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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ino, 그 바다....

# Gozo - 타피누와 쥬간티아 그리고 코미노

by 그루


오늘도 새벽에는 비가 내렸다. 그리고는 슬렌디의 아침 창에 무지개를 걸어 놓았다. 몰타의 1월은 우기다. 하지만 한 번도 우기라고 느낄 수가 없도록, 밤새 비가 내리고 아침에는 늘 맑았었다. 하지만 오늘은 부슬부슬 맞아도 될 만큼 아침에 비를 뿌려주니 바닷가의 아침은 그런대로 운치가 있다.



타피누Ta'Pinu


습관처럼 버스를 타고 타피누Ta'Pinu 교회를 가기 위해 빅토리아로 나왔다. 타피누행 버스번호를 보고 있는데 기다리기엔 시간이 너무 멀다. 택시를 타기 위해 승강장으로 가려고 하니 어제 이곳에서 만났던 남학생이 우리를 잡아 세운다. 어젯밤, 슬렌디에서 지나다니다가 혹시나 만날까, 내심 생각했었다고 하면서 어디 가는 길이냐고 물었더니 그냥 나왔단다. 계획 없이 다닐 수 있는 시간의 넉넉함이 이럴 땐 부럽다. 같이 데리고 가고 싶어 타피누를 가려고 하는데 택시를 타려고 하니 안 봤으면 같이 가자고 청했다. 쿨하게 선뜻 응해주니 기분이 좋다.



오늘은 일요일, 기도의 효험이 좋기로 소문난 교회로 사람이 많을까 봐 걱정했는데 아직은 예배시간 전이어서 한가하다. 필요한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교회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 흔적들이 빼곡하다. 셋이 교회를 나오면서 서로 무엇을 위해 기도했냐고 물었다. 왕복 택시 10유로로 흥정을 했던 택시를 타고 빅토리아까지 나오면서 세 사람 다 말없이 기도의 여운을 안고 있는 것 같았다. 종교의 폐해는 엄청나지만 사람을 위로하는 힘 하나는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을 것 같다.


일요일 아침의 타피누 교회


쥬간티아Ggantija 신전


떠 있는 섬들을 모두 합쳐도 강화도와 만만한 나라 몰타에는 30여 개가 넘는 거석 신전이 있다. 그중에서 몰타 본 섬의 삼분의 일에 불과한 고조의 중심에 있는 마을인 Xaghra에는 가장 오래되었으며 규모가 큰 신전인 쥬간티아Ggantija 신전이 있다.


쥬간티아 신전


십자군 전쟁 시절 활약한 성 요한 기사단에 대한 호기심만 가지고 왔던 몰타에 온 첫날, 발레타 고고학 박물관에서 만났던 석조유물들과 돌로 만든 다양한, 그것도 여성의 형상을 한 인형들을 보고 몰타의 정체성에 대해 급 관심을 갖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몰타인들은 그들의 길고 긴 역사에 대해서, 조상들의 삶을 일구었던 그 땅에 대해 깊은 자부심을 느끼는 것처럼 느꼈기 때문이다.


넓지 않은 국토에 기원전 3600년경부터 만들어진 거석 신전들이 산재해있는 아득한 시간 속의 몰타는, 마을마다 옆집처럼 서 있는 365개의 교회가 있는 현재의 몰타와 너무 닮아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보다도, 영국의 스톤헨지(기원전 3100년~기원전 1100년)보다도 앞서는 거석 신전들은 5m가 넘는 돌이 있는가 하면 무게가 50톤이 넘는 돌도 있다지만, 돌의 크기와 무게의 의미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석회암으로 만들어진 신전은 기나긴 세월에, 내려앉고 녹아내려 그들의 기품과 속살까지 내주었지만, 남아있는 초라해 보이는 뼈대만으로도 인류의 후손들은 그들의 삶에 경배해야 하지 않을까.



세월에 녹아있는 신전의 돌담 사이, 꽃들이 꽃다발처럼 걸려있다.
이곳은 아직도 제단


쥬간티아는 자이언트에서 기원된 이름으로 말티즈어로 거인을 뜻한다. 신전은 기원전 3600년에서 2500년 사이에 만들어진 신석기Neolithic시대의 것으로 몰타의 거석 신전을 대표한다. 평면도를 보면 마치 네 잎 클로버를 닮아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앱스Aps가 클로버모양으로 확장해 나간 형태이다. 앱스Aps란 반원형의 형태이다. 건축의 가장 원형에 속하는 이 형태는 초기 교회 건축으로 시작하여 현재까지 많이 쓰이는 건축의 한 형태로 발전했는데, 앱스의 원형을 보는 것 같아 신기하고 놀라웠다. 알고 보면 그리스의 극장도 앱스 형태이며 로마의 극장은 그리스의 극장 형태에서 변화한 앱스 모양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해진 앱스형태의 방,쥬간티아


박물관의 진열장 안에 있는 다양하면서도 세련된 헤어스타일의 여인들은 당시의 트렌드 세터처럼 발랄하고 생동감이 넘친다. 당당한 체격에 단발머리의 주름치마를 입은 그녀는 혹시 부족장?, 모델이 포즈를 취하듯 볼륨 있는 몸매를 더욱 과시하는 사랑스러운 그녀들에게 자유를 구가하는 자유분방함이 넘친다.


출토물의 모형
현대적인 그녀의 헤어스타일



신전의 터가 넓게 조성되어 있는 걸 보면 당시 신전의 규모도 만만치 않았을 것 같지만 생각은 거기까지, 내가 셀 수 없는 아득한 시간들을 어찌 넘어설 수 있을까, 사방이 탁 트인 신전에서 고조의 바다가 시원하게 뚫려있다.


쥬간티아 신전에서


Fort Chambray와 Church


Mgarr항에서 고조를 바라보면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왼쪽 언덕 위의 Lourdes Chapel교회이다. 몰타의 대부분의 교회들이 바로크양식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이 교회만은 뾰족탑과 벽감을 가지고 있는 고딕 양식으로 Mgarr항의 그림에서 비주얼을 자랑한다. 코미노 섬에 가던 날, Mgarr항에 내려서 사람이 별로 찾지 않는Our Lady of Lourdes의 텅 빈 예배당, 그 작고 아름다운 교회를 빙 돌며 한참을 놀았던 곳이다. 소풍 가듯이 준비한 도시락까지 까먹었던 곳이니 내겐 특별한 곳이 되었다.


바다에서 본 항구, 오른쪽에는 언덕 위의 Lourdes Chapel, 가운데는 Ghajnsielem Parish 교회가 보인다.



그곳에서 아름다운 소나무 가로수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바다를 등진 듯한 성채가 성문도 규모도 제법 크고 넓게 자리 잡고 있다. 성 요한 기사단이 1749~1760에 세운 샴브레이 요새이다. 의외의 성채에 처음에는 항구를 지키는 요새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샴브레이 요새는 수도인 시타델 대신 발레타처럼 탄탄한 성채로 싸인 새로운 고조의 수도를 만들기 위한 계획이었다고 한다. 시작도 하기 전에 주민들은 남쪽 바다의 베르베르인과 투르크의 약탈자들을 피해서 보다 안전한 시골로 이주한 까닭으로 새로운 도시의 요새화는 더 이상 발전하지 못했다고 한다.


Lourdes Chapel에서 내려와서..


돌담길을 따라 올라가면..
Chambray 요새가 나온다.


요새에서 내려오면 마을 한 가운데 Ghajnsielem Parish 교회가 보이는데 고조에서 매우 중요한 대표적인 교회다. Ghajnsielem는 말티즈어로 "Peaceful Spring"이란 뜻이라는데 과연 그들의 고향을 너무나 사랑한 고지탄들의 염원이 배어있는 이름이다.



Ghajnsielem Parish 교회


Comino, 그 바다


여름철에는 몰타 본섬이나 고조에서 코미노에 가는 크루즈선이 많겠지만 겨울철에는 슬리에마에서 고조 섬에 가는 손님들과 연결하여 이틀에 한 번씩 출발한다. 가볍게 생각하고 배를 탔는데 파도가 제법 심해, 두세 명의 손님은 심한 멀미로 아예 드러눕는다. 혹시나 하고 준비했던 주머니 속의 멀미약을 만지작거리다가 말았지만, 멀미에 대한 대비는 해야 할 것 같다.


코미노 섬 가는길


영화 ‘블루 라군’을 찍어서 더욱 유명해진 코미노는 몰타 본 섬과 고조 섬 사이에 있는 2시간이면 섬 한 바퀴를 천천히 돌아볼 수 있을 정도의 아주 작은 섬으로 Mgarr항 바로 앞에 있어 행정구역은 고조에 속한다. 섬에 많이 자생했던 향신료의 원료인 큐민Cumin이라는 식물에서 코미노(말티즈어로 Kemmuna)라는 이름이 나왔다고 하는데, 섬의 식물들을 눈여겨보았지만 키가 작은 잘 생긴 관목들만 무성할 뿐 내가 잘 몰라서인지 큐민과 비슷한 식물은 찾지 못했다.


코미노의 배가 접안 하는 곳
코미노의 블루 라군, 멀리 왼쪽에 1618년 세워진 St Mary's Tower가 보인다.


고대에는 사람들이 살았을 뿐 아니라 농사도 지었던 곳이라는데 보기에는 그냥 무인도 같다. 실제로 여름철에는 관광객들을 위한 호텔 운영을 하기에 사람들이 거주하지만 겨울철에는 철수해서 사람은 살지 않는다고 한다.


작은 섬들에 둘러싸인 보석처럼 영롱한 청록빛 코미노의 바다는 정말로 잔잔한 호수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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