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얼마나 변했을까

by 곰곰

나는 얼마나 변했을까? 스무 살 이후에 2~3년마다 이사를 다녔다. 제주에서 서울, 그리고 시카고, 뉴욕을 거쳐 지금은 샌프란시스코에 산다. 사는 곳이 크게 바뀌면 만나는 사람들도 바뀌고, 매일 보는 환경도 바뀌고 나의 바깥이 전부 바뀐다. 내 바깥이 바뀌면 내 안도 바뀐다. 먹는 음식은 내 체형을 바꾸고, 매일 보는 환경과 만나는 사람들은 내 감정상태와 사고방식을 바꾼다. 우리 엄마는 나랑 통화할 때면 애가 미국에 보내 놨더니 개인주의자가 됐다며, 꼭 말하다 핀트가 나가면 덧붙인다. "아니 네가 미국에 이제 좀 살아서 개인주의자가 돼서 그렇게 생각하나 본데, 엄마는 모르겠다~ 서운하다~ "그럼 나는 꼭 얄밉게 덧붙인다. 엄마도 엄마를 우선으로 생각해야 해.



처음 시카고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했을 때 나는 매우 우울했다. 침대에 앉아 창문으로 떠가는 구름을 보면서 울었다. 뭘 해야 할지 모르고 뭘 말할 수 있는지 모르니 할 수 있는 게 울거나 숨거나 였다. 울다가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아직도 본인이 여덟시간을 나와 통화 했다고 주장한다. 그래도 그리운 이유는 온전히 내가 뭘 말하고 싶은지 집중한 경험이 처음이었다. 내 성격의 디폴트에 우울이 추가되었지만 시카고의 2년 동안 나는 스스로 시간을 보내는 걸 감사히 여기는 내가 생겼다. 그리고 엄마가 서운해하는 개인주의 한 스푼이 추가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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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으로 이사 간 나는 하고 싶은 게 많으나 돈이 부족하고 이상은 높은데 갖춘 게 부족했다. 복받은 나는 엄마가 집세도 내주고 밥도 먹게 해줬다. 역시 나는 힘들면 엄마번호를 눌렀다. 엄마는 이야기 들어줘봤자 소용이 하나도 없다고, 어차피 본인 즐거워지면 엄마 카톡도 씹을거면서 어이가 없다고 하면서 전화를 매일 받아줬다. 할머니는 옆에서 돈 아껴쓰라고 가끔 큰 소리로 소리를 냈다.


내 이상에 닿기 위해 뭐라도 쌓아야겠다는 생각에 쉬지 않고 움직였다. 다들 탱탱볼처럼 움직이는 도시다 보니 나도 어디로 튈지 모르게 탱탱거렸다. 튄 자리마다 자연스레 연결고리가 생기고 이상은 바뀌고 새로운 길이 자꾸 보였다. 즐거웠다. 앞이 보이지 않아서 슬픈 것보다 어디로든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이 즐거웠다. 내가 여기저기 움직이고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내가 좋아하는 말 중에 내가 변하는 게 아니고 넓어지는 거라는 말이 있다. 시카고에서 나는 내가 얼마나 내려갈 수 있는지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 보고, 뉴욕에서는 탱! 탱! 튀면서 저 멀리도 뛰어보고 내려오기도 하며 나를 넓혔다. 그러다 샌프란시스코에 왔다. 처음 샌프란시스코를 와 봤을 때 아, 여기서 살 일은 없겠다 했는데 산지 2년을 넘었다. 그 간격을 채우고 있는 내가 있는 것 같다. 채우는 일은 가끔 지루하기도 하고 계속 뛰고 싶기도 한다. 위아래로 뛰던 때보다 아무런 변화가 없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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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도 변하지 않은 건 엄마의 번호를 누르는 모습이다. 사람들이 힘들고 샌프란시스코와 미국생활이 허무 할 때 엄마 번호를 누른다. 아침에 미팅할 때 꼭 오는 엄마의 전화는 수신 거절 하면서 내 전화를 안받으면 불안해서 안달복달한다. 할머니는 가끔 성이 나면 본인 딸을 그만 괴롭히라고 한 소리 한다.


집에서 이제 8개월 정도 키운 아보카도도 요즘 위로 자라기를 멈췄다. 죽었나 싶었는데 아래 부분부터 녹색이던 줄기들이 갈색으로 나무가 돼가고 있었다. 나도 그렇게 단단하게 나를 만들어가고 있는 과정이라며 심호흡하며 위로해본다. 나무가 되어 단단해도 흔들리는 날에 엄마와 할머니를 찾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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