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쁠 때도 축하 꽃 받긴 하지만 마음이슬플 때 받는 위로꽃에는 비하지못한다. 마음이 심란하고 우울할 때 몸과 마음이 아파서 희망이 없는 병원 침대에서 바라보는 밖의 꽃들과 매연 가득 찬 찻길이나 보도블록 틈을 뚫고 나오는 작고 노란 꽃들은 화려하거나 예쁘지 않아도 꽃 자체가 희망이 된다.
"어머나 어떻게 이런 곳에 민들레가 피었지"
"미추어버리겠다"가 요즘 심경이다. 꼭 매연 가득한 찻길에 서있는 듯하다.
마스크 끼고 다닐려니 답답하고 뉴스 틀면 사회적 범죄 뉴스에 더 답답한데 그나마 숨 쉴 수 있는 것은 내 곁에 꽃이 계속 피는 걸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에도 나의 집 베이스캠프인 아파트 베란다에서 채송화가 피었다. 노란색 꽃잎이 지면 빨간색 꽃잎이 피며 채송화가 위로를 준다.
예전에는 아파트가 아닌 주택이 있을 때는 동네 집 대문이 열려 있어서 마을 사람들의 사생활이 많이 노출됬었 다.
어느 동네든 살짝 정신줄 놓은 사람들 이 한 명씩 있어서 봄 되면 귀에 꽃 꽂고 노래 부르며 다니는사람들을 볼 수가 있었다.
국민학교 시절 기억인데 우리 동네에 무슨 사연인지 머리가 살짝 돈 여자가 있었다.
그 여자는 옥색 치마저고리 입고 연분홍루주를짙게바르고 채 송화 과꽃이 핀 화단이 있는 학교 마당까지 들어왔다.
학교 화단은 동요
'꽃밭에서'가 생각날정도로
꽃들이 많이 피어있었다.
'아빠하고 나하고
만든 꽃밭에 채송화도
봉숭아도 한창입니다.
아빠가 매어놓은 새끼줄 따라
나팔꽃도 어울리 게 피었습니다
애들하고 재밌게 뛰어놀다가
아빠 생각나서 꽃을 봅니다
아빠는 꽃보며 살자 그랬죠
날 보며 꽃같이 살자 그랬죠'
아이들은 그 여자 곁에 쪼그리고 앉아서 셀비어 꽃잎을 하나씩 따서 밑둥지를 '쪽쪽" 빨아먹으며그 여자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봤었다.
그 여자는속눈썹 긴 눈을 아래로 깔고 있었고 슬퍼 보였고 붕떠보였다.
눈은 쳐다보면 안 될 것 같아 연분홍 입술만 쳐다본 기억이 있다. 그 여자가 아이들을 해코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냥 그 곁에서 놀았었다.
요즘 우리들 심정이 이렇지 않을까 싶다.
돌기 일보 직전의 심정 코로나는 완전히 물러갈 줄 모르고 수입은 줄고 마스크 아니라도 숨쉬기 어렵다.
공황장애와 우울증 환자들이 속출하고 믿었던 사람들의 배신들 등 이 더욱 부축 인다.
그러나 지난 여정을 보면 언제는 편한 적 있었던가 생각해본다.식민지 전쟁과 보릿고개 독재 정권 아임 엠 에프 전염병 등의 꾸준한 악재 위 길들을 걸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