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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카눈넝 Oct 23. 2022

<1장>_4. 말하는 대로 생각한 대로

 때는 대학교 2학년, 졸업을 앞둔 시점이었다. 오랜만에 마주 앉아 부모님과 밥을 먹고 있었다. 반찬을 집으려 뻗은 손목에는 희미하게 헤나가 남아 있다. 문득 부모님께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어 하고 말했다. 길가에 흔한 표지판까지 신선하게 느껴질 만큼 모든 것이 새로운 곳에 가보고 싶었다. 그랬더니 아빠는 흔쾌히 “미국 갈래? 교당에서 머물고.” 하는 솔깃한 제안을 해주셨다. 그렇게 나는 인도를 다녀온 지 한 달도 안 돼서 휴학 신청을 했고 서둘러 미국 비자를 준비했다. 6개월 정도 머무를 생각이었기에 관광비자를 신청했다. 서울에 비자를 받으러 왔다. 말도 안 되는 짧은 영어로 준비한 인터뷰는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아무리 미국 비자를 받기가 어렵다고 하지만 너무나 허무하게 끝이 났다. 울먹이며 대사관 밖으로 나왔다. ‘아, 휴학은 했는데 어디로 가지? 친구들한테 미국 간다고 다 말해 놨는데… 쪽팔려!’ 하는 생각이 제일 먼저 스쳤다. 


일을 벌여 놓았으니 뭐든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다른 대안들을 찾아봤고, 최종 목적지는 호주로 결정 났다. 역시 교당에서 머무르기로 했다. 이민자가 많은 호주는 비자를 받아내기 수월했고,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았다. 마침 평소 친하게 지내던 대학 선배도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 중이라 걱정이 없었다. 그렇게 휴학하고 매일 열 시간을 일하며 받은 월급과 고등학교 때부터 모아 둔 용돈을 챙겨 호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오랜 시간을 날아 도착한 공항에는 한글이 없었다. 실감이 났다.     


무엇이든 거대했다. 길에 심겨 있는 나무의 끝을 보려면 턱을 들어 하늘을 올려다봐야 할 만큼 컸다. 국립 공원에서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크기였다. 땅덩어리가 넓어 공원도 큼직큼직했다. 영화 속에서 보던 넓고 아름다운 공원이 눈앞에 펼쳐졌다. 도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새들도 거대했다. 크기가 내 허리만큼 오는 긴 부리는 가진 새가 쓰레기통을 뒤지는데 그 옆에는 익숙한 듯 잔디밭에 사람들이 누워있었다. 우리나라 동물원에서 볼 수 있었던 앵무새가 도심을 날아다녔다.

교과서에서만 보던 오페라하우스를 자주 보며 기분이 이상했다. ‘내가 이렇게 유명한 건축물을 마음만 먹으면 매일 볼 수 있다고?’ 하루는 전철을 타고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창밖의 하늘이 노랗게 물들고 있었다. 마침 오페라하우스 근처를 지나갈 때였다. 하얗게 줄지어진 타일들 위로 노을의 따듯한 빛이 하나하나 반사되었다. 반짝반짝하며 따뜻한 빛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오페라하우스를 보며 진지하게 이민을 생각하기도 했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채도를 굉장히 높게 조절한 것처럼 새파랬다. 세계적인 관광지 중 하나인 호주의 시드니에 살다 보니 날마다 축제 같았다.     


호주에 도착해 제일 먼저 어학원에 등록했다. 한두 달은 교당에서 머물렀지만, 곧 시드니의 중심지인 도시 쪽으로 이사를 했다. 영문 이력서를 들고 다니며 주변에 보이는 모든 가게에 지원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열정이 대단했다. 무식함이 곧 용감함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중 두 개의 가게에서 일하게 되었다. 한 곳은 한국인이 많이 오는 중국집이었고, 다른 한 곳은 외국인이 많이 오는 한인 사장의 요거트 아이스크림 가게였다. 이력서를 돌리며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는데 도시에 있는 많은 가게의 사장이 한국인이라는 것이다.  

   

월마다 돈을 주는 한국과는 다르게 주마다 돈을 주었기에 통장을 보고 있으면 재미가 쏠쏠했다. 한동안은 세 개의 가게에서 일했던 적도 있었다. 앞서 말한 두 개의 가게와 현지인이 운영한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한인 사장이 하는 컵케이크 집이었다. 한국보다 물가가 높은 만큼 시급도 많이 주는 편이었다. 열심히 번 돈으로 여러 국적의 친구들과 놀고 마셨다. 심심하면 쇼핑했다. 정말 매 순간 새로운 경험에 감탄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하고 싶은 것이 생기면 망설임 없이 도전했다. 같이 방을 쓰는 언니들과 함께 스카이다이빙을 하러 갔다. 전날 마신 술이 덜 깨 숙취를 느끼며 하늘에서 뛰어내리는 짜릿한 경험도 했었다. 영어로 원활한 소통도 잘되지 않으면서 용감하게 시골로 혼자 번지점프를 하러 간 적도 있었다. 다른 도시들로 배낭여행을 다니며 세상에는 다양한 인종들과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내가 모르는 세상이 이렇게나 넓었다.     


한국에서는 용기가 나지 않았던 일이 호주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졌다. ‘나중에’가 없어 망설일 수 없었다. 지금 당장 하지 않는다면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날짜는 정해져 있었고 다시 호주로 돌아올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중에’가 없어지고 그 자리에 ‘용기’가 생겨났다.

나를 잘 아는 이가 없어 자유로울 수 있었다. 누군가가 나를 평가하지 않는 그곳에서 이전의 나를 생각하지 않고 새로운 나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머나먼 사랑스러운 나라, 호주에 흠뻑 젖어 들었다.   

  

중학교 시절 자기 전에 누워 항상 상상했던 것들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말도 안 되는 영어를 혼잣말로 대화하는 것이었다. 학교에서 연결해 준 일본인 여학생과 펜팔을 주고받았었다. 편지에 내용을 써야 했는데 턱없이 부족한 내 실력의 한계를 느끼기도 했었다. 유창하게 영어로 외국인 친구들과 대화하는 것이 있어 보였다. 나에게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호주에서 매일 어학원이 끝나면 외국인 친구들과 놀러 다녔었다. 영어로 대화하면서 시드니의 이곳저곳을 함께 여행하는 내 모습이 신기하게만 느껴졌었다.     


언젠가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멘탈 트레이닝(상상 훈련)’. 운동선수들은 육체적인 훈련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훈련도 함께한다고 한다. 자신이 경기에 나가 성공하는 모습을 계속해서 상상하게 되면 실제 그 상황에서 상상했던 대로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나의 어릴 적 심심풀이로 했던 상상이 무의식에 자리 잡아, 결국에는 나를 호주로 이끌었는지도 모른다. 이루어지기까지 몇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결국에는 내가 상상했던 방향으로 흘러갔다. 전혀 생각지도 못하다가 돌이켜 보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내가 원하는 상황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또 자주 생각해 보려 노력 중이다. 언젠가는 이루어질지도 모르니까. 겹겹이 쌓이는 작은 생각들이 방향을 잡아주고 더 나아가 큰 길이 될 것이다.     


자신이 어떤 것을 원하는지 알아보고 관심을 기울이는 것, 그것이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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