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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키 Jan 05. 2025

무덤 속의 죽은 그리스도의 몸

한스 홀바인

1520년에서 1522년 사이에 독일의 예술가이자 판화가 인 한스 홀바인이 석회 나무에 유화와 템페라*로 그린 그림입니다.


* 템페라 - 일반적으로 달걀노른자 와 같은 끈적끈적한 재료인 수용성 바인더를 혼합한 영구적이고 빠르게 마르는 물감.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늘어지고 부자연스럽게 얇은 몸을 무덤에 누워 있는 실물 크기의 그로테스크한 묘사를 보여 줍니다. 홀바인은 평범한 인간의 운명을 겪은 후 죽은 신의 아들을 보여줍니다.  _Wikipedia


*

(작가, 미술 기법, 역사적 배경 등 일체의 객관적 사실을 배제한 하루키의 감각과 추상표현으로 쓴 감상입니다.)

Hans Holbein the Younger <The Body of the Dead Christ in the Tomb>, (1521) 출처: Wiki



+ 하루키 감상

1517년 마르틴 루터는 가톨릭의 신학적 오류에 따른 면죄부 남용과 같은 행위에 분개해 학문적 토론과 지적 차원에서 (독일 작센안할트주) 비텐베르크성 교회 대문에 붙인 대자보 '95개 조 반박문'은 유럽 전역에 종교 개혁의 서막을 올립니다. 개신교의 태동. 독일과 국경을 접한 스위스 바젤에서 (화가로) 활동하던 한스 홀바인은 내심 큰 감동을 받습니다. 종교 개혁의 광풍은 급속히 유럽 전역을 강타합니다.


1521년 차가운 봄. 홀바인은 친구이자 화가이면서 예술 후원가인 보니파시우스 아메르바흐의 집에서 최근 유럽에서 벌어지는 불행한 사건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눕니다.


"홀바인, 현재의 가톨릭을 의인화해 비유하면 말기 암 환자 같아. 복부를 갈라 수술을 하려고 해도 커다란 종양이 위, 췌장, 대장, 신장에 이르기까지 온몸에 퍼져 있는 거야. 내장 전체에 검버섯이 핀 거지. 가톨릭의 욕심과 잘못된 신앙은 농민, 상인, 군인은 물론, 귀족과 왕족까지 죽음에 이르게 하고 있어. 신은 존재해. 자네도 나도 알고 있듯이. 진짜 신은 가톨릭의 행위에 분노하고 있어. 그래서 벌을 내렸지. 첫 번째 벌은 동쪽 야만족(몽골족)의 침략이고, 두 번째 벌은 흑사병이야."


홀바인은 에일 맥주를 홀짝이며 아메르바흐의 이야기를 묵묵히 듣습니다.


"작년 독일 작센에서 마르틴 루터를 만났어. 그의 목소리에서는 강인한 집념과 확신, 안광에서는 광기와 지혜가 반짝임을 느꼈지, 루터는 분명 신을 믿어. 거짓이 아님을 나는 알아. 그는 악마가 아니야. 어쩌면 현재의 로마 교황이 교황의 탈을 쓴 악마일지도 몰라. 그가 주장하는 '95개 조 반박문'을 가톨릭은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해. 가톨릭은 개혁하지 않으면 안 돼. 하지만 가톨릭을 대대적으로 개혁한다 해도 소시민의 막심한 희생과 수많은 난관이 있을 거야. 신의 분노(흑사병)도 계속될 거고."


홀바인은 이야기를 듣다 갑자기 생각난 이야기를 아메르바흐의 말을 끊고 두서없이 말합니다.


"아메르바흐! 작년에 내가 이탈리아 여행을 했잖아, 그곳의 한 성당에서 어떤 그림을 봤어. 그 그림엔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은 예수를 끌어내려 골고다 언덕에 누운 만신창이가 된 예수를 보여줬지. 그런데 기괴하다고 느낀 게 뭔지 아나? 예수의 표정이야. 너무 평온한 거지. 만신창이가 된 육체와 다르게 표정이 온화해 기괴하단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자세히 들여다봤지, 예수의 육체와 상처들이 생생했어, 예수를 둘러싼 사람들의 표정은 슬픔과 절망, 고통으로 가득했고. 그때 알았지. 잘못됐어. 잘못된 거야."


아메르바흐가 홀바인이 마시는 맥주를 응시하며 이야기를 듣다 갑자기 큰소리를 지릅니다.


"이에수스 나자레누스 렉스 이우대오룸(INRI.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


* ‘INRI’라는 보통 가톨릭에서 십자가를 나타낼 때, 거기에 붙어 있는 죄 패에 쓰여 있는 단어이다 :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라틴어 INRI 약어 Iesus Nazarenus Rex Iudaeorum;이에수스 나자레누스 렉스 이우대오룸)이다.


"홀바인, 내가 자네에게 그림 의뢰를 하지, 예수를 그려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후 내려져 관에 묻힌 예수를, 진짜 관 속의 예수를. 자네의 사실주의 그림은 전 유럽을 통틀어 최고라 생각해. 요새는 종교전쟁으로 사방에 시체가 널려 있어. 적당한 시체를 물색해 내가 자네 작업실에 가져다주지. 시작해! 당장!"



&



1. 죽은 지 하루쯤 지나 보이는 남성의 시체를 한참 보고 있던 홀바인. 귀족이나 부자 상인이었을 것 같은 남성으로 큰 상처가 보이지 않았고, 씻겨 놓으니 새하얀 피부가 유독 눈에 띄었습니다. 특수 제작한 목관 안으로 시체를 밀어 넣은 홀바인. 한쪽 면이 완전 개방된 목관. 시체 가슴과 천장 사이는 주먹 하나 들어갈 공간이 있었고, 수평한 바닥에는 하얀 수의를 깔았습니다. 두 발을 글자가 새겨진 목관 쪽으로 바짝 붙입니다.


2. 홀바인은 책상에 놓인 성경책을 다시 펼칩니다. 책갈피 한 요한복음을 다시 읽습니다.


예수께서 실제로 숨을 거두셨는지에 대해 의문의 여지가  없도록 한 군인이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찌릅니다. 창이 심장 부위를 꿰찌르자 ‘곧 피와 물이 나옵니다.’ (요한복음 19:34)


먼저 얼굴부터 그리기 시작합니다. 회색빛 얼굴의 방향을 살짝 자신 쪽으로 향하게 하고 생명력을 잃은 눈을 게슴츠레 열린 채 천장을 향하게 합니다. 뻣뻣하고 마른 머리카락이 흰 수의를 덮습니다. 수염은 천장을 향합니다. 입은 살짝 열려 있습니다.


상체의 흉골과 늑골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고, 흰 수의로 허리를 덮습니다. 이어서 알몸의 하체가 보입니다. 근육이 모두 녹아내린 것 같습니다. 롱기누스의 창에 찔려 생긴 늑골 부위의 상처. 검붉습니다. 남성의 피부는 내장과 혈관을 다 들어낸 박제된 피부 같습니다. 이어서 오른손, 손등에는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의 생긴 상처, 파랗게 괴사 한 손가락 첫마디와 손톱이 보입니다. 가운데 손가락은 어딘가를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발을 완성합니다. 가장 부패가 심한 상태. 발등에는 못 자국 상처가 있습니다.  


3. 무덤에 묻힌 예수를 상상해 그림을 완성합니다. 홀바인은 완성하 그림에 제목을 달지 않습니다. 다만 목관 위쪽에 아메르바흐가 말한 문장을 넣습니다. 


이에수스 나자레누스 렉스 이우대오룸(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


4. 300년 후, 한스 홀바인 《무덤 속의 죽은 그리스도의 몸》은 도스토옙스키와 운명적 만남을 갖습니다. 스위스 바젤 쿤스뮤지엄을 방문한 도스토옙스키가 홀바인의 그림을 보며 사실성에 감탄합니다. 한편 그림이라는 인지, 종교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시체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시체로서 그림을 보고 있는 자신을 깨닫습니다. 지금, 바로 여기, 자연의 피조물로서 인간을 보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도스토옙스키는 강렬한 예술적 숭고미를 느낍니다.


‘나는 저 그림을 보는 게 좋아.’ 로고진은 잠시 입을 다물고 있다가, 다시금 자신의 질문을 잊어버린 듯 이렇게 중얼거렸다.  

‘저 그림을!’ 공작은 문득 떠오른 어떤 상념에 사로잡혀 갑자기 소리쳤다. ‘저 그림을 보노라면 오히려 신앙이 사라져 버릴 사람도 있을 텐데!’

‘그래서 사라지고 있지.’ 뜻밖에도 로고진은 불쑥 동의를 표했다. (중략) 그림 속에서 이 얼굴은 구타로 인해 퉁퉁 붓고 무섭게 짓이겨졌을 뿐만 아니라 무섭게 부어오른 피멍으로 덮여 있으며, 두 눈은 퀭하니 떠져 있고 동공은 비스듬히 돌아가 있다. 커다랗게 열린 흰자위는 뭔가 생명이 없는 유리알 같은 빛을 반사하고 있다. _도스토옙스키 『백치』 일부 인용

(중) 발 밑에 보이는 글자는 <- M - D - XXI / - H - H -", 즉 1521과 그 뒤에 마스터의 이니셜> 출처: 바젤 쿤스뮤지엄

* 화가 - 한스 홀바인(한스 홀바인 더 영거)Hans Holbein the Younger (1497 ~ 1543, 독일, 스위스)

+ 전기(1497-1526)

한스 홀바인 2세는 1497년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에서 태어납니다. 그의 아버지 한스 홀바인 1세는 유명한 화가여서 어렸을 적부터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1515년 (스위스) 바젤로 이주하며 본격적인 화가로서 경력을 시작합니다. 이 시기 주로 종교화와 초상화를 그립니다. 


1516년에는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의 초상화를 그리면서 유명세를 얻기 시작합니다. 이 작품은 그의 초상화 기술의 탁월함을 보여주는 대표작이 됩니다. 1523년 '죽음의 무도'라는 목판화 연작을 시작합니다. 이 작품은 그의 예술적 재능과 함께 당시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의식을 보여줍니다. 1526년, 홀바인은 영국으로 떠나기 전 '<마이어 부인의 마돈나Darmstädter Madonna>' (하단 '의식 안의 미술관' 참조)를 완성합니다. 이 작품은 그의 독일 시기를 대표하는 걸작으로 평가받습니다.


+ 중기(1527-1539)

1526년 홀바인은 에라스무스의 소개로 영국으로 건너갑니다. 이곳에서 그는 토마스 모어를 만나 친분을 쌓고, 그의 초상화를 그리게 됩니다. 이 초상화는 홀바인의 대표작 중 하나가 됩니다. 1528년부터 약 3년간 잠시 바젤에서 활동하다 1532년 다시 영국으로 돌아옵니다. 홀바인은 점차 궁정 화가로서의 입지를 다집니다. 1536년 홀바인은 헨리 8세의 공식 궁정 화가로 임명돼 활발한 활동을 합니다. 


+ 후기(1540-1543)

1540년대부터 홀바인은 영국 최고 궁정 화가가 됩니다. 1542년 그린 '자화상'은 홀바인의 마지막 자화상으로 (당시) 45세의 홀바인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1543년 홀바인은 런던에서 발생한 흑사병으로 갑작스럽게 사망합니다. 그의 나이 46세. 홀바인의 죽음은 당시 흑사병의 급속한 확산과 위험의 상징이 됩니다.


+ 비평적 관점

일부 비평가들은 홀바인의 초상화를 기술적으로는 뛰어나지만, 인물의 감정을 충분히 표현하지 못했다고 지적합니다. 그의 그림이 너무 객관적이고 냉정하여 인물의 내면을 깊이 있게 드러내지 못한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홀바인은 영국 헨리 8세의 궁정 화가로 일하면서 왕의 이미지를 미화했다는 비판도 받습니다. 일부 비평가들은 그가 예술가로서의 독립성을 잃고 권력자의 요구에 굴복했다고 주장합니다.



* * *


+ 주요 특징


1. 정교한 사실주의


홀바인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극도로 정교한 사실주의적 묘사입니다. 그는 인물의 얼굴 특징, 의복의 질감, 장신구의 세부 사항을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표현합니다. 특히 그의 초상화에서 이러한 특징이 잘 드러납니다. 이러한 정교함은 관람자로 하여금 마치 실제 장면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합니다.


2. 상징주의


홀바인은 사실적 묘사와 함께 상징적 요소를 교묘하게 활용합니다. 그의 작품에는 종종 숨겨진 의미를 지닌 상징들이 등장합니다. 이러한 상징들은 작품에 깊이를 더하고, 당시의 정치적, 종교적, 철학적 맥락을 반영합니다.


3. 색채의 절제와 조화


홀바인의 색채 사용은 매우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조화롭습니다. 그는 화려한 색채보다는 차분하고 중후한 톤을 선호합니다. 이는 그의 작품에 품위와 격조를 부여합니다. 그는 제한된 색상 팔레트를 사용하면서도 미묘한 색조의 변화를 통해 풍부한 시각적 효과를 만들어냅니다. 특히 녹색과 붉은색의 조화로운 사용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의식 안의 미술관

바젤 시장 야콥 마이어 춤 하젠, 이미 죽은 그의 아내와 딸을 보여주고 있다. 왼쪽에 있는 다른 남자 인물의 의미와 정체는 그림의 전체 의미와 마찬가지로 밝혀지지 않았다. 또한 이 그림은 가톨릭 신자였던 시장의 신앙 고백으로 간주된다. 그는 이 그림으로써 종교개혁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다. _Wikipedia


'마돈나*'라는 이름과 어원을 좋아합니다.

마돈나 하면, 에드바르 뭉크의 <마돈나>를 떠올리곤 합니다.


1526년에 스위스 바젤에서 홀바인은 시장으로부터 그림 의뢰를 받아

<마이어 부인의 마돈나Darmstädter Madonna>을 완성합니다.


* 술집이나 다방, 보석 가게 따위의 여주인을 흔히 마담(madam)이라고 하죠. 마담은 고대 프랑스어로 '나의(ma) 여인(dam)'이란 뜻입니다. 오늘날에는 종종 두문자를 대문자로 써서(Madam) <아씨, 마님, 부인>이란 뜻으로 쓰입니다. Madam을 이탈리아어로 하면 마돈나(Madonna)가 되는데, 역시 '나의(ma) 여인(donna)'이란 뜻입니다. 마돈나는 귀부인이나 애인을 높여 부르는 말로 쓰이기도 하고, 가톨릭에서는 ‘[성모 마리아]’를 이르는 말로도 사용됩니다. _Wikipedia


중앙의 마돈나(시장의 죽은 아내 혹은 성모마리아)를 중심으로 모인 인물들의 표정이 ...

심지어 아기조차 표정이 기이합니다.


사실주의란 미화하지 않은 대상을 그리는 것.

있는 그대로, 불편한 진실을 보여주는 것.(같습니다.)

Hans Holbein <마이어 부인의 마돈나Darmstädter Madonna>, (1526) 출처: Wiki





"찬란하고 감동적이며 장엄하다.

여러분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든

3분 30초 정도만 시간을 내어 이 곡의 세례를 받기를." _1일 1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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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존재 여부와 상관없이 영원한 것은 없다. 그렇게 믿고 싶은 믿음만 있을 뿐. 신의 대속도 구원도 환영. 신기루일 수 있다. _하루키


* Antonio Lotti(1667–1740)는 이탈리아 바로크 시대의 작곡가로 주로 베네치아에서 활동했습니다. 그의 작품 중 특히 유명한 "Crucifixus a 8"는 다성부 합창곡으로, 8성부로 구성된 모테트(motet)입니다. 이 곡은 "Credo"의 한 부분으로, 예수의 십자가 수난을 묘사하는 구절인 "Crucifixus etiam pro nobis sub Pontio Pilato"("그분은 우리를 위해 본디오 빌라도 아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를 가사로 삼고 있습니다.

Antonio Lotti – Crucifixus a 8





삶이 고양될지 혹은 무해할지, 의식 안의 미술관을 꿈꾸며 ... 감사합니다. 하루키




+ 출처


[1] 위키피디아: Hans_Holbein_the_Younger

[2] BritannicaHans_Holbein_the_Younger

[3] Nationalgallery: Hans_Holbein_the_You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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