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풀이엽편 | 조율하다

타인의 마음의 높낮이에 내 마음을 맞추어야 할 때

by 담화

진은 슬쩍 교실을 휘둘러보았다. 아이들은 저마다 끼리끼리 모여 대화에 열을 올리느라 바빴다. 대체로 비슷한 화제들이 오갔으나 개중 특이해서 진의 귀에 톡톡 걸리는 대화가 소수 있었다. 진은 재빨리 메모 앱을 켜서 몇 가지 단어를 입력했다. 나중에 요긴하게 써먹을 만한 아이디어 씨앗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진은 자신의 꿈에 대해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다. 진의 꿈은 누군가의 생을, 내지는 희로애락을 짓는 것에 닿아 있었다. 형식은 상관없었다. 소설이어도 근사할 것 같았고, 영화 시나리오가 되어도 좋을 것 같았다. 그러나 아직은 구체적인 연속성을 띤 어떤 흐름을 묘사하기보다는 정체를 파악할 수 없는 덩어리가 둥둥 떠다니는 정체불명의 실험실의 풍경을 그려보는 것에 가까웠다.


꿈이라는 것은 본디 홀로 키우는 것이니만큼 그것은 언제나 일기장, 혹은 습작 노트, 그것도 아니면 문득 떠오른 아이디어들을 메모해 두는 애플리케이션과 나누는 독백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진은 가끔, 누군가가 이 세계 밖에서 자신의 생각을 들여다봐주는 관객이 있다면, 그러면 좀 덜 외로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누군지 몰라도 한 사람쯤 자신을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러면 꺾이지 않을 것 같다고, 종종 그런 공상을 했다.


가장 내밀한 정체성을 가진 주제에 꿈은 혼자서는 잘 자라지 못한다.


그것이 언젠가 올 미래의 자신의 모습에 대한 것이건, 실현 가능성과 불가능성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는 창작의 영역에 있는 것이건, 꿈이라는 것은 속성상 제대로 생육하려면 광합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진은 최근 깨우치고 있는 참이었다. 따뜻한 관심이 직사광선 같은 볕의 역할을 한다면 칭찬과 격려의 한마디는 간혹 화분에 꽂아주는 노란색 영양제 앰플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이, 어째서인지는 몰라도 대개의 사람들은 타인의 꿈에 대해 빈정거리거나 웃어 넘기기가 일쑤였다. 진심으로 누군가의 꿈이 잘 자라서 열매 맺기를 함께 기대해 주는 사람은 드물다 못해 희귀했다. 적어도, 실제의 김진이라는 소년의 주변에서는 그러했다.


신기한 것은 오히려 진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진에게 아낌없이 격려와 응원의 말들을 뿌려준다는 사실이었다. 온라인에서만 쓰는 이름 뒤에 숨어서 올리는 습작과 고민의 글들에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해해 주고 웃고 울어주었다. 진에게는 그것이 오래도록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였다. 궁금한 것이 생기다 보니 진은 절로 사람들을 관찰하는 습관이 생겨버렸다. 가까이는 가족보다 더 오랜 시간을 매일같이 얼굴을 맞대고 생활하는 학교 친구들부터, 멀리는 일 년에 한 번 얼굴을 볼까 말까 싶은 해외 파견을 나가 있는 아빠까지. 말을 줄이고 장기간 주의 깊게 사람들을 관찰하고 살피다 보니 알게 된 것이 하나 있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비밀을 하나쯤 안고 산다.

물론 드물게 그런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도 있긴 했다. 그러나 그런 이들은 하나같이 어딘가 허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는 게 허무하다는 말도 종종 했다. 진의 흥미를 끄는 사람들은 항상 뭔가를 가슴에 품고 있었다. 그들의 심장을 뛰게 만드는 비밀. 진은 그런 이야기를 가까이서 자세히 듣고 싶었지만 대뜸 너를 그렇게 행복하게 하는 비밀이 뭔지 혹시 알려줄 수는 없겠냐고 묻는 것이 상대에게 잔뜩 경계심을 부풀리게 하는 것 이상의 효과를 내지 못한다는 사실 쯤은 알았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선택한 것이 관찰과 질문이었다. 물론 그것 역시 때때로 역효과를 내어서, 어떤 아이들은 진의 질문을 다른 저의가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불쾌해하기도 했다.

며칠 전엔 같은 반의 한이하가 자못 들뜬 얼굴로 야자도 제끼고 튀려는 현장을 붙잡았다. 무엇이 평소 무표정하기 짝이 없는 그 녀석의 얼굴을 그렇게 흥분으로 물들였는지 묻고 싶은 게 전부였는데, 그 감정의 근원을 알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막상 말과 행동은 엉뚱하게 나갔다. 그나마 이하는 진의 궁금증에 특별히 언짢아하지 않고 대강 말해주었지만, 신윤수는 썩 기분 좋은 기색은 아니었다.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자신만의 소중한 비밀을 강제로 공개당한 듯 언짢은 빛이 역력했기에 진은 미안했다. 그러나 결코 나쁜 의도에서, 특히 개인적인 즐거움과 기쁨의 원천을 우스개감으로 삼을 생각 따윈 전혀 없었다는 뜻을 전하고 싶었지만 잘 되지 않았다. 후에 그 이야기를 상담하듯 털어놓았더니 이하는 진심으로 황당해하는 얼굴이 되어 한참 말이 없었다.


“뭐가 궁금한지는 알 것도 같고 왜 그런 걸 궁금해하는지도 알 것 같은데, 결정적으로 잘못하고 있는 게 있거든.”

“그게 뭔데?”

“음, 글쎄. 뭐라고 해야 하지? 핸들링 handling...?”


잠시 고민하던 이하가 그런 답을 내놓았다. 갑자기 웬 핸들링, 하고 뭐 대단한 조언을 들을 수 있을 줄 알고 귀를 기울였던 진이 시큰둥해하자 이하가 진의 귀를 잡아당겼다.


“진지하게 들어, 인마. 형님이 귀한 가르침을 주고 계시잖냐.”

“별로 귀하게 들리지 않는데.”

“됐고. 누군가의 어떤 감정을 알고 싶으면, 그걸 냅다 캐물을 게 아니라 그 사람의 태도를 먼저 익혀.”

“태도...?”


뜻밖의 조언에 진이 조금 멍해져서 평소의 장난스럽고 가벼운 말투 대신 사뭇 진지하게 되묻고 말았다. 이하가 피식 웃었다.


“그래. 너 관찰 잘한다며. 그럼 나도, 신윤수도, 윤해랑도 지켜보면서 뭔가 깨달았을 거 아냐. 걔들이 자기들의 비밀이든, 즐거움이든, 그건 뭐라고 부르건 상관없는데... 아무튼 그 비밀을 대할 때만 나오는 태도 있잖아.”

그제야 진이 작게 입을 벌린 채 아아, 하는 소리를 냈다. 뭔가를 알아챈 듯했다. 자신이 유난히 조심스레 낙엽을 밟는 모습을 답답하다고 했을 때 몹시도 억울해 보였던 윤수. 누가 봐도 곰인형을 좋아하는 게 뻔히 보였는데도 그 사실을 악착같이 숨기려고 애쓰는 게 역력했던 해랑.


“이제 알겠어? 누군가의 비밀을, 그 감정에 대해서 묻고 싶으면 최소한 그 마음의 주인과 같은 태도를 갖도록 주의한 채 말을 거는 게 기본이라는 걸.”





[표제어_조율하다/모티브_정혜윤 「뜻밖의 좋은 일」]

사진: UnsplashDrew Patrick Mil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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