온다. 먼 바다라도 나갔다 왔을까, 보트 안이 궁금하다.
같이 버스를 타고 들어왔던 여행객들은 전부 어디에서 머무는지, 어둠이 내려앉은 1월의 슬렌디 해변은 적막하리만치 쓸쓸하다. 해안가에는 제법 규모가 큰 레스토랑들이 겨울에도 영업을 한다. 불나방처럼 파닥파닥, 따뜻한 불빛을 따라 들어간 레스토랑은 “Taliya”, 1인당 18유로 하는 생선요리를 시켰는데 주인아저씨는 간단한 식전 빵인 브루스케타와 샐러드에 생선요리, 파스타와 와인에 아이스크림에 커피까지 풀코스로 내 온다. 파티 초대를 받아 정성이 가득한 요리를 대접받는 느낌이었다. 신선한 재료로 만든 음식의 맛도 일품이었지만 주인아저씨의 진심이 담긴 매너는 감동이었다. 비록 다음에 또 오겠다는 허언은 못했지만 친구들에게 말해주겠노라, 인사를 하고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