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사이 몇 차례 엄마에게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일 년에 한두 번 오픈하는 물류창고에 옷을 사러 가자고 하셨죠. 9시에 문을 여는데 사람이 많을 것이 분명하니 꼭 일찍 가야 한다고, 늦지 않게 오라고 신신당부하셨어요. 달력을 보니 곧 저의 생일이었습니다. 생일은 부모님께 감사를 표현해야 하는 날이니까 까짓것 같이 가드리자 생각했어요. 아침 여덟 시까지 군포역에 도착하려면 홍제동 집에서 여섯 시 반에 출발해야 합니다. 왠지 엄마의 일상 시계에 제가 맞춰지는 것 같았어요.
부지런히 이동해서 시간 맞춰 엄마 집에 도착했습니다. 엄마께서 운전하는 차에는 함께 가기로 한 친구 두 분과 아버지까지 다섯 명이 함께 탔어요. 70대가 넘어서도 운전을 즐기는 엄마의 기쁨이 절로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차 안에는 이내 엄마와 친구들이 나누는 옥상정원 고추 농사 이야기가 시작되었죠. 열기가 넘치는 어머니들 대화가 오고 가는 동안 조금 굳어있던 내 마음이 스르륵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세대에게 고추농사가 가지는 의미를 이해하게 된 나는 조금씩 그 수다에 동참했고, 그들은 흔쾌히 나를 품어 주었습니다. 비로소 우리는 한 팀이 되었달까요? 누군가의 기쁨 속에 함께 있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그곳’에 도착한 시간은 10시 무렵, 그럼에도 우리가 첫 방문자였습니다. 이후에도 찾아오는 사람은 더 없었어요. 이게 웬일인가요? 거대한 물류 창고가 창고 대방출을 한다더니, 행사장은 창고 7층에 있는 작은 공간이었어요. 진열된 옷은 겨우 20여 종뿐이었고요. 소박한 규모에 살짝 기대가 꺾였지만, 일행들은 일단 옷을 입어보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옷을 입는 족족 엄마들이 “너무 예쁘다. 저거 나도 살래.”하면서 경탄을 해주니 신이 났습니다. 역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는 모양입니다. 꽤 비싼 가격표가 붙은 옷들은 솔찬히 할인을 해주고 있었어요. 종류가 다양하진 않았지만 옷들은 마음에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일행 모두가 기분 좋은 쇼핑이었으니 그걸로 충분했죠. 그러고 나서 우리는 다 같이 돌솥밥을 뜨끈하게 먹고 만족스럽게 헤어졌어요. 우리가 함께한 그 몇 시간 동안 느낀 일체감은 마치 종교적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