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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마주칠 두려움, 그리고 침착하게 이겨내는 법

관계의 불안정성과 회복 탄력성에 대하여

by 최용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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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의 삶은 수많은 관계로 얽혀 있다. 사람은 관계 속에서 배우고, 성장하며, 때로는 상처받는다. 어떤 관계는 긴 시간 동안 신뢰를 쌓으며 이어지지만, 어떤 관계는 예고 없이 멀어지고 불편하게 끝나기도 한다.

특히 같은 업계나 환경 속에서 맺은 관계일수록, 끝난 뒤에도 여운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언젠가 다시 마주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마음속에 불안을 남긴다. 가끔은 그 가능성만으로도 위축되고, 일상에 집중하기 어려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감정은 개인의 약함 때문만은 아니다. 인간이 가진 심리 구조와 깊은 관련이 있다.


심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는 ‘사회적 배제(social exclusion)’가 인간에게 실제적인 고통을 준다고 설명한다. 이 고통은 신체적 통증과 동일한 뇌 영역에서 처리될 정도로 강하다. 관계의 단절은 곧 ‘존재의 위협’으로 인식되며, 특히 그 관계가 다시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느껴질 때 불안은 더욱 짙어진다.


이러한 불안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더욱 커진다. 사람은 나쁜 결과보다, 결과를 알 수 없는 상황에 더 큰 스트레스를 느낀다. “그 사람과 다시 만나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반복되면서 마음속 에너지를 소모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감정을 억누르기보다 제대로 바라보는 것이다. 감정은 숨길수록 왜곡되고, 인정할수록 정리된다. “나는 지금 불안하다”는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한결 가벼워진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급진적 수용(Radical Acceptance)’이라고 부른다. 감정을 억지로 없애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것에서 회복은 시작된다.


관계가 끝나면 사람들은 흔히 자신을 먼저 탓한다. “내가 조금 더 잘했더라면”이라는 생각은 인간적인 반응이지만, 반복되는 자책은 스스로를 소진시키는 길이다. 관계는 언제나 양쪽의 작용과 반응으로 이루어진다. 모든 책임을 혼자 짊어질 필요는 없다. 갈등은 꼭 누군가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서로 다르게 느끼고 이해했기 때문에 생기는 경우가 많다.


불안을 줄이기 위해서는 예상되는 상황을 마음속으로 그려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구체적으로 상상해보고, 그때의 나의 반응을 미리 정리해보는 것이다. 단순한 인사, 가벼운 눈인사, 또는 아무 말 없이 지나치는 장면까지도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해보면 실제로 마주하는 순간, 당황하지 않을 수 있다. 스포츠 심리학이나 리더십 교육에서 사용하는 ‘심상 훈련(mental imagery rehearsal)’이라는 기법이 일상에도 유용하게 작용한다.


또한 타인의 평가나 반응보다는 지금 이 순간의 나에게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까?”라는 질문보다, “지금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더 중요하다. 긍정심리학에서는 과거의 일이 아닌, 현재의 선택이 삶을 바꾼다고 말한다. 이미 지나간 관계에 매달리는 대신, 현재 나의 삶을 가꾸는 데 집중하는 것이 회복을 앞당긴다.


사람은 완벽할 수는 없지만, 회복할 수 있는 존재다. 관계가 끝났다고 해서 나라는 사람 전체가 부정당한 것은 아니다. 다시 마주칠 날이 오더라도, 그 순간에 나답게 행동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감정을 억누르지 말고, 그것이 전하는 메시지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흔들리는 상황 속에서도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다.


끝난 관계는 아프지만, 그것이 곧 인생의 실패는 아니다. 관계의 파열은 오히려 나를 단단하게 만들고, 더 성숙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한다. 불안을 감추기보다는 이해하고, 상처를 외면하기보다는 마주할 때, 사람은 진정한 회복과 성장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니 끝난 관계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말자. 관계는 흔들릴 수 있지만, 나 자신까지 흔들릴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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