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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누드 자화상

리하르트 게르스틀

by 하루키

(중략) 상반신 누드의 젊은 남자를, 그 몸에서 초자연적인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이 남자는 앞을 지나가는 모든 사람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진정한 너 자신이 돼라’고 부추기는 듯했다.

거짓으로 꾸며낸 페르소나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 무엇도 숨기거나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는 태도였다. (중략) 그림 속 남자의 눈을 충분히 오랫동안 바라본다면, 진정한 나 자신이 될 수 있었다.”


_오스트리아 평론가의 리하르트 게르스틀의 ‘세미누드 자화상'에 대한 감상


*

(작가, 미술 기법, 역사적 배경 등 일체의 객관적 사실을 배제한 하루키의 감각과 추상표현으로 쓴 감상입니다.)

Richard_Gerstl_-_Semi-Nude_Self-Portrait_-_Google_Art_Project.jpg Richard Gerstl <Semi-Nude Self-Portrait>, (1904-05) 출처:Wiki



+ 하루키 감상

1904년 (20세) 게르스틀은 (오스트리아 빈) 에스터하지가세 19번지에 위치한 대형 갤러리 앞에서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머뭇머뭇. 갤러리에서 구스타프 클림트(42세)의 대형 기획전이 진행 중이고, 게르스틀의 경쟁자(라 생각한) 클림트의 전시회입니다. 게르스틀은 결심한 듯 안으로 들어갑니다. 들어가자마자 바로 보인 여인의 초상. 얼음처럼 굳은 채 한참을 봅니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은 너무 아름다워. 여성을 장식화, 이상화한 것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어. 여성은 여성일 뿐 미美가 아니지"


현재 클림트는 오스트리아 예술계의 혁명을 일으킨 빈 분리파*의 수장으로 오스트리아 예술계에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게르스틀은 이해도 인정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가 보기에 기존의 아카데미즘과 빈 분리파 예술은 별반 다를 바 없다는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진부함.


* 인상주의와 아르 누보의 영향을 받은 회화 운동으로 1897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결성된 예술가 그룹입니다. 이들은 기존의 아카데미즘 미술과 권위적인 예술 제도에 반발하여 분리 독립을 선언하고 새로운 예술 운동을 펼쳤습니다. 빈 분리파는 회화, 조각, 건축, 공예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총체예술(Gesamtkunstwerk)을 추구했습니다.


실망한 게르스틀은 전시회장을 나옵니다. 근처 카페로 이동해 야외 테이블에 앉습니다. 종업원이 다가오자,


Ich hätte gerne einen Wiener Kaffee,

비엔나커피 주세요.


커피를 주문하고, 고개를 돌립니다. 눈앞에 펼쳐진 작은 광장. 비둘기 떼. 시선을 조금 돌기자 교회 종탑이 보였습니다. 시간은 오후 3시 20분. 한참을 기다려도 비엔나커피가 나오지 않아 자리에 일어나 카페 안으로 들어갑니다.


반짝임 카페 안에 들어가자 안팎을 구분 짓는 스테인드글라스 창이 보입니다. 햇빛이 미세한 알갱이로 반짝이며 실내를 비춥니다. 가득 찬 커피 향, 낮은 목소리의 대화들, 환경음. 빛의 조명을 받은 향, 소리, 먼지들은 속살을 게르스틀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듯 재빨리 감춥니다. 그들만의 세계. 게르스틀은 카운터에 도착해 걸음을 멈춥니다. 테이블 위에 놓인 거울. 그 안의 눈은 거울 밖 눈과 눈을 맞춥니다.


벌거벗은 얼굴. 불만 있는 표정. 형형한 안광. 짧은 머리. 게르스틀은 말없이 카페를 나와 급히 자신의 작업실로 향합니다.



&



1. (목소리) 게르스틀. 게르스틀은 평범하지 않아. 특별해. 사람들 속에 있을 땐 드러나지 않지. 달팽이가 껍질 속에 숨듯. 하지만 그림 그릴 땐 달라. 살아있지 세계를 감각하지.


2. (게르스틀) 커다란 전신 거울 앞에 선 게르스틀. 상반신을 벗고 서 있었다. 하얀 피부에 깡마른 체형. 근육이 보이지 않는다. 유독 목의 혈관과 쇄골이 잘 보인다. 늑골은 불투명해 보인다. 긴팔. 짤은 머리, 콧수염, 턱수염. 짙은 눈썹. 큰 눈.


3. (목소리) 세상의 모든 그것(생물, 무생물)에는 고유의 아우라가 있지. 게르스틀 자신의 아우라를 본 적 있나? 거울 속 형체를 보지 말고, 아우라를 봐. 후광에서 발하는 빛


4. (게르스틀) 거울에 비친 나와 내 주변을 감싼 어둠. 마치 심연 속에 잠겨 있는 것 같다. 짙은 파란색의 심연. 이곳은 공중(하늘)이면서 물속이다. 위아래. 좌우 구분이 없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무한의 공간. 유일한 나. 복제된 나와 오롯이 마주 한다. 중첩된 나.


(목소리, 게르스틀 동시에 말한다) 유아*다.


* '자아를 갖고 생각하는 자신' 이외의 타인이나 물건들은 모두 그것이 실재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감각이 만들어낸 내 자아 속에만 존재하는 허상인지 알 수 없다. 한자로 풀이해 보면 '오직 유(唯)', '나 아(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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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가 - 리하르트 게르스틀Richard Gerstl (1883 ~ 1908, 오스트리아)

+ 전기(1883-1899)


리하르트 게르스틀은 1883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빈에서 태어납니다. 아버지 에밀 게르스틀Emil Gerstl는 유대인 상인이었고, 어머니 마리아 페이퍼Maria Pfeiffer는 비유대인이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예술에 대한 열정을 보였지만, 학업에서는 어려움을 겪어 빈의 피아리스트 김나지움에서 퇴학당합니다. 1898년, 15세의 나이로 빈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하여 크리스티안 그리펜케를Christian Griepenkerl 교수 아래에서 수학하였으나, 전통적인 교육 방식에 만족하지 못한 게르스틀은 빈 분리파Vienna Secession 스타일을 거부하고 독자적 예술 스타일에 전념합니다.


+ 중기(1900-1906)


게르스틀은 1900년과 1901년 여름 동안 헝가리 나지바냐에서 시몬 홀로시Simon Hollósy 밑에서 공부하며 자유로운 예술적 접근 방식을 경험합니다. 이후 그는 비엔나로 돌아와 자신의 스튜디오를 마련하고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하였고, 1904년과 1905년 사이, 게르스틀는 친구이자 동료 화가인 빅토르 하머Viktor Hammer와 함께 스튜디오를 공유하며 작품 활동을 이어갑니다.


이 시기 게르스틀은 음악가들과 교류를 통해 예술적 영감을 얻었으며, 특히 작곡가 아놀드 쇤베르크Arnold Schoenberg와 가깝게 지냅니다.


+ 후기(1907-1908)


게르스틀의 삶은 예술적 열정뿐만 아니라 개인적 갈등으로도 방황했습니다. 아놀드 쇤베르크Arnold Schoenberg와 그의 아내 마틸데Mathilde와의 삼각관계로 인한 심각한 심리적 고통을 겪었고, 게르스틀 작품 전반에 영향을 미칩니다. 1908년 (25살) 게르스틀은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 비평적 관점

일부 비평가들은 게르스틀이 당시 주류 예술 운동을 거부한 독창적 표현주의 스타일을 개발해 예술적 고립을 선택했다고 평합니다. 그의 자화상은 종종 그리스도와 같은 고통받는 예술가의 이미지를 연상시키며, 게르스틀은 자기중심적 유대인 정체성과 종교적 상징으로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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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주요 특징


1. 미학적 반향과 새로운 길 탐구


게르스틀은 아카데미나 비엔나 분리파(Vienna Secession)의 미학을 거부하며, "추함의 미학"을 탐구합니다. 그는 기존의 아름다움 개념을 부정하고, 감정적이고 본능적인 표현을 통해 새로운 예술적 길을 개척하려 합니다. 게르스틀의 작품은 상징주의나 문학적 참조를 배제하고, 직설적이고 날것의 감정을 담아냅니다.


2. 심리적 통찰과 자아 탐구


게르스틀의 작품, 특히 자화상은 그의 내면세계와 심리적 상태를 강렬하게 드러냅니다. 그는 자화상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과 감정을 탐구했으며, 이는 그의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주제입니다. 게르스틀의 자화상은 자신감과 불안, 고립감 등 다양한 감정을 담고 있어, 심리적 상태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3. 표현주의적 혁신


게르스틀은 당시 유럽 예술계에서 떠오르던 표현주의의 선구자로 평가받습니다. 그는 두꺼운 임파스토 기법과 강렬한 색채를 사용하여 감정적이고 추상적인 표현을 시도합니다. 게르스틀의 작품은 후기 인상주의와 상징주의의 영향을 받았지만, 이를 독창적으로 재해석해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립합니다.




+ 의식 안의 미술관


'헨리카 콘의 초상(Portrait of Henryka Cohn)'은 1908년에 완성된 유화로, 오스트리아 빈의 에스터하지가세 23번지에 위치한 헨리카 콘의 아파트에서 그녀를 모델로 제작되었습니다. _Wikipedia


헨리카 콘은 쇤베르크 모임의 일원으로 게르스틀이

초상화를 그렸을 당시 그녀는 30대 여성 피아니스트였습니다.


크게 두 가지가 느껴집니다.


하나는, 게르스틀 특유의 인물 묘사, 후광의 오오라

하나는, 관객을 응시하는 고집스러운 눈빛


아름다움, 따뜻함, 사랑스러움이 아닌,

예술가의 혼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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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가와 예술가의 만남

1643px-Richard_Gerstl_-_Portrait_of_Henryka_Cohn_-_Google_Art_Project.jpg Richard Gerstl <Portrait of Henryka Cohn>, (1908) 출처: Wiki




"11분 정도 길이로 짧은 편은 아니지만,

시간이 정지된 것 같은 효과가 있다. 믿기지 않지만

나는 이 곡을 들으면 왠지 깨끗해지는 기분이 든다." _1일 1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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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과 음 사이, 보랏색 라벤더Lavender로 빼곡한 평원을 걷는다. 오른 손끝으로 라벤더를 건들며, _하루키


‘Lavender Field’는 일본 현대 작곡가 카렌 타나카(Karen Tanaka, 1961~)가 영국 ABRSM(Associated Board of the Royal Schools of Music)의 의뢰로 작곡한 약 2분 길이의 피아노 독주곡이다.

작곡가는 프로그램 노트에서 “색채와 향기를 소리로 직조하는 상상”을 제시하며, 곡의 마지막에 E♭ 음을 중심으로 한 자연 배음(harmonic series)이 나타났다 사라지며 공간 속으로 흩어진다고 설명한다
Lavender Field




삶이 고양될지 혹은 무해할지, 의식 안의 미술관을 꿈꾸며 ... 감사합니다. 하루키



+ 출처


[1] Wikipedia: Richard_Gerstl

[2] Artsy: Richard_Gerstl

[3] Medium: Richard_Gers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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