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있는 내게 딸아이가 어느 순간 조용히 내 옆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느닷없이 물었다.
“아빠는 왜 이렇게 말이 없어?”
나는 순간 당황했고, 얼버무리듯 말했다.
“아냐, 아빠는 밖에서 더 말이 없어. 집에서는 말 많이 하는 거야.”
그 대답을 들은 딸은 아무 말 없이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그 짧은 대화를 곱씹고 또 곱씹었다.
정말 나는 ‘말 없는 아빠’였을까?
아이에게 ‘말 없는 존재’로 비춰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조금은 쓸쓸했다.
그날 밤, 나는 이 이야기를 아내에게 했다.
아내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여보는 공감 능력이 좀 부족한 것 같아.”
“내가 공부하기 싫다고 하면, 그냥 ‘그럴 수도 있지’ 하고 공감해주는 게 먼저인데, 여보는 늘 ‘할 수 있어’부터 말하잖아.”
그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내가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고 믿었던 말들
“할 수 있어”, “힘내”, “잘할 수 있어”
이 말들이 어쩌면 상대방의 마음을 먼저 듣지 못한 채 던진 공허한 응원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내 방식대로 아이를, 아내를, 가족을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무엇이든 이겨내게 해주고 싶은 마음, 응원하고 싶은 마음으로 “할 수 있어”라는 말을 습관처럼 반복했다.
하지만 사랑은 때로 그 자체보다 표현의 방식이 더 중요하다는 걸, 나는 그날 처음 깨달았다.
심리학자 브레네 브라운(Brené Brown)은 이렇게 말한다.
“진정한 공감은 ‘적절한 말’을 찾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태도’로 마음을 맞추는 것이다.”
그동안 나는 ‘문제를 해결해주려는 태도’로 말했지만, 정작 가족이 원했던 건 ‘그럴 수도 있지’라고 먼저 들어주는 마음이었다.
아내가 말한 “공감”이라는 단어는 요즘 시대의 중요한 키워드이기도 하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arvard Business Review)에서도 다음과 같은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공감 능력이 뛰어난 리더는 더 높은 성과를 내며, 구성원과의 관계도 깊다. 공감은 개인뿐 아니라 조직 내에서도 핵심 역량으로 간주된다.”
가정도 결국은 가장 중요한 '작은 공동체'다.
아빠로서의 리더십 역시, 말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잘 들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날 이후, 나는 조금씩 말을 바꾸기 시작했다.
딸아이가 “공부하기 싫어”라고 말하면
“왜 싫은데?” “어떤 부분이 힘들어?”
이렇게 물어본다.
그리고 “그래, 그럴 수도 있지”라고 말해본다.
내가 그동안 미처 해보지 않았던 말들이다.
이제 나는 ‘답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곁에 있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예전엔 ‘조용한 아빠’가 멋지다고 생각했다. 묵묵히 일하고, 말보단 행동으로 보여주는 아빠.
하지만 아이와 아내는 내 조용함을 ‘거리감’으로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이제 나는 말이 조금 더 많아졌고, 그 안에 ‘공감’이 섞여 있다. 아이의 기분을 묻고, 아내의 하루를 듣고, 내가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할 수 있어”보다 먼저 필요한 말은 “그럴 수도 있지”였다. 나는 이제, 사랑을 공감이라는 언어로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