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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단에 놓을 꽃 한 다발 사들고

# 몰타 - epilogue

by 그루


몰타에는 기원전 5000년경에 시칠리아 인들이 살기 시작했으며 기원전 4000년경부터 거석 신전이 세워졌고 기원전 700년경에는 페니키아인들이 정착, 기원전 480년경에는 카르타고의 지배를 받았다. 이어 기원전 218년에는 로마의 지배를 받았으며 60년에는 사도 바울에 의해 어느 곳보다도 빠르게 기독교가 전해진다. 이어 비잔틴제국, 870년에는 아랍 왕조의 지배를 받았다. 1090년부터는 시칠리아, 1283년에는 스페인의 지배를 받다가 1530년에 성 요한 기사단이 몰타에 정착한다. 1798년에는 프랑스의 나폴레옹에 의해 기사단이 쫓겨나면서 1800년에는 영국의 식민지배가 시작됐다. 1979년에는 영국군이 완전 철수했지만 영국의 지배를 받는 동안 2번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특히 2차 세계대전에서는 무차별 공습으로 인명은 물론 처참한 피해를 입는다.



2차 세계대전의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의 종. 로우바라카가든에서


누구에게는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작은 면적의 돌덩어리의 척박한 땅에 불과한 몰타는 지중해에 몰아쳤던 모든 비바람을 견뎌내고, 그들의 유전자와 흐르는 핏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그들의 역사를 소중하게 간직하며, 지금은 보란 듯이 멋지고 단단하게 융합한 하이브리드hybrid 문화를 자신들의 것으로 지켜가고 있는 것 같았다. 조금만 관찰하면 수천 년의 두께를 가지고 있는 현재의 몰타에서 시칠리아와 페니키아, 북아프리카와 아랍 그리고 지중해 문화와 성 요한 기사단, 근래에는 영국의 영향까지 겹겹이 쌓여있는 영겁의 시간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이슬람 문화의 영향을 받은 발코니


굳이 탐색하지 않아도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것은 시칠리아의 영향을 받은 몰타의 요리문화이며, 몰타의 건축에서 발달한 발코니는 아랍 시절 만들어졌던 형식이 그대로 남아, 특징 없는 라임스톤의 외벽에 장식적인 요소로 추가가 되어 오히려 장려되었다. 큰 도시만 벗어나면 나타나는 주택의 형식은 각이 진 사각형이 두 개가 올라간 2층으로 만들어진 북아프리카의 주거형태를 띠고 있다. 뱃전에 붙여 넣은 호루스의 눈도 북아프리카와 지중해 문화이며 성 요한 기사단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오히려 최근 몰타의 정치적 행보를 보면 영국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것처럼 보여서일까, 근래에 점령했던 영국의 영향은 영어와 빨간 우체통, 그리고 Pup 문화 정도로 생각보다 적었다. 아 참, 몰타인들은 담배를 매우 많이 피운다. 이것은 북아프리카와 아랍의 영향?~^^



영국의 영향이 남아있는 빨간우체통과 전화박스를 자주 만난다. 딩글리에서..


몰타를 떠나던 날, 여느 날처럼 버스정류장에서 공항 행 버스 X2를 기다리고 앉아있는데 동네 아주머니들 서너 명이 소풍 가듯이 가벼운 가방 하나씩, 들떠서 공항버스를 기다린다. 어디를 가냐고 물었더니 밀라노를 간단다. 비행기 티켓도 아주 저렴하고 말도 통하겠다, 어느 날 날 잡아서 이웃집 놀러 가듯이 쇼핑을 가는 것이다. 말티즈어와 영어가 공용어지만 시칠리아와 비슷한 역사의 궤적을 공유해서일까, 몰타인들은 이탈리아어도 제 언어처럼 통한다고 한다.




몰타의 물가는 2004년 EU에 가입하면서 눈에 띄게 높아졌다고 한다. 유럽이니까 물가가 비쌀 거라고 각오를 했지만 까르푸 같은 대형슈퍼의 물가는 대체로 우리나라보다 저렴하다. 공산품은 가격이 좀 비싼 편이지만 몰타의 특산물인 와인과 야채나 과일 등의 농산물은 의외로 싸고 매우 질이 좋다.



싱싱하고 값싼 해산물



여행자의 숙소는 대부분 슬리에마와 줄리앙 또는 발레타에 많다. 내가 여행했던 1월은 비수기여서 골든 베이나 마샤쉴록, 부지바 등에는 빈 방이 많을 수도 있지만, 교통편이 좋고 발레타보다 저렴한 숙소가 있는 슬리에마에는 사람이 많이 몰려 입맛에 맞는 방이 없을 수도 있다. 어디든 마찬가지지만 슬리에마에서는 바다가 보이는 뷰가 좋은 방에 묵는 것을 권한다. 도착하는 날만 예약을 하고 가서 다음날은 좋은 가격에 바다가 보이는 뷰가 좋은 방을 골라 묵는다면 슬리에마의 바다가 고향처럼 느껴질 것이다.


슬리에마


내가 여행했던 1월의 최저기온이 10도 안팎이며 최고 기온은 15도에서 20도를 넘나 든다. 감기를 앓다가도 이 곳에 오면 감기가 나을 것 같은, 습도가 적당한 날씨로 7박을 하는 동안 4일이나 새벽에는 비가 내렸다가 아침에는 쨍하게 개는 날씨였다. 상대적으로 여름에 비해 비수기지만 길에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80퍼센트 이상이 관광객으로 겨울에도 많은 여행자들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해양스포츠를 즐기거나 바다를 만끽하려면 5월부터 10월 중에 방문하는 것이 좋겠지만 몰타를 즐기기엔 내가 찾은 1월도 환상이었다. 아쉬운 것은 겨울에도 20도가 넘는 날이면 바다를 즐길 수 있다고는 하지만 물놀이는커녕 물속에 들어갈 수도 없었다는 것, 그래도 계절은 겨울이고 바람이 많은 섬이 아닌가.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한낮에도 그늘에 들어가거나, 아침저녁으로는 꽤나 쌀쌀해서 한 겨울용이 아닌 보온을 위한 중량 또는 경량 다운재킷은 필수다.




고작 7박 8일의 여행기가 길기도 하다. 처음에는 유럽의 끝자락에 걸려있는 십자군의 전설 속에 남아있는 기사단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낭만적인 섬으로 잡동사니로 가득한 머리는 비우고 신선한 공기에 심신을 세척하고 갈 심산이었는데....,수도인 발레타에 가서 고고학 박물관에 들어선 순간, 신선한 문양과 처음 만난 발랄하고 당당한 고대인들의 모습은(더군다나 멋진 여성의 형상이다) 호기심을 유발시키고 관찰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몰타에 산재한 신석기와 청동기시대의 신전들을 다 돌아볼 수는 없었지만 고대인들의 존재는 나를 언젠가는 몰타로 다시 한 번 데려갈 것이었다. 앱스의 제단에 놓을 꽃 한 다발 사들고, 주름치마를 입은 그녀들을 만나기 위해...


주름치마를 입은 어마어마한 볼륨의 그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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