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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화 Jun 28. 2024

속 깊은 가벼움이 필요할 때

4. 결핍은 채워 가면 되죠(3)

각자의 작업에 집중하느라 대화가 점차 끊겨갈 무렵이었다. 최현욱이 틀어둔 음악 위로 느닷없이 조심스럽게, 하지만 명확하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생리적인 소리가 끼어들었다. 처음에는 예의상 못 들은 척하던 윤소은의 입꼬리가 제일 먼저 움찔거렸다. 소심하게 투덜거리는 것 같던 허기진 소리는, 때 되면 에너지원을 공급하는 게 도리 아니냐며 거세게 항의하듯 소리를 키웠다. 결국 제일 먼저 웃음을 터뜨린 것은 뜻밖에도 김은지였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웃으려던 거 아니었는데. 근데…”



이진우의 얼굴은 불 속에 달구다 갓 꺼낸 쇠처럼 벌겋게 달아있었다. 이대로 어디로 도망쳐서 숨고 싶다는 듯이. 최현욱이 얼른 나섰다.


“사실 이 시간이 참 그렇죠. 뭐든 좀 준비해 놓고 싶어도, 이게 흙 만지는 일이라 참… 작업하다 뭘 집어먹기도 그렇고.”


어른 둘이 수습한답시고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고 있어도 이진우의 민망함은 쉽게 가시지 않는 듯했다. 안 그래도 내성적인 구석이 있던 그의 시선은 이미 있지도 않은 쥐구멍을 만들어 뚫고 들어간 지 오래였다.


“오늘 수업 끝나고 혹시 시간 되시는 분 저랑 같이 식사하고 가실래요?”


가급적 이진우를 의식하지 않으려 애쓰며 최현욱이 짐짓 쾌활하게 제안했다가 금세 당황한 얼굴이 되어 허겁지겁 덧붙였다.


“물론 강요 아닙니다, 혹시 수업 시간에는 차마 못 물어보셨는데 뭐 따로 더 궁금한 게 있으시거나, 맛있는 식사 한 끼 하고 싶으시면요. 지난번에 로미 씨도 얘기한 적 있는 바로 요 옆의 식당 가려고 하거든요.”

“저 가보고 싶었어요.”

“저는 당연히 가죠!”


김은지가 선뜻 손을 들자 이로미도 경쾌하게 찬성했다. 윤소은은 조금 아쉬운 얼굴을 했다.


“안타깝네요. 저도 다음엔 꼭 낄게요. 오늘은 서울에서 친구가 내려온다고 해서 얼른 들어가 봐야 할 것 같거든요.” 

“진우 씨는 별일 없죠? 같이 가요.”


이로미가 재차 권하는 가운데 아직도 어딘가 소년처럼 보이는 이진우는 바로 답하지 못하고 어물거렸다. 순간 최현욱은 뒷덜미를 치는 뒤늦은 깨달음에 허둥지둥 요란스레 떠벌렸다.


“윤 수강생님, 안되셨네요. 오늘은 제가 인사 삼아 내려고 했는데, 기회를 놓치셨어요.”


윤소은은 눈치가 빨랐다. 활짝 미소가 드리운 낯으로 그녀가 웃으며 최현욱의 너스레에 한 겹 보탰다.


“그러게요, 먹을 복이 없네요. 진우 씨가 제 몫까지 잘 드셔주세요. 그래야 덜 억울할 것 같네?”


무엇이 그리 민망한지 이진우는 여전히 머쓱하게 고개를 푹 수그린 채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사이에 각자의 앞에 놓인 크고 작은 그릇의 모양을 한 작업물들이 제법 그럴듯하게 형태를 잡아갔다.


“김은지 수강생님이 만드신 건 뭘까요?”

“머그컵 만들고 싶었는데… 좀 어렵네요.”


머그컵치고는 볼륨감이 상당해진 작품을 놓고 김은지가 민망해했다. 함께 고개를 기울여 통통해진 기물을 보고 있던 윤소은이 잠시 망설이다 입을 뗐다.


“혹시, 괜찮으시면 화분은 어떨까요?”

“화분요?”

“네. 저도 선물 받았었는데, 요만한 크기의 화분에 뭐더라… 통통한 선인장류 식물을 심어놨는데 굉장히 귀엽더라고요.”

“정말 그렇겠네요…”

“아님, 조리도구 같은 거 꽂아놓는 걸로 만들어도 되겠는데요?”


옆에서 이로미도 끼어들었다. 무얼 생각했는지 김은지의 얼굴이 확 피었다.


“그거 좋을 것 같아요. 그렇게 해볼게요.” 

“그럼 진우 씨는? 이건 뭐예요? 높이가 제법 되는 것 같은데.”

“아, 저는… 이거, 할머니 드리려고.”

“아, 할머니!”

“네. 할머니가 산책 다녀오시면서 바닥에 떨어져 있는 나뭇가지나 야생화 가져오셔서 꽂아두는 걸 되게 좋아하셔서.”

“할머님이 자연스러운 걸 좋아하시는구나.”


밑부분에 가느다란 코일을 새로 말아 촘촘히 붙인 것을 본 최현욱이 미소를 지었다.


“귀여운 디테일이네요. 느낌이 좋아요. 로미 씨는?” 

“뭘-까-요?”


이로미가 씨익 웃으며 양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던 오벌형 그릇을 가리켜 보였다. 누가 봐도 접시였는데, 뭔가를 더 알아봐 주기를 바라는 듯한 손짓을 보니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 먼저 알아본 사람은 윤소은이었다.


“아, 커피빈이다. 맞죠?”

“맞아요!”


이로미가 기쁜 듯이 조금 크게 소리를 높였다. 최현욱이 감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굉장히 귀엽네요. 근데 용도가…”

“음, 커피 비스킷 같은 거나, 판매용 드립백 진열해 놓으면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 만들어 봤어요. 물론 사장님 선에서 커트당할 위험도 엄~청 높지만요.”


눈이 좀 높고 까다로우셔야죠, 투덜거리는 조그만 소리를 들은 이들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맴돌았다. 


“아주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소소한 제안과 감탄이 섞인 대화가 오갔다. 몇몇은 바지런히 뒷정리를 시작했고 수강생들이 각자 만들어 둔 작품들을 조심스럽게 촬영하던 최현욱을 바라보며 묘한 감상에 젖었다. 그건 어쩐지 어릴 때 끄적여놓은 그림을 보면서 한껏 칭찬과 감탄을 늘어놓던 부모를 쳐다보며 느꼈던 으쓱한 기분과도 비슷했다. 

이쪽저쪽에서 부지런히 사진을 찍던 최현욱이 시간을 확인하고 놀란 듯이 말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요. 죄송한데, 먼저들 가 계시겠어요? 금방 갈게요.”

“도와드릴게요, 선생님!”


최현욱이 웃었다.


“대단한 일도 아닌데요 뭘. 곧 끝나요.”

“어, 그럼 저희 먼저 가서 주문해놓고 있을게요. 선생님은 뭘로 주문해 드릴까요?”




안녕하세요, 담화입니다.

연재 브런치북의 목차가 30까지밖에 생성되지 않는다는 당혹스러운 사실을 조금 전 알게 되었습니다... :( 

하여 새로 2권을 파게 되었네요! 그럼, 계속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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