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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바텐더 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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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란 Dec 12. 2015

bartender 18

비밀의 정원. 2

"나까지 정신이 이상해지는 것 같아."


그의 서브를 한 번이라도 보았던 바텐더들이 보이는 공통적인 반응이다. 그녀들은 한 시간만 그의 앞에 있어도 참지 못하고 결국 주방으로 달려가 머리를 쥐어 뜯으며 혹사당한 정신을 추스르기 위해 애를 쓴다.


그것도 나이가 어느 정도 먹었거나 노련한 이들이 이만치 견딜 수 있지, 어리고 참을성 없는 바텐더들은 더 더욱 그를 힘들어 했다. 결국 그녀들은 참지 못하고 고개를 처박고 본인의 핸드폰에 열중하거나 아니면 교묘하게 비꼬는 조롱으로 그에게 대항하기 일쑤였다.

그러면 나는 몰래 손을 아래로 내리고 그런 어린 바텐더의 허벅지를 꼬집거나 발로 차서 그녀들을 제지시켰다.


"미쳤어? 저 사람이 얼마짜리 손님인 지 몰라서 그래?"


"하지만 언니, 내가 미쳐 버릴것 같은데 어떻게 해요. 아니, 개소리도 정도껏이지. 이건 뭐 어느 정도 미친 소리여야지 맞장구도 치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라고. 그냥 앉아서 네, 네 하는게 뭐 그렇게 힘들어. 이 가게에서 저 만한 견적 나오는 손님이 쉬운 줄 알아? 직업이야, 직업. 사적인 술자리가 아니라고. 너 듣기 좋은 말만 들으면서 앉아있으라고 여기서 시급받고 일하는 줄 알어?"


말은 저렇게 하였지만, 사실은 나도 그가 힘들었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는 그의 모습을 확인하면 내 머릿속에서는 모순된 두 가지의 목소리가 이렇게 외쳤다.


'아이코, 오늘 매상은 그래도 평균 이상은 찍겠네. 잘됐다.'


그리고,


'씨발, 좆됐다.......'


왜 나는 그가 힘들었을까. 앞서 얘기한 데로 그는 바텐더에게 결코 무리한 요구를 하는 손님이 아니었다. 우리가 그에게 해줄 일은 단 하나, 그의 망상을 진심으로 들어주는 것 뿐이었다.


"아내가 평민이었기 때문에 결혼 승낙을 못받아 집을 나왔지요. 그래서 몇 년동안은 일반 사람처럼 돈 벌고 살았는데 그때가 행복했던 것 같아요. 형님이 후계자 자리를 포기하고 나와서 제가 할 수 없이 다시 집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제 비서는 아주 유능한 사람이랍니다. 오개국어에 능통하고... 하하하, 연봉을 오억이나 받는데 그 정도는 해야지요."


"사적으로 알던 동생이 사정이 딱해서 친 여동생으로 호적에 올리느라고 어머니하고 많이 싸웠지요. 결국 제가 이기긴 했지만...... 우리 가문에 들어온 이상 일단 개인적으로 쓸 수 있는 돈이 천 억이 되기 때문에 먹고 사는데는 지장은 없을 거에요."


"...... 사람들은 왜 내 차만 보면 그렇게 사진을 찍는 건지..."


"어릴 때 호주에서 살다 십대에 한국에 들어와서 영어밖에 못해서 왕따를 좀 당했지요. 그 때 한 친구가 도와 줬는데 그 연예인 ...... 라고. 그 인연때문에 그 친구 방송일 할 때 돈 엄청 대줬지요. 결국 회수도 못하는 돈 투자했지만. 하하, 지금도 어디어디 기획사에서 투자하라고 여자 연예인들하고 자꾸 사적인 자리 만드는데 관심도 없고 피곤하기만 하네요."


그의 망상을 정리해 보자면(4년이나 그를 알았기 때문에 나는 그의 인생사를 그 자신보다 더 잘아는 것 같이 느낀다.)

그는 밝히지는 못하지만 어느 대단한 재벌가의 둘째 아들이고 어린 시절부터 호주에 유학가있다가 16세 무렵 한국으로 들어와 지금 아주 유명한 톱스타 누구씨와 절친한 동창으로 고등학교를 졸업, 그 때 당시 지금의 부인을 만나 결혼을 하기 위해 집안을 뛰쳐 나왔고 대학에 다니며 일을 하며 평민처럼 살았다.

(그리고 그 와중에 연세대 건축학과와, MIT 물리학과, 그리고 캠브리지 의과대학까지 다니는 기적에 가까운 20대를 보낸다.)

그러나 집안의 후계자인 심약한 큰 형이 결혼의 실패로 상처를 받고 모두 내팽개치고 제주도로 도망가 버린다. 발칵 뒤집힌 재벌가는 야인처럼 살던 그를 설득해 후계자로 만들려고 하고, 부인을 정식으로 인정받는 것과, 알고 지내던 친한 여자 아이를 호적에 들이는 것을 조건으로 그는 다시 재벌의 삶을 살기로 결심한다. 그것이 지금 현재 그의 모습이다.


글로 옮겨 놓으니 아주 짧게 요약되지만 실제 그는 자신의 인생을 아주 디테일하게 설정해 놓았고 놀랍게도 4년 동안 그 설정을 한번도 어긋난 적이 없었다. 마치 실제 그러한 삶을 사는 것처럼, 생생한 하나의 인생을 한치의 어긋남 없이 돌아가는 정교한 기계처럼 세세하게 정의하고 구축하였다.

오죽하면 한 어린 바텐더가 이러한 의문을 던졌을 정도였다.


"근데 진짜 재벌 3세 아닐까요?"


"......저 말들이 진짜로 믿겨져?"


"아니, 근데 어쩌면 저렇게 자세하게 거짓말을 해요? 너무...... 완벽하잖아요."


다른 바텐더는 심지어 그의 뒤를 밟아 보려는 시도까지 하려고 했다. 그의 정체가 너무도 궁금하다면서.

그렇다. 다른 건 몰라도 그의 스토리텔링 솜씨는 진짜였다.

그 재료 하나하나를 보면 말도 안되는 조잡한 엉터리인데 그 것으로 집을 지은 그의 솜씨가 너무 훌륭해서 멀리서 얼핏 보면 진짜인가 싶을 정도로 정교했던 것이다.


그것이 나를 힘들게 하는 요인이었던 것 같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라. 가장 간편한 해결책이지만 모두가 그렇게 대응할 수는 없다. 적어도 그의 주된 이야기 상대가 되는 바텐더는 그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제대로 된 말상대가 되어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주로 내 역할이었다.


나는 이성적으로 재벌3세의 이야기가 개소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애초에 재벌들이 이 변두리의 이 별것 없는 바에 나타날 리도 없을 뿐더러 그의 이야기는 제대로 된 재벌들의 이야기도 아니다.

나 역시 사회 상류층이 어떻게 살아가는 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가 말한 것이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판별할 정도의 상식은 있다.


언제나 비슷비슷한 복장을, 진한 섬유유연제 냄새를 풍기며 들어오는 이 남자는 재벌이 아니다. 또한 그다지 썩 벌이가 좋은, 사회적으로 안정된 위치에 있는 사람도 아니다.

그의 앞에 서면 어김없이 풍겨오는 진한 섬유유연제의 냄새는 나에게 씁쓸한 동정심을 일으킨다.

아, 이 사람은 나에게 자신의 초라함을 가리기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열심인 행위를 하고 왔구나.

수 천만원짜리 명품으로 몸을 휘감는 게 아니라, 그날 세탁된 가장 깨끗한 옷을 갈아입고 이 곳으로 와주었구나.

못이 박히고 투박하지만 깨끗하게 깍은 손톱. 단정한 품행, 깍듯한 존대. 그러나 그가 온 몸으로 노력하는  모습으로도, 그가 주장하는 그의 신분, 그 실제와는 거대한 간극이 존재했다. 결코 메워질 수 없는.


그러나 나는 그러한 것들을 모른 척 하고, 그의 말들이 사실인 양 받아들이면서, 그가 지불하는 그 후한 술값만큼 성의있게 그의 환상에 동참하였다.

 그 와중에 나의 머릿속에서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양 받아들여야하는 쪽과 논리적으로 모순 되는 정보를 바로 잡으려는 쪽이 사사건건 부딪히며 나를 괴롭혔다.


사슴을 두고 말이라고 우기는 사람 앞에서 입으로는 '아, 예 저것은 틀림없는 말이군요. 정말 훌륭한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라고 웃었고 머릿속으로는 '미친 소리 하고 있네, 내가 바보천치로 보이냐? 저건 사슴이라고, 사슴!'이라며 소리없이 절규했다.


이것은 엄청난 정신적인 고문이었다. 게다가 재벌3세는 한번 방문하면 가게의 마감시간까지 떠날 줄을 몰랐다. 짧게는 네 다섯시간, 길게는 일곱시간이 넘도록 그에게 정신적인 고문을 당하고 나면 시쳇말로 정말 멘붕상태에 빠지고 만다.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는 그 모든 것을 금전적으로 보상해 주었다. 재벌 3세의 설정상 째째하게 몇십만원 술값으로 군소리 할 수 없었던 그의 약점을 제대로 이용한 바텐더들은 그  한사람에게 거의 하루 매상에 필적하는 금액을 항상 뽑아내었다.

그리하여 그는 나의 가장 좋은 손님이자 가장 피하고 싶은 손님이 되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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