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별 사람들 22화
"TV 꺼. 남들 잘 사는 거 구경하기 싫어."
그분의 깊은 탄식에 4인실 병실이 일순간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내 맞은편 환자가 병실 TV를 끄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 커튼을 쳤다.
대각선에 있던 또 다른 환자는 서둘러 병실에서 나가버렸다.
그분은 혼자 남은 나를 노려보며 분통을 터뜨렸다.
"나는 내일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사람이야!"
그분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울부짖는 그분을 말리러 간병인과 병동 간호사들이 동원되었다.
놀라서 어리둥절한 나를 보고 담당 간호사가 위험하니 잠깐 병실에서 나가 있으라고 했다.
나는 항생제를 단 링거를 질질 끌고 복도 끝으로 갔다.
놀라서 그런지 배에 통증이 느껴졌다. 배를 잡고 웅크리고 있는데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괜찮아요?"
병실을 나가버렸던 같은 병실 환자였다.
그 환자는 이곳에서 종종 있는 일이라며 내게 마음에 두지 말라고 했다.
나는 그분의 상태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지만 이해한다고 말했다.
뇌종양은 듣기만 해도 무겁고 힘든 병이었으니까.
우리는 휴게실에 앉아 TV를 보며 가벼운 담소를 나누었다.
가까이서 보니 그 환자는 많아봤자 40대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도 나처럼 병실이 없어서 암병동에 임시로 온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넌지시 몸이 나으면 뭘 할 거냐고 물었다.
그 환자는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여기 오기 전에 급식실에서 십 년 정도 일했거든요. 의사가... 나 평생 한번 담배 안 피웠는데 폐암이래요."
그 환자는 놀란 내게 괜찮다는 듯 희미한 미소 지었지만,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한참을 안절부절못했다.
우리의 대화는 더 이어지지 못했다.
병실로 돌아와 나는 이어폰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라고, 수없이 되뇌며 창밖만 내다보았다.
그런데 낮에 발작을 일으켰던 그분이 내 침상으로 다가왔다.
그분은 매우 수척해 보였다.
"저기 아까, 미안했어요."
"아,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여기서 이따 밤에 모임이 있는데 불편할 테니 커튼 쳐줄게요. 병원 사람들도 다 모른 척해주는 거니까 멀쩡한 사람이 오늘만 좀 참아 줘요. 부탁해요."
"네, 알겠습니다."
그분은 내 침상의 커튼을 꼼꼼히 쳤다.
10시가 되자 병동에 불이 꺼졌다.
그리고 깊은 밤에 그들이 왔다.
쳐진 커튼 뒤로 몇 명이 모였는지 알 수 없었지만 꽤 많은 환자들이 온 것 같았다.
"저기는 안 듣는데?"
"아, 여기는 아니야. 걱정 마, 이해해 준댔어."
누군가 나에 대해 묻는 말을 듣고, 나는 커튼 뒤에서 가시방석에 앉은 것 같아 불안에 떨었다.
나는 숨을 죽인 채 눈을 꼭 감았다.
이윽고 환자들의 간절한 속삭임이 들려왔다.
지리산에 어디쯤 용한 스님이 있다더라, 어디 물을 먹고 몸이 많이 좋아졌더라, 어느 기도원에서 기도를 하니 나았다더라는 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모임에 온 환자들은 하나같이 살고 싶어 했다.
너무나 살고 싶어서,
아프지 않은 사람들이 부럽고 밉기도 하고,
아프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고,
나아서 잘 살아보고 싶고,
기적이 일어나길 빌고 또 빌고,
그 간절한 소망들을 듣고 있자니 부정맥이라고 걸린 것처럼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들의 죽음이 무섭고 두려웠고,
그들이 그토록 원하는 삶을 나는 살 수 있어서 안도하다가,
또 그게 너무 미안해서
나는 밤을 꼬박 새웠다.
아침에 간호사선생님이 일반병동에 빈자리가 났다는 말을 전했다.
주섬주섬 짐을 챙겨 병실을 나가려는데 그분이 환한 얼굴로 내게 먼저 악수를 청했다.
나는 망설이다가 손을 내밀었다.
"빈자리가 생기면 늘 안 좋은 소식뿐이었는데 덕분에 오늘은 기분이 좋네. 희망적이야. 수술 잘 받고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잘 살아요."
그분은 좋은 기를 받으려는 듯 내 손을 꼭 잡았다.
나도 그분의 소망을 위해 손에 힘을 주었다.
더는 아프지 말고,
남은 생을 소중하게 잘 살아내기를.
P.S.
빈자리를 쓰는 동안,
기침이 완전히 멈췄다.
운동을 다시 시작했고
글감이 떠올라 메모장을 채우고
다시 공모전 준비를 하고...
나의 빈자리를 채우며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