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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자리(중)

별별사람들 21화

by 매콤한 사탕

당직의사는 병실에 자리가 날 때까지 할 수 있는 검사들을 더 해보자고 했다.

나는 그 편이 응급실에 있는 것보다 마음이 편했다.

당장은 아프지 않았기 때문에 급한 환자들의 자리를 빼앗고 싶지 않았다.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거울 앞에 섰다.

환자복에 링거를 단 모습이 영락없는 병자 같아 보였다.

거울에 비친 낯빛이 평소보다 노란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간수치가 그렇게 높다니 믿기지 않았다.

거짓말처럼 몸이 전혀 아프지 않았다.

집에 가도 될 만큼...


링거를 끌고 CT실에 갔다.

팔에 조영제 알레르기 테스트를 했다.

주사 부위가 부풀어 올라 조영제 없이 CT를 찍기로 했다.

TV에서 본 동그란 기계장치 속에 누워있자니 기분이 이상했다.

이윽고 위잉 하고 요란한 기계음이 들리자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동굴 같은 어둠 속에서 실감 나지 않던 두려움이 고개를 들었다.


나도 모르게
내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다음날 아침에 만난 진료과 의사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이 병원에서는 안되니 큰 병원에 가라고 했다.

알겠다고 일어서려는데 의사가 퇴원은 안된다고 했다.

염증이 가라앉을 때까지는 입원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수술은 안되지만 퇴원도 안된다는 아리송한 진료를 마치고 나오는데

간호사선생님이 때마침 병실에 빈자리가 생겼다고 전했다.


"자리가 없어서 며칠씩 기다리는 경우도 많아요. 여기라도 있어서 다행이에요."


그 병실은 4인실이었다. 내 자리는 창가 쪽이었다.

옆 자리 환자가 나를 두고 측은한 듯 살가운 표정으로 반기며 간호사선생님께 물었다.


"새파랗게 젊은 사람이 어디가 아파서 왔어?"

"아, 이 분은 아니에요. 다른 병실 자리가 없어서 여기 오신 거예요."


내 병명을 듣더니 그분은 마음이 상한 듯 낯빛을 바꾸고 적개심을 내비쳤다.

앞으로도 살면서 잊기 힘들 복잡한 표정이었다.

그분은 체념한 듯 한숨을 푹 내쉬며 자신의 병에 대해 말했다.


"내 머릿속에 나쁜 게 있어. 뇌종양"


그 병실은 암병동이었다.


알고 보니,

공기 좋고 경치 좋은 그 병원은 요양병원은 아니었지만, 여러 이유로 치료를 마친 암환자들이 많았다.


"하필이면 왜 암병동이야. 가뜩이나 아픈 애를"


걱정하는 어머니의 볼맨 목소리가 전화기 저편에서 흘러나왔다.

나는 괜찮다고 했다.

타지에서 보호자 없이 입원한 자식 걱정에 속상한 부모님을 더 상심하게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죽음을 앞둔 사람은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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