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by 이현주

1950년


마을 사람들과 나의 탄생을 축하하고 즐거웠던 것도 잠시, 전쟁이 났다. 이 곳 산골짜기까지 굶주림에 허덕이던 인민군이 몰려왔다. 목숨 값을 치를 것도 없는 가난한 젊은 남자들은 멀리 피신해버렸다. 그리고 일순 씨와 마을 여자들은 겁에 질려 시커먼 남자들에게 밥을 해다 바쳐야 했다. 그들의 배를 채우는 날이 끝이 없을 거 같았지만 곧 인민군들은 마을을 떠나기 위해 짐을 꾸렸다. 난 속으로 불을 지를까 봐 걱정했지만 말없이 멀어져 가던 그들의 뒷모습을 보니 아직 어리고 젊은 모습에 가여웠다.


일순 씨는 참 부지런했다. 낯선 이들의 방문은 까맣게 잊고 나의 구석구석을 쓸고 닦았다. 그 뒤로도 집안과 밖의 일 모두 열심히 했고 자식도 여덟을 낳았다. 위로 둘은 태어나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는데, 아이를 산에 묻고 그 위에 삿갓을 씌워 놓았다. 약해서 죽고 못 먹어서 죽는 아이들이 무척 많은 시기였다. 남은 자식들은 여름철 농작물처럼 뜨거운 햇살 아래서 쑥쑥 자라났다. 손이 빠른 장녀가 결혼해서 제일 먼저 땅끝의 섬으로 떠나고 그 밑으로 아들 둘도 객지로 돈을 벌러 나갔다.


장남은 글을 잘 써서 상도 타고 반장도 했다. 공부머리는 있었지만 어려운 형편에 학업을 포기했다. 하교를 하면 겨울에 쓰일 땔감을 구하러 지게를 지고 산으로 가는 그의 작은 어깨가 안쓰러웠다. 안타깝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따뜻하게 데워진 방을 한편 내어주는 것 밖에 없었다. 아주 오래 뒤 섬세한 남자는 연필을 놓고 연장을 들어 나무를 만지고 파는 사람이 되었다.


오랜만에 집에 들른 두 아들은 대문간 옆에 작은 집을 하나 더 지었다. 나도 동생이 생긴 거다. 사랑방과 옆 칸에는 창고가 딸려 있었다. 대문을 사이에 두고 다른 한쪽에는 헛간도 만들었다. 그곳에는 농기구를 걸어두기도 하고 철망을 쳐서 닭을 키우기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둘째 동생이 생겼는데, 화장실과 가마솥이 딸린 방이었다. 일순 씨는 종종 작은 가마솥에 꼬드밥을 지어 막걸리를 만들 곤 했다. 술 냄새가 마당을 돌며 퍼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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