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야 한다, 살아내야 한다
살아야 한다, 살아내야 한다
2023년 11월, 뉴스를 하나 보았다. 20대 여성이 환전 사기를 당한 뒤 경찰에 신고하고, 그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려 세상을 떠났다. 사기당한 금액은 90만 원이었다.
그녀의 이야기가 남 일 같지 않았다. 나 역시 사기를 당한 지 넉 달밖에 되지 않았던 때였다.
경찰 진술을 마치고 옥상으로 향하던 그녀의 발걸음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 짧은 순간,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사기 당하고 경찰서에 찾아간 '그날'이 떠올랐다. 푹푹 찌는 7월의 무더위 속에서도 온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다. 담당 형사는 고압적이진 않았지만 딱히 협조적이지도 않았다. 전 재산을 모두 사기당했다는 말을 하면서 나는 시간대별로 차근차근 사건을 설명했다. 여전히 내게 일어난 일들이 믿기지 않았다. 전 재산을 잃어버리는 경험이란 정말이지 초현실적인 일이었다. 형사는 담담하게 말했다.
"요새 이런 일이 너무 많이 일어나요. 아시겠지만, 해결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형사는 친절한 어조로 선을 그었다. 진술을 마치고 경찰서를 나오던 순간, 내 눈앞의 세상은 이전과 달라 보였다. 낯설고 차가웠다. 그때 직감했다.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겠구나.’
살아갈 의지가 사라질 때마다 꺼내 읽는 책이 있다. 마르틴 그레이가 쓴 <살아야 한다, 나는 살아야 한다> 라는 책이다. 그날도 나는 이 책을 꺼내 들었다. 마틴 그레이는 홀로코스트에서 가족을 모두 잃고, 이후 화재로 아내와 아이들마저 잃었다. 두 번이나 가족을 비극적으로 잃었고 재산도 수없이 빼앗겼지만 그때마다 그는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섰다. 그리고 잃은 절망 속에서도 살아남아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세상에 전했다.
“반드시 살아남으세요. 살아남아서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수용소에서 죽어가던 사람들이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그레이에게 살아남는다는 것은 단순히 숨 쉬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고통을 의미로 바꾸는 일이었다.
“희망은, '지금 살아있다'는 사실에 숨어있다.
나는 언제나 불가능한 일도 가능하리라고 믿었다.
살아 있다는 그 자체가 불가능한 기적이기 때문이다.“
-마틴 그레이
작가의 삶에 대한 열망이 너무나 강렬해서, 읽다보면 그 열망에 전염돼 내면의 어둠이 서서히 걷혔다. '살아야겠다'라는 의지가 되살아났다. 그의 말처럼 어떤 일을 겪더라도 '자기 삶의 의미를 아는 자'들은 끝내 일어난다.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 생각했다.
'그래,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귀한 일인가.
그러니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내야 한다.
이 다음에 얼마나 멋진 이야기가 있을지 아무도 모르니까.'
고통 보다 더 무서운 건 '절망'이다. 절망은 희망을 완전히 포기한 상태다. 프랭클은 말했다.
"우리가 느끼는 절망은 고통 그 자체가 아니라 고통에서 '의미'를 뺀 값이다."
절망 =고통 - 의미
고통의 강도보다 중요한 건 그 고통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다. 로마 황제 아우렐리우스는 "고통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고통을 당장 멈출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의미를 발견한 순간, 고통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니다. 살아야 할 이유를 아는 사람은 어떤 시련도 이겨낸다.
하지만 의미는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의미는 스스로 찾아야 하고, 지금 이순간 속에서 발견해야 한다.
프랭클은 “삶의 의미를 물을 게 아니라, 우리가 삶에게 의미를 줘야 한다.” 며 세 가지 길을 제시했다.
1. 창조적 가치: 일을 하거나 무언가를 창조함으로써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2. 체험적 가치: 사랑, 자연, 예술 등 깊은 경험을 통해 의미를 발견한다.
3. 태도적 가치: 피할 수 없는 고통, 고난을 대하는 태도가 의미 창조에 큰 영향을 준다.
고통은 사라지지 않지만, 의미를 찾는 순간 그 얼굴이 달라진다. 그를 잘 보여주는 사람이 있다.
고정욱 작가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책을 집필한 작가 중 한 명이다. 그는 일반인보다 증명서를 하나 더 가지고 있다. 장애인 증명서. 한 살 때 소아마비에 걸려 평생 동안 걷지 못하게 된 그는 어린 시절 내내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시련이 닥쳤을까?’라는 질문을 품고 살았다. 늘 우울해서 초등학교 시절,때 환하게 웃는 사진이 하나도 없었다. 하루는 옆집 할머니가 오더니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런 아이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으니 해외입양이나 보내그라."
그 말은 어린 정욱의 마음에 깊은 상처로 남았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들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를 등에 업고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등하교를 함께 했고, 덕분에 그는 단 한 번의 결석도 없이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의대 진학을 꿈꿨지만, 장애인을 받아주는 학교가 없었다. 좌절에 빠진 그를 고등학교 담임이 찾아와 말했다.
”신은 문을 닫으면, 창문을 열어준다. 문과로 가라.“
그 조언에 따라 성균관대 국문과에 진학한 그는 결심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글을 써서 살아보자.’
21살부터 글쓰기에 전념한 그는 지금까지 300권이 넘는 책을 펴냈다. 그러던 어느 날 기도를 하던 중, '왜 하필 내가 장애인이 됐을까'라는 오랜 질문에 답을 얻었다.
“정욱아,
너 같은 장애인 중에서도 말 잘하고 글 잘 쓰는 사람이 있어야,
장애인이 겪는 고통과 아픔을 알릴 것 아니냐?”
그는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자신의 고통에는 이유가 있었다는 걸.
장애인들이 겪는 현실을 알리고 세상과 연결하는 것, 그것이 자신이 해야할 일이었다.
그날 이후 그는 더 이상 불행하지 않았다.
자신의 고통이 '의미'를 얻는 순간 삶의 방향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산다는 것은 고통이지만, 고통의 의미를 찾아낸다면 어떤 시련도 이겨낼 수 있다."
로고테라피의 창시자 빅터 프랭클 박사의 말이다.
그는 홀로코스트 생존자로,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부모와 아내, 동생을 모두 잃었다. 추위와 굶주림, 끝없는 폭력의 고통 속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하지만 그는 '어떤 태도로 살아갈지 선택하는 힘이 자신에게 있다'는 걸 알았다. 삶의 통제권은 모두 잃었지만, 어떻게 살아갈지 선택할 자유만큼은 남아있었다. 그는 증오 대신 의미를, 절망 대신 삶의 목적을 붙잡았다.
살아남아 이 경험을 기록하고, 후대에 전하겠다는 목표가 그를 버티게 했다. 그는 말했다.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극한의 고통과 상실 속에서도 견뎌낼 수 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뎌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이야기는 내게 질문을 던졌다.
'나는 왜 살아야 하는가? 나의 고통은 어떤 의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