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대상 사진 수업 <눈짓> 레시피
2017년부터 2019년도까지 14-15살 청소년 대상으로 사진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사진을 특별히 배운 적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잘 찍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 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은 사진은 사물을 낯설게 보는 방법을 가르칠 수 있는 가장 좋은 예술이자 기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수업을 '관찰' 수업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가령 아스팔트 바닥에 햇빛이 비친 부분과 그늘 진 부분이 있다고 했을 때 어떤 부분이 '진짜' 검은색일까요? 직접 눈으로 본 풍경의 느낌을 사진으로 똑같이 느낄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똑같은 사물을 찍어도 사람마다 다른 느낌의 사진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냥 보던 것을 제대로 보기 시작하면 그동안 우리는 아무것도 보지 않고 살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물론 아이들이 수업을 통해서 이런 부분을 한 순간에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내 눈을 가리는 수많은 필터를 제거하고 사물의 본질을 제대로 보는 과정은 생각 이상으로 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총 12차시의 과정을 담은 수업 계획서와 교안입니다. 한 학기 분량에 맞추기는 했지만 사진 수업의 핵심 방향은 <프레임, 뷰포인트, 타이밍, 심볼> 총 4가지입니다. 어려운 단어는 아니지만 아이들이 이해하기는 어려운 개념일 수 있어서 각 주제마다 별명을 붙였습니다.
1. 프레임 : 더하기와 빼기
사진은 뺄셈의 미학이라고도 합니다. 처음 사진을 찍을 때는 찍고 싶은 것을 프레임 안에 모두 넣으려고 하죠. 하지만 사진을 계속 찍다 보면 정말 촬영하고 싶은 것을 제외하고 모두 빼는 것이 좋은 사진을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카메라를 사용하기 전에 아이들에게 종이라 만든 사각 프레임을 나눠준 후 찍고 싶은 풍경이나 사물을 대상으로 구도를 잡아보게 합니다. 마음에 드는 장면을 발견했을 때 사진을 찍어본 후 눈으로 볼 때와 사진으로 볼 때의 차이점에 대해 비교해 봅니다.
2. 포인트 오브 뷰 : 벌레의 시선
사물을 낯설게 볼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물리적 시선을 바꾸는 것입니다. 정면으로 보던 것을 뒤에서, 옆에서, 아래서 보는 것만으로도 익숙하던 대상이 전혀 다르게 보이죠. 사진작가들이 눕거나 엎드려서 찍는 이유는 결코 멋을 부리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아이들에게 설명할 때는 벌레가 되어보자고 이야기합니다. 시선을 다르게 하라는 말보다 한 마리 개미가 되어보라는 말이 아이들 입장에서는 훨씬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진을 찍기 전에 어떤 벌레가 되어 보고 싶은지 먼저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수업에 대한 흥미를 높이기 위한 좋은 방법입니다.
3. 타이밍 : 결정적 순간
'결정적 순간'은 사진에 입문하게 되면 가장 먼저, 많이 듣게 되는 명언 중의 하나입니다.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의 작품집 제목(The Decision moment)에서 처음 등장한 말인데 지금은 사진 자체를 표현하는 말로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인생은 타이밍'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사진도 타이밍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타이밍을 잘 잡기 위해서는 관찰력도 좋아야 하지만 기다릴 줄 아는 인내심도 필요하죠. 그래서 저는 이 수업을 진행할 때는 출사 시간에 촬영할 수 있는 사진 개수에 제한을 둡니다.
4. 심볼 : 보이지 않는 것
보이지 않는 것을 찍을 수 있을까요? 사진 속에 내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가능합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촬영을 하기 전 글쓰기를 먼저 합니다. 주제는 계절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3년 동안 봄, 여름 시즌에 수업을 했기에 주제는 '봄'과 '꿈'이었습니다.
가령 봄을 촬영하기 위해서는 본인이 생각하는 봄에 대한 이미지, 생각, 느낌 등을 정리해 봅니다. 그 과정에서 나만의 봄이 탄생하는 순간 그동안 매년 똑같이 느껴지던 봄은 서로 다른 봄이 되어 버립니다. 사실 봄에 대한 예쁜 사진을 남기는 것보다 이 과정 자체가 굉장히 소중한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1. 사진 읽기와 사진 쓰기의 반복하세요.
사진을 찍고 그다음 시간에는 사진을 다 함께 보고 어떤 생각과 느낌을 찍었는지 아이들의 목소리로 직접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좋습니다. 자신이 찍은 사진을 타인과 공유하는 과정을 통해 내 생각은 더욱 명료해지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는 감성을 배울 수 있습니다. 교사가 사진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지식이 있다면 구도나 기법 등에 대한 피드백을 주면 더 좋습니다.
2. 교사가 직접 찍은 사진을 보여주세요.
사실 사진 수업은 아이들에게 흥미를 끌만한 수업이 아닙니다. 한창 역동적으로 움직여야 할 아이들에게 '관찰'을 가르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럴 때 교사의 경험을 공유하는 것은 아이들의 동기를 유발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저는 인스타그램에 제가 찍은 사진을 꾸준히 올리고 있습니다. 잘 찍은 사진도 아니고 한 달에 한 번 올릴까 말까 한 정도지만 그렇게 쌓인 사진만으로도 아이들과 소통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3. 참고도서를 공유합니다.
위 교안에 들어간 내용들은 웬디 이월드의 <내 사진을 찍고 싶어요>와 필립 퍼키스의 <사진강의 노트>를 읽고 참고해서 정리한 내용들입니다.
그 외에도 몇 가지 책들을 더 참고했지만 핵심 내용은 모두 두 책에서 나왔습니다. 시간이 되신다면 직접 읽어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사진을 떠나서 인생에도 큰 도움이 되는 책입니다.
모든 파일은 무료로 공유합니다. 다만 좋아요와 공감 댓글은 글을 오래오래 재미있게 쓸 수 있는 동기가 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좋은 수업을 위해 노력하시는 모든 선생님들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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