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별 사람들 27화
"혼자 있지 말고 나와. 술 사줄게."
아리가 그 사람과 헤어진 날,
우리는 학교 앞 술집에서 만났다.
아리는 많이 울었다.
진심으로 위로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못난 마음에 나는 드디어 내게 기회가 올지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을 가졌던 것 같다.
더 기다려야 했다... 제발 더 기다려야...
나는 마음에도 없는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네는 한편, 설렘을 감추기 위해 술을 연거푸 들이켰다.
그날 밤,
술에 취해 울고 있는 그녀는 예뻤다.
다음 날,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침대에 누워있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간밤의 기억은 단칼에 잘린 듯 툭 끊겨있었다.
그런데,
눈앞에 펼쳐진 천장이 왠지 낯설지 않았다.
"여기 내 방이야?"
"너 모지리지?"
내 방문에 기대 선 누나가 한심한 듯 혀를 끌끌 찼다.
"어떻게 좋아한다는 여자 앞에서 술 먹고 먼저 뻗냐? 새벽에 걔한테 전화 와서 아빠가 차로 너 데리러 갔는데 버스정류장에서 걔가 정신 나간 널 들쳐 엎고 서있더래."
긴장한 탓일까.
나는 금방 취해버렸고
집에 간다는 그녀를 굳이 데려다주겠다며 막차버스에 따라 탔다가
그대로 버스 바닥에 고꾸라졌다고 했다.
다행히 더한 추태에 대해 아리는 말을 줄였다.
한동안 나는 사람이 쪽팔려 죽을 수 있다는 걸 뼛속 깊이 체험했다.
우리 사이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아리는 하루에 한 발쯤, 한 발쯤 멀어지다 이내 내 삶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기억나지 않는 고백에 대한 예의 있는 거절이었다.
애초에 존재한 적이 없었던 것처럼 짝사랑이 아프게 끝났다.
아들과 꼭 닮은 눈치 없는 내 아버지만이 포기를 모르고 종종 아리의 안부를 물었다.
그녀가 떠나고 긴 시간 동안
나는 홀로 카페 카르마에 앉아 책을 읽었다.
어쩌면... 나는 아리를 기다리고 있는 건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