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삶

20240603/월/맑음

by 정썰
#강아지용 #물 #바가지 #부모산 #연화사

232M. 나지막한 산이다. 일터 바로 뒤에 이런 동산이 있다는 게 이렇게 축복인 줄 몰랐다. 주 5일 점심 45분 산행은 최소한의 운동이 되었다.


아들 녀석이 어릴 적, 동산의 어원에 대해 물었다. 야트막한 한자 지식으로 '마을 동(洞)'을 쓴 洞山이 아닐까(사실 자신 있었다. 논리적이지 않은가?) 찾아보라 했다. 뭐지? 아들 녀석이 들고 온 검색 결과는 東山이었다. 그 어원이 똥산이었고, 똥을 한자로 옮기는 과정에서 '동녘동'을 가차한 것이라니 생각지도 못한 바다.


낮은 동산이라 산악자전거로 오르내리는 라이더들이 자주 눈에 띈다. 낮지만 계속 오르막이고 경사도도 만만치 않아 대단해 보인다. 날씨가 좋아서인지 가족 단위 산행도 늘었다. 꼬맹이들의 산행도 기특하다.

하지만 이보다 더 기특한 건 댕댕이들이다. 주로 중턱에 위치한 연화사 마당에서 만나게 된다. 마당 한쪽 수돗가에는 수도꼭지가 3개. 물조절이 잘 안 되지만 심리적 요인인지 일반 수돗물보다 시원하다. 연화사를 끼고 왼쪽으로 돌아올라 정상에 있는 우물을 돌아 체육공원이라기에 좀 소박한 곳에서 턱걸이나 벤치프레스를 살짝 하고 내려오는 길에 세수하고, 코 풀고, 손수건을 빨기 위해 잠시 머문다. 주인을 끌듯이 올라온 녀석. 견주가 빨간 바가지에 물을 반쯤 담에 턱에 대주니 '찰박찰박' 잘 마신다. 반쯤 마시고 다시 허약해 보이는 주인장을 끌고 산을 오른다. 물을 받았던 빨간빛바랜 바가지에 눈이 간다. 강아지용. 장소가 장소인지라 부처의 자비가 느껴진다.


연화사에서 오른쪽으로 오르는 산길 주변과 부모산 초입엔 냥냥이들이, 산속에는 새들이, 본 적 없지만, 고라니와 다람쥐까지 더불어 사는 세상. 45분 일주는 덕분에 힘듦보다 즐거움이 크다.


일터에는 거미가 많다. 처음 마주쳤을 땐 복사용지에 곱게 올려 문 밖으로 던졌다. 매번 그럴 수는 없었다. 이곳은 나만 있는 곳이 아니라서 그냥 두고 볼 수도 없다. 마루턱 틈새에 숨었다 나오는 길에 마주친 녀석을 진공청소기로 빨아버렸다. 더불어 산다는 건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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