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01/월/맑음
그는 쉽게 들켜버린다
무슨 딱딱한 덩어리처럼
달아날 수 없는,
공원 등나무 그늘 속에 웅크린
그는 앉아 있다
최소한의 움직임만을 허용하는 자세로
나의 얼굴, 벌어진 어깨, 탄탄한 근육을 조용히
핥는
그의 탐욕스런 눈빛
나는 혐오한다, 그의 짧은 바지와
침이 흘러내리는 입과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는
허옇게 센 그의 정신과
내가 아직 한번도 가본 적 없다는 이유 하나로
나는 그의 세계에 침을 뱉고
그가 이미 추방되어버린 곳이라는 이유 하나로
나는 나의 세계를 보호하며
단 한 걸음도
그의 틈입을 용서할 수 없다
갑자기 나는 그를 쳐다본다, 같은 순간 그는 간신히
등나무 아래로 시선을 떨어뜨린다
손으로는 쉴새 없이 단장을 만지작거리며
여전히 입을 벌린 채
무엇인가 할 말이 있다는 듯이, 그의 육체 속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그 무엇이 거추장스럽다는 듯이
-기형도의 시 ‘늙은 사람’ 전문
아침에 읽은 글에서 기자는 서른도 안돼 세상을 떠난 시인이 ‘늙음’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고 했다. ‘딱딱한’ 정신과 ‘그늘 속에 웅크린’ 채 ‘허옇게 센’ 정신을 지닌 자가 노인이라고.
넘버 2가 되고 싶었던 조폭은 어떤 새끼든 49% 이상 안 믿는다고 했고, 한 때 가요계를 주름잡던 테크노 여전사는 반만 믿어보라고, 반만 닮아보라고 했다. 반은 어떤 의미일까?
물의 표면이 컵의 중간에 그은 '반'에 '밖에'와 '이나'라는 조사를 번갈아 대어 보며 부정과 긍정의 기준을 삼기도 했고, SNS 속 사람들은 '벌써'라는 부사로 반을 갈라 지난 '반'을 반성하고, 남은 '반'을 다짐하기도 한다.
난 긍정의 세월을 살아내고 있을까? 내겐 벌써 7월이 온 걸까?
반백 년을 살아내고 있다. 그리고 또, 한 해의 반을 살았다. 나의 정신은 얼마만큼 딱딱해졌고, 어느 정도 허옇게 셌을까? 아직도 하늘이 주신 내 존재의 의미가 갸우뚱 한 늦깎이고, 65세까지는 청춘일 예정이다.(건방진 표현이군. 청춘이고 싶다로 바꿀까?)
추억의 영화 '넘버 3'에서 여자는 남자에게 자기를 사랑하냐고 물었다. 사랑은 90% 이상 믿는 거라고, 자기는 여자를 51% 믿는다고 답했다. 겨우?
지금의 나는 앞으로의 나를 51% 정도 믿는 거 같다. 늦어도 65세 되기 전에 온전히 사랑하고 싶다.
왠지 반달이 떠오를 거 같은 7월의 첫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