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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바텐더 2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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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란 Jan 25. 2016

bartender 20

해장국 blues 1

“저희 가게에서는 이제 ...씨한테 술을 안 팔기로 했습니다.”     


냉정한 거절의 말에 상대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하, 어이가 없네. 왜요? 내가 뭘 어쨌는데요? 내가 여기서 뭘 했는데요?”     


그는 진심으로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무고한 자신을 왜 이리 괴롭히느냐는 억울한 어린아이의 표정이다.     


“저희 바텐더가 ....씨를 불편해 하네요.”     


“그럼 걔보고 얘기하라고 해요. 여기 와서 내 얼굴 보고.”     


“얼굴도 보고 싶지 않고 얘기도 하고 싶지 않다고 하네요. 그냥 가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유라도 알아야 가든지 말든지. 내가 왜 여기 오면 안 되는데? 지금 이게 뭐하자는 건데?”     


남자의 감정이 격앙되고 공격적인 말투로 변한다. 그러나 지금 물러서면 안 된다. 그렇다고 더불어 언성을 높여서도 안 된다. 어디까지나 정중하고, 또 정중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다음은 명분의 방패를 들 차례다.     


“....씨가 했던 행동들이 본인이 생각하기에는 별일 아닐 수도 있지만 충분히 바텐더들을 불편하게 해서 그렇습니다. 특히 ...바텐더의 경우에는 지금 ....씨를 보는 것조차 무서워하고 있어요. 시도 때도 없이 연락을 하는 것은 그렇다 쳐도, 마감시간 때만 되면 와서 퇴근하는 애를 끌고 가려고 하는 게 정상적인 행동은 아니잖아요?”      


“내가 몇 번이나 그랬다고요?”     


남자의 언성이 누그러졌다. 방패를 창으로 바꿔 쥐었다.     


“횟수가 중요한가요? 그리고 우리 바텐더는 이미 명확하게 거절 의사를 밝혔는데 왜 그걸 알아듣지 못하고 본인 좋을 대로 해석해서 사람을 괴롭힙니까? 어차피 이곳에 오는 목적이 그 친구였다면 이제 아무리 여기서 술을 마셔도 그 친구가 서브 보는 일은 없을 테니 이 가게에 올 이유도 없잖아요?”     


“바텐더잖아요. 여기서 하는 일이 그거 아닙니까? 내가 무슨 범죄자도 아니고, 돈을 못낸 것도 아닌데 이건 아니잖아요.”     


그의 종잇장처럼 얇고 가벼운 명분은 이제 내가 입김을 한 번 더 불기만 하면 날아갈 만큼 위태위태 매달려 있다.     


“우리가 바텐더면, 바텐더들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라도 손님이라면 무조건 밖에서 만나줘야 할 의무가 있습니까? 우리 일은 가게 안에서 끝나는 거예요. 우리가 이 안에서 웃어주고 같이 얘기를 들어준다고 그 기분이 가게 밖까지 이어지는 건 아니에요. 우리 근무지는  이 안이고, 밖을 나가면 각자의 사생활이 있어요. 그런데 ....씨는 그걸 무시하고 바텐더들의 사생활을 침해한 거고요. 바텐더 중에 누가 마음에 들었더라도 그 사람이 가게 밖에서 까지 거기에 장단 맞출 의무는 없어요. ....가 마음에 들었다면 다른 식으로 접근하셨어야지요.”     


“대체 내가 뭘 어쨌다고? 술 먹고 지랄이라도 했나? 나 정도가 진상이라고 하면 여기 가게는 문 닫아야지. 그리고 좋으면 좋다 표현도 못하나?”      


“때려 부수고 난동을 피워야 진상이 아닙니다.  ....씨, (한숨이 나왔다.) 그 애가 좋다면 애초에 접근법이 틀렸어요. 손님의 입장으로 억지로 앉혀놓고 듣기 싫어할 말만 골라하면서... 무슨 말이요? 기억 안 나세요? 애 앉혀놓고 욕 했잖아요, 욕. 그래놓고 항의하면 좋으니까 그렇지. 초등학생도 아니고. 그리고 번호 따가서 혼자 마치 사귀는 사람처럼 문자하고, 꼭 마감시간만 골라 나타나서 밖에서 따로 만나려고 하고. 싫다고, 호감이고 뭐고 없다고, 그냥 손님일 뿐이라고 몇 번을 말해도 무시하고. 

보세요. 그냥 이게 일상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여자들은 차단하고 안 만나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할 수도 없어요. 왜냐하면 손님이니까, 가게로 찾아오면 얼굴을 맞대고 얘기해야 하잖아요? 그러니까 ...씨 같은 사람들이 거절을 거절로 못 받아들이고 계속해서 도에 넘는 행동을 시도하고, 이렇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최소의 방어권을  행사해 볼려고요.“     


나는 더 더욱 목소리를 낮추고 냉정한 얼굴로 말했다.     


“이제 우리 가게에 오지 마세요. 술도 안 팔고 서브도 안볼 겁니다. 그냥 다른 가게로 가세요. 부탁합니다.”     

남자는 몇 번 더 항의하였고, 결국 바늘 들어갈 틈도 없이 단단한 나의 표정에 ‘그래 내가 다시는 여길 오나봐라’ 라는 종류의 말을 남기고 가게 문을 나섰다.     


그가 특별히 가게에 출입금지를 당할 만큼 대단한 행동을 한 것은 없다. 나는 한편으로 그의 억울함을 어느 정도는 이해한다. 그는 아주 평범한 바를 좋아하는 빠돌이였고, 언제나 그랬듯이 바텐더들을 마치 자신의 예비 여자친구인 것 마냥 추근거리고 망상을 하고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이론으로 본인 생각으로는 아주 ‘남자다운’ 짓거리를 조금 했을 뿐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는 돈이 되지 않아 떨려났을 뿐이다. 미미한 스토커 짓은 바텐더들이라면 누구나 한번 이상 당해본 일이며, 어떻게 보면 그러한 남자들의 희망이나 망상이 가게의 매출을 증대시켜 주는 아주 큰 요인이 된다. 그러나 위의 남자는 ‘고작 맥주 몇 병’으로 귀한 일손인 바텐더의 안위를 위협하고 가게에서 마음 편히 업무를 볼 수 없게 만들었다. 


바텐더의 불편과 매상이란 저울에서 매상의 추가 좀 더 무거웠다면 아마 그는 다른 대접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추는 너무도 가벼웠다.

물론 그의 행동을 지표로 그가 앞으로 저지를 수도 있는 어떤 불미스러운 사건을 예견하여  미리 예방조치를 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언제나 우리는 그 불미스러운 사건에 대한 위험요소를 지고 일을 한다. 외로운 남자들은 너무도 많고, 우리는 그런 사람들에게 너무도 가볍게 ‘당신을 이해합니다.’ 라고 말해준다. 그렇게 서로 간의 동상이몽이 쌓이고 쌓이면 결국 손님들은 이렇게 묻는다.     


“몇 시에 끝나?”     


순수하게 가게의 영업시간을 물어보는 질문이 아닌 질문. 바텐더들에게 대답을 망설이게 만드는 그 질문. 그리고 이어지는 제안.     


“끝나고 해장국 먹으러 갈까?”     


바텐더를 하면서 족히 백 번쯤은 들어봤을 그 말. 아, 지긋지긋한 해장국. 

그렇다.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해장국과 바텐더와 손님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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