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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있는 여자

별별 사람들 28화

by 매콤한 사탕

다시 보기 너무 슬픈 드라마가 되어버린 명작 <나의 아저씨>의 정희는 스님이 된 연인을 떠나보내지 못해 가슴에 품고 산다.


나는 비슷한 사연이 있는 여자를 안다.

그녀의 연인은 신부가 되기 위해 신학교에 갔다.


두 사람이 차례로 학교에서 사라진 후에 사람들은 한참 주인 없는 이야기를 했다.


드라마 속에서나 생길 법한 일이라고.


나는 그녀가 걱정되었지만

섣불리 연락할 수 없었다.

여전히 경솔하지 않을 자신이 없었고,

그 이야기를 하지 않고서

무슨 말을 꺼낼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가끔 SNS에 올라오는 토막 난 일상으로

홀로 그녀의 안부를 묻고 추측할 뿐이었다.


그녀는 살면서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는 사람처럼 낯설었다.

아름답게 구불거리는 웨이브펌,

몸에 착 붙은 맵시 좋은 스타일, 붉은 입술

영원히 고등학생 소녀 같던 아이는

세련된 커리어우먼이 되어

쉬지 않고 여기저기를 다니고,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며

잘 웃고, 잘 먹고, 잘 사는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나는 적잖이 놀랐다.




금방 자른 듯 단정한 짧은 단발, 꾸밈없이 투명한 피부, 싱그러운 초록색 티셔츠, 새하얀 운동화

어제 봤던 것 같이 익숙한 사람.


그녀는...

아리는...

그 시절 내가 사랑했던 소녀로 되돌아가 카페 카르마에 얌전히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잘 지냈어?"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묻고 이런저런 이야기로 빙 돌다가 풀지 못한 숙제를 꺼냈다.


"얼마 전까지 난 모르고 있었어. 왜 나한테 말해주지 않았을까?"

"내가 안된다고 할까 봐 그랬을까?"

"나한테 미안해서?"

"난 그것도 모르고 날 사랑하긴 한 걸까?"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생겼나?"

"내가 별로여서 내가 싫어졌나."

"그래서 나아지려고. 무겁게 진지해지지 말고 가볍게 살자. 나 말고 괜찮은 사람이 되자 했거든."


나는 묵묵히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의 말이라면 얼마든지 언제고 듣고 싶었다.


"나 신학교에 왔어. 그 말을 듣는데 뭔가 그때까지 알지 못했던 것들이 착착 제자리를 찾아가는 느낌이랄까.

나 때문이 아니라는 게, 내가 어쩔 수 있는 게 아니었다는 게. 위로가 되더라. 홀가분해졌어."


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밝게 웃으려 했다. 그러나,


"이상하게 눈물이 나더라고. 나 왜 이러는 걸까? 뭔가 내 일부를 영원히 잃어버린 것 같아."


아리가 숨죽여 우는 동안,

카페 카르마 사장님은 우리가 즐겨 먹던 와인을 놓고 갔다.

나는 말없이 와인 잔을 채우며 그녀의 시선을 따라 창밖을 내다보았다.


창가에 비친 드림캐처가 아리의 머리 위로 살며시 흔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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